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석유회사 설립에 쏠린 시선
국민석유회사 설립에 쏠린 시선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3-04-02 08:51
  • 승인 2013.04.02 08:51
  • 호수 987
  • 4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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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기름값이 획기적으로 내려갈까?


 
정치인·종교인 등 유명인사 참여로 호응 이끌어
희대의 투자금 먹튀? 선의의 피해자 발생할 수도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2071원’.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한 주유소의 지난달 27일 휘발유 가격이다. 그런데 이 가격이 1600원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 시민들의 관심이 뜨겁다. 지난달 21일 창립발기인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한 국민석유회사는 일반 주유소보다 20% 저렴하게 기름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게다가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표이사를 맡았고, 이윤구 전 적십자 총재·이우재 전 마사회 회장·이팔호 전 경찰청장·이문원 전 독립기념 관장·소설가 조정래씨 등이 창립발기인 대표를 맡았다. 공인들이 앞장 서자 일반 소비자들도 반신반의하면서도 국민석유회사의 행보에 관심을 보인다. 반면 업계는 “비현실적 구상이며 자칫 투자금만 날리고 말 것”이라는 부정적인 견해다.
 

[일요서울]이 여의도 주유소 인근에서 “휘발유 값 1600원 대 인하 과연 이뤄질까요?"라는 질문에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재성(36)씨는 “1600원대는 상상이 어렵다. 10여 년 전 가격이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전국일주 여행의 꿈을 좀 더 일찍 이루고 싶다. 그동안은 휘발유가격이 너무 비싸 엄두도 내지 못했다"며 기대의 찬 모습을 보였다.
또 다른 소비자 최 모씨는 “설마요. 믿지 못해요. 정권 바뀌고 서민물가 잡자고 떠드니 누군가가 총대를 든게 아닌가 싶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처럼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가격 인하에 대한 기대감을 보이면서도 실제론 부정적인 반응이 더 많았다.

이는 2011년 1월 이명박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고 발언한 직후 정유업계가 서둘러 100원 인하 방침을 밝혔지만 몸 소 느낀 소비자들이 없었던 터라 이번에도 부정적인 시각이다.
자영업자 김정호(34)씨는 “지난번 100원 인하방침이 알려진 직후 친한 주유소 사장이 말하길 결국은 눈가리고 아웅이라고 했다"며 “알뜰주유소가 많이 있지만 가격 경쟁력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라고 반문했다.

그래도 국민석유회사 발기인 대회에 정치인·종교인 등 공인들이 대거 참여했고,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1인 1주 갖기 약정운동’을 벌인 결과 지난달 26일 현재 약정액 약 1200억 원을 모았다고 해도 반응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동종업계 역시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회의적인 반응이다. 5000억 원이라는 적은 자본으로 석유 공장을 설립하는 게 비현실적이고 캐나다에는 해상 운송 시설이 없어 원유 도입도 불가능하다는 게 이유다.
또한 촉매제 국산화를 통한 비용 절감 부문에서도 촉매 비용이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1%에 불과해 비용 절감 효과도 크지 않다는 주장이다.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박 모씨는 “주유소 가격에 불신이 많은 소비자들에게 저렴한 석유를 공급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들인 것 같다”며 “설사 운영이 된다고 해도 ‘주유소 폴(직영)’제로 운영되고 있는 구조에서 경기지역 주유소 2500여개 중 과연 몇 곳이나 직영점이 될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주유업계의 경영난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현 시점에 과연 국민석유회사 출범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1월 한 달간 폐업 신고를 한 주유소는 98개로 월간 기준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작년 한 해 동안 폐업한 주유소(261개)의 3분의 1이 넘는다는 조사가 발표됐다. 이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3000~4000개 선이던 주유소 숫자가 1992년 정유사 간 폴(간판) 경쟁이 시작되면서 급증했다. 1995년 거리 제한까지 철폐되자 1998년 1만개를 넘어섰고, 그 뒤부터는 계속 1만개 이상을 유지해 왔다. 주유소 업계가 생각하는 적정 주유소 규모(7000~8000개)를 훨씬 초과한 상태를 이어온 것이다. 작년 기준으로 전국 주유소 숫자는 1만2803개에 달했다.
준비위는 5000억 원으로 회사를 설립할 수 있겠냐는 일각의 시선에 대해 “5000억 원의 설립 자금을 토대로 100개 이상의 주유소를 설립해 실제로 정유사보다 200원 싼 기름을 제공, 국민석유운동의 가시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라면서 “이후 증자를 하면 자금을 모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원가절감 효과 가능성 vs 허울
또한 준비위 측은 “건설비 거품을 빼고 캐나다와 시베리아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값싼 저유황원유를 도입해 원가·정제비·운송비를 절감하고 투명경영을 하면 값싼 기름을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준비위는 “기름값이 비싼 이유는 비싼 중동산증질 원유 도입, 세계 시장 거래량의 10분의 1 이하인 상가포르 현물시장 시세, 고비용 증질분해비, 외국 지분 배당금, 독과점 유지를 위한 로비자금, 자회사를 통한 정유사의 이익 빼돌리기 등 때문"이라며 “연간 4조 원이나 지불하고 있는 고비용의 정제시설이 악순환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두바이유 대신 캐나다 등의 값싼 저유황 원유를 도입, 정제해 원가를 낮추고 휘발유, 경유 등을 뽑는데 쓰이는 400여 개 촉매제를 국산화 해 비용을 절감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계획대로라면 2~3년 후엔 국민석유회사의 기름 값이 일반 주유소(2000원)보다 400원가량 저렴해 질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투자금을 회수 못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혹도 일부 제기된다. 이미 유명 포털사이트 등에는 “희대의 투자금 먹튀가 또 이루어지나보다. 기름값 20% 인하한다고 약 팔아서 5000억 모금 성공 후 조심하라" 등의 글들이 실리고 있다. 계속되고 있는 시장 내수 침체가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skycros@ilyoseoul.co.kr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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