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국 전 문경시장 자서전 23
신현국 전 문경시장 자서전 23
  • 신현국
  • 입력 2013-03-25 22:45
  • 승인 2013.03.25 22:45
  • 호수 986
  • 2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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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팀장 : 2008년 안동에서 개최된 전국대학 축구선수권 대회 결승전에서 문경시청이 숭실대를 응원해 숭실대 관계자를 놀라게 했지요.
▲ 신 : 그렇습니다. 숭실대 연수원 문경유치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08년 10월, 안동에서 전국추계대학축구 선수권대회가 열렸고 숭실대 팀이 결승전에 진출했지요. 방송을 통해 이 소식을 듣고 현수막까지 준비해 열심히 응원을 했습니다.
본부석 반대편에 현수막을 걸고 전·후반전 90분간 열심히 응원을 한 덕분인지 숭실대는 그 대회에서 우승을 했지요. 결승전 승리 후 선수들과 선수단장이 문경시청 응원석으로 왔습니다. 
그때 그 분들은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그 분들은 우리가 안동지역 숭실대 동문들인 줄 알았답니다. 문경시청에서 응원을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이 소식은 총장님께 보고되었고, 총장님이 저에게 감사의 전화까지 주셨습니다.
 
- L팀장 : 숭실대 개교기념일 때 시장님께서 참석해 문경사과를 선물하셨지요.
▲ 신 : 그렇습니다. 2010년으로 기억합니다. 숭실대 개교기념일 때 초청을 받아 갔었는데 저보고 갑자기 축사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갑자기 드릴 말씀도 없고 해 저는 그 자리에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습니다. 사과얘기였습니다. 그날 참석하신 모든 분들께 문경 산 사과 1상자를 택배로 보내 드릴 테니 필요하신 분들은 주소를 입구 방명록에 작성하시라고 했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나왔고, 나중에 확인해 보니 120여 명이 서명을 했습니다. 
 
- L팀장 : 갑자기 축사 중에 사과이야기가 나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날 참석한 내빈이 500여 명 가까이 되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다 보내 드리려고 무모한 말씀을 하셨습니까.
▲ 신 : 제가 예상했던 숫자보다 오히려 적었습니다. 당시 문경에서 사과축제가 열리고 있었지요. 문경사과 홍보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요. 저는 한 200여 명은 주소를 쓸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120명이라고 해도 1상자에 2만 원 정도하니 금액으로는 240만 원 정도입니다. 홍보효과는 그보다 훨씬 크지 않겠어요. 장사 잘했지 않습니까. 나중에 많은 분들이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반신반의 하면서 그냥 주소를 적어본 것인데 진짜로 사과를 보내줘서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이야기했었지요.
 
 
3. 서울대 병원 연수원 유치
 
- L팀장 : 서울대 병원 연수원은 강원도 H군(郡)으로 거의 결정된 것을 역전 시켰지요. 
▲ 신 : 그렇습니다. 제가 처음 정보를 들었을 때는 이미 서울대병원연수원은 강원도 H군으로 잠정 결정된 상태였습니다. 
2008년도 말로 기억합니다. 서울대 병원 연수원 계획에 대한 정보를 듣고 평소 친분이 있던 S병원장님을 찾아뵈었지요. 그리고 찾아뵌 이유를 설명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강원도 H군에 의대연수원 부지로 이미 결정돼 불가하다는 얘기였지요. 잔뜩 기대를 걸고 찾아갔는데 허탈했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H군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S병원장과 매우 가까운 분을 동원해 병원장님을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간청도 해 보고 사정도 해 보며 좋은 부지를 제공하겠다고 건의했습니다. 문경이 체육부대도 오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설명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노력이 허사였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병원 노조를 동원했습니다. 마침 병원 노조원 중에 문경 출신 K씨가 있었지요. K씨를 찾아뵙고 의논을 했습니다. 의논이 아니라 간곡히 부탁을 드렸지요.
“병원에서 1주일 내내 의사 선생님들과 함께 일했으면 되지, 연수원에서까지 가서 또 스트레스 받을 필요 있나요? 의대 연수원은 H군으로 가라 하시고 병원 연수원은 문경으로 가도록 하시지요.”
“굿 아이디어입니다. 제가 한번 총대를 메겠습니다. 고향을 위해 한 건 하겠습니다.”
결국 K씨가 중심이 돼 의대 연수원과 병원 연수원의 분리를 주장했지요. 그리고 병원장께 노조의 입장을 전달했지요. 
“우리는 H군으로 절대 안갑니다. 의대 연수원은 H군으로 가세요. 병원 연수원은 별도로 지어 주세요.”
노조 측에서 S병원장을 만나 병원 연수원 H군 절대 불가를 줄기차게 부르짖었지요. 노조의 입장이 워낙 강경하자 결국 S병원장도  병원 연수원은 H군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결정하겠다고 노조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그 때 문경시에서 병원연수원 문경유치에 대한 제안서를 제출하였지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끝까지 노력한 결과였습니다.
 
