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이냐 역풍이냐 기로에 서다
검찰 개혁이냐 역풍이냐 기로에 서다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3-04-01 09:55
  • 승인 2013.04.01 09:55
  • 호수 987
  • 1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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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범죄 검찰 잡는 정보과'
▲ <뉴시스> 황운하 전 경찰청 수사기획관

김광준 검사·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 모두 범죄정보과 작품
경찰판 중앙수사부…영역 안 가리고 첩보 체계적 수집 분석

[일요서울 최은서기자]검찰을 상대로 한 경찰의 수사가 계속되면서 검찰이 휘청거리고 있다. 앞서 김광준 전 부장 검사에 대한 수사는 범죄정보과가 첫 단추를 열면서 한상대 검찰총장이 옷을 벗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이번 별장 성접대 의혹 수사 역시 경찰청 범죄정보과 수사관들이 주도하면서 김학의 법무부 차관이 사표를 내게 됐다. 검찰 조직이 경찰로 인해 상당한 ‘내상’을 입은 셈. 이번 수사를 계기로 범죄정보과가 ‘검찰 잡는 부서’로 자리 잡을지도 주목된다. 검찰은 이번 사건이 용두사미로 끝날 조짐을 보이자 ‘경찰이 수사 결과에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범죄정보과에 곱지 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경찰청 범죄정보과는 검·경 수사권 조정 논란 속에 검사 등 고위공직자 비리를 겨냥해 2011년 창설됐다. 범죄정보과는 ▲기업형 조폭과 보이스피싱 등 민생 침해 범죄 ▲기업정보 유출 및 부패 비리▲토착 비리 ▲검사 등 공직자 비리 등 내사 단계에서 수집되는 각종 정보를 분석·관리해 일선 수사 부서로 배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범죄정보과가 창설되자 사회고위층들이 연루된 굵직한 범죄 정보를 담당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경찰판 중앙수사부라는 평가도 나왔다. 특히 민생치안에 주력하는 경찰이 방대한 ‘밑바닥 정보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범죄정보과의 역할에 시선이 모아졌다.


현재 경찰청 범죄정보과는 총경 이하 19명의 직원을 배정해 첩보를 체계적으로 수집 분석하고 있다. 대형사건을 수사해본 수사관을 선별해서 뽑았으며 수사에 잔뼈가 굵은 구성원들로만 꾸려졌다. 한 범죄정보과 수사관은 “서로 영역을 정해두고 정보를 수집하지는 않는다. 밑바닥에서부터 고위공직자 비리에 이르기까지 정보를 샅샅이 훑고 있다”며 “보안을 중요시 해 수사관끼리도 서로가 무슨 정보를 쥐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전했다.


“지도층 인사 누구든 수사”

범죄정보과 창설 당시 황운하 경찰청 수사기획관은 “사회지도층 인사가 누가 됐든 수사한다”며 “검사가 될 수 있고, 판사가 될 수도 있고, 그보다 훨씬 더 높은 공직자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경찰이 검찰 비리 정보를 활용해 적극 수사에 나서 검찰 개혁을 이슈화시킬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앞서 조현오 전 경찰청장도 “수사권 조정과 맞물려 (범죄정보과가) 빛을 발할 것이다. 이미 검찰 등과 관련한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밝혀 ‘검찰 잡는 부서’가 될 것이란 분석에 무게를 실리게 했다.
이후 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장기 과제로 미루자 공교롭게도 1개월 만에 경찰이 범죄정보과 주도로 진행된 수사를 통해 검찰 고위간부인 김 차관이 사퇴하게 됐다. 이에 경찰이 범죄정보과를 통해 정부 조직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실제로 한 범죄정보과 수사관은 “많은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특히 검찰 수사에서 부당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사건을 재검토해달라는 민원도 많이 들어오고 각 기관의 비리의혹과 관련된 자료도 제보되고 있다”며 “검찰 수사가 미진한 채로 종결된 사건도 다시 들춰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의도적으로 검찰을 겨냥해서 첩보를 수집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의도적 검찰 겨냥 안 해”

범죄정보과는 창설 이후 검찰 고위직을 타깃으로 삼아 내사를 진행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받아왔다.
범죄정보과가 ‘검찰 잡는 부서’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도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 사건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8월 경찰이 김 검사가 희대의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 측으로부터 2억4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를 포착했다. 이 사건의 최초 첩보 역시 범죄정보과에서 입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경찰수사는 조희팔 차명계좌에서 김 검사의 차명계좌로 자금이 흘러들어간 정황을 발견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경찰은 김 검사가 찍힌 은행 CCTV 화면과 김 검사의 차명계좌를 확보했다. 당시 이 사건이 터지면서 검찰 내부는 크게 술렁였다. 검찰이 특임검사를 임명하면서 검경 이중수사 논란까지 일었다. 이 사건 이후 검사가 절도 피의자와 성관계를 맺은 사건과 사상 초유의 검찰 내분 사태로까지 이어지면서 결국 한상대 총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표를 내게 됐다.


이번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 역시 경찰청 범죄정보과 내사로부터 출발한 사건이다. 이번 사건으로 범죄정보과는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다. 현재 이사건 수사를 진행 중인 특수수사과에도 범죄정보과 소속 수사관들이 파견돼 수사를 이끌고 있다.

팀장급 간부를 비롯 4~5명의 수사관이 파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범죄정보과는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경찰서에 접수된 윤씨에 대한 고소사건을 넘겨 받아 내사를 벌려왔다. 이 과정에서 첩보수집과 기초 조사 등을 진행해 왔는데 사실상 사건 관련자들과 대부분 접촉하고 증거를 수집해 수사에 준하는 첩보활동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초반 윤씨 별장에서 성접대가 이뤄졌다는 진술이 나오고 일부 언론에서 김 차관의 실명이 거론되자 김 차관은 버티지 못하고 물러났다. 김 차관은 “모든 의혹이 사실이 아니다”라며 “반드시 진실을 밝히고,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김 차관이 임명된 지 불과 6일 만이었다. 만약 구체적인 범죄 혐의점이 드러난다면 김 차관도 경찰 소환 조사를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경찰이 이번 사건으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특히 경찰이 범죄 혐의를 특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사 사실을 흘린 것에 주목하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경찰이 뚜렷한 물증을 확보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너무 판을 키웠다”며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검찰총장 취임 이후 검찰이 이른바 ‘반격’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검찰은 현직 경찰 간부의 비위 혐의에 대한 첩보를 상당부분 축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choies@ilyoseoul.co.kr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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