
[일요서울 | 유수정 기자]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로 유명세를 탄 한국 화이자(Pfizer·대표이사 이동수)의 위상이 한풀 꺾인 모습이다. 실데나필 성분의 물질특허 만료로 국내외 제약사들의 제네릭(복제약) 제품이 잇따라 출시되더니 국내 제약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디자인 침해 소송에서까지 패소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폐고혈압증 치료’ 특허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것은 물론, 향진균감염제 보리코나졸의 독점 기술 생산까지 깨지는 등 연일 악재가 지속되고 있다.
약효는 ‘불끈’ 회사는 ‘휘청’
독과점 시장 철폐…디자인 소송 패소까지
일명 ‘블루 다이아몬드’로 통하는 비아그라의 푸른색 마름모꼴 형태가 독점적인 디자인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와 한국 화이자 및 미국 본사가 시름에 잠겼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부장판사 홍이표)는 한국 화이자제약 등이 한미약품을 상대로 제기한 디자인권 침해 금지 소송에서 원고 패소했다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앞서 화이자는 지난해 10월 한미약품을 상대로 제네릭(복제약) 제품인 ‘팔팔정’이 ‘비아그라’ 특유의 디자인을 침해했다며 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화이자는 ‘팔팔정’이 ‘비아그라’만의 다이아몬드 형상과 푸른빛 색상을 따라해 매우 유사한 느낌을 준다고 주장했다. 또 두 제품 모두 다이아몬드의 각 모서리가 둥그스름하게 처리됐으며 가로·세로 비율이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미약품 측은 ‘팔팔정’은 직선 중심의 육각형에 가까운 모양을 지니고 있어 두 디자인의 특성이 명확히 구별된다고 반박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해당 디자인은 특허청에 디자인 등록(디자인 제30-0637251호)까지 마친 상태”라며 “‘팔팔정’은 곡선 중심의 마름모 형태인 ‘비아그라’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법원은 결국 한미약품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비아그라’의 디자인이 특정 제품이라는 사실을 한 눈에 알아볼 정도로 알려지지 않았다”며 “과거에도 간행물을 통해 비슷한 디자인이 여러 차례 소개된 점, 색상 또한 청색 타르에 의한 점 등에 비춰 보아 디자인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이번 소송은 지난해 5월 ‘비아그라(성분명: 실데나필 시트르산염)’의 물질특허 만료로부터 시작됐다. 특허가 만료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국내외 제약사들이 잇따라 제네릭 상품을 출시했기 때문이다. 이는 한미약품의 ‘팔팔정’과 CJ제일제당의 ‘헤라크라’ 등을 비롯해 무려 70여 개 제품에 달한다.
사실 ‘비아그라’는 제네릭 제품이 출시되기 전까지 평균 20억 원대의 판매액을 보이며 발기부전치료제 시장에서 독보적인 행보를 걸어왔다. 그러나 화이자는 제네릭의 영향으로 매출이 9억 원대까지 감소하는 등 큰 영향을 받았고, 결국 지난 2월부터 ‘비아그라’의 공급가격을 40%가량 인하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한풀 꺾인 화이자, 연일 악재 시달려
화이자의 악재는 이뿐만이 아니다. 대표 상품인 ‘비아그라’가 휘청하더니 연달아 다른 제품까지 국내 기업에 자리를 내줬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특허심판원은 한미약품이 화이자를 상대로 제기한 청구 소송을 적격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심결각하 처리했다. 이는 화이자가 2020년까지 유효한 특허 권리를 포기했기 때문인데, 내용인 즉 한미약품이 제기한 ‘폐고혈압증 치료’ 특허 관련 10개 권리항 중 경구제 관련 8개 항목을 화이자 스스로 정정 청구해 삭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후속 제품의 시장 진입이 수월해져 국내 제약사들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제품으로 환자들의 부담감을 해소시켜줄 것으로 예측된다. 그동안 폐동맥고혈압 환자들은 적합한 약이 없어 동일한 성분(실데나필)의 발기부전치료제를 복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화이자가 독점해오던 향진균제 ‘브이펜드’의 성분 보리코나졸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개발됨에 따라 국내제약사들에 의해 대량생산될 전망이다. 한미약품의 경우 보리코나졸 시범생산을 마치고 관련 특허의 기술 수출을 추진하고 있으며, 동국제약과 대웅제약 등도 제네릭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에 업계 관계자들은 특허 및 독점 기술 등을 빌미로 비싼 가격에 제품을 판매하던 화이자의 위상이 한풀 꺾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화이자가 국내 기업의 제네릭 제품 출시에 경계 태세를 보이고 있다는 시선이다. 의사 처방전 없이 구입이 불가능한 전문의약품 ‘비아그라’는 소비자들이 디자인을 기준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닌데다가, ‘팔팔정’과 포장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거래 단계에서 혼동의 우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화이자 측이 고집스런 주장을 펼쳤다는 것이다. 이는 국내 30여개의 제네릭 제품 중 ‘팔팔정’이 압도적인 실적으로 ‘비아그라’를 바짝 추월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는 의견이다.
제네릭 출시에 공급 가격 인하 굴욕
여기에 “보다 많은 환자들에게 비아그라의 장점과 가치를 알리고 환자들의 편의를 위해 가격을 인하했다”는 화이자 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가격경쟁에서 밀린 비아그라가 어쩔 수 없이 가격 인하를 단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연이은 소송 등으로 독과점 시장에서 한 발짝 물러난 화이자 덕에 그동안 가격이 비싸 치료를 받지 못했던 이들의 치료가 한결 수월해 졌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자리했다. 또 소비자의 부담감을 줄이고 선택권 역시 늘렸다는 평이다.
한편 이와 관련해 화이자 측은 “비아그라의 디자인에 대한 화이자의 지적재산권을 인정하지 않은 법원의 판결은 매우 유감”이라며 “항소 여부는 내부적으로 판결문 내용을 검토한 후에 고려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허소송 권리 포기에 관련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며 일축했다.
유수정 기자 crystal0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