 
4. 글로벌 선진학교 이야기
 
- L팀장 : 충북 음성의 글로벌 선진학교가 제2캠퍼스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 유치에 나섰지요.
▲ 신 : 그렇습니다. 음성의 글로벌 선진학교가 제2캠퍼스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 저도 유치에 나섰지요. 그래서 음성으로 N이사장님을 찾아뵙고 이미 폐교가 된 농암의 C학교를 소개했습니다. 
“이사장님, C학교는 학교부지도 넓고 전통 있는 학교였는데 지금은 폐교가 돼 금방 사용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 땅도 많아 학교를 확장하는 것도 용이합니다.”
그런데 성사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C학교 측과 글로벌 선진학교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지요. 뒤늦게 잘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농암면장으로부터 보고 받고 무척 실망이 컸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허탈감도 컸지요. C학교 이사장을 만나 다시 부탁을 했지만 의견차가 커서 어렵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며칠을 고민 끝에 다시 N이사장님을 찾아갔지요. 그런데 평소 매우 온화하시고 부드러우신 이사장님께서 저의 면담을 거절하셨습니다. 
“이제 문경 안갑니다. 돌아가세요.”
문전박대 당했습니다. 이사장님의 노여움이 생각보다 컸습니다. 이사장님께서 그렇게 화내는 모습은 처음 이었습니다. 그날은 결국 이사장님과 더 이상 얘기를 나누지 못하고 돌아왔지요. 1주일 뒤 다시 찾아갔습니다. 큰마음 먹고 찾아갔지요. 자존심 같은 것은 중요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비서실에서 이사장님 안 계신다고 하셨지요. 다른 쪽으로 알아보니 그날 이사장님이 사무실에 계셨답니다. 할 수 없이 또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냥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습니다. 다시 1주일 후에 염치 불구하고 또 찾아갔지요. 
“왜 또 오셨습니까?”
그래도 그날은 이사장님의 화가 많이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겠습니다. 이번에는 폐교되는 공립학교이므로 제가 직접 모든 것을 책임지겠습니다. 반드시 성사시키겠습니다. 학교부지 땅값도 싸게 해 드리겠습니다.”
“학교 주변에 추가로 땅을 사신다면 저희들이 사 드리겠습니다. 모든 행정적인 일들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경북도 교육청의 학교인가 문제도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이사장님의 승인을 얻어 낸 것입니다. 삼고초려해 유치한 것이지요. 향후 글로벌선진학교는 문경교육의 큰 효자 노릇을 할 것입니다. 지난해 세계정구대회 때 글로벌 선진학교 학생들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영어·불어·중국어까지 자유자재로 통역하는 학생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제 14장 환경문제
 
 
1. 환경 가족
 
- L팀장 : MB 정부 초대 환경부장관 후보로 거론됐지요.
▲ 신 : 그렇습니다. 저는 평생을 환경업무에 종사했지요. 20년 이상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했습니다. 환경부에서 잔뼈가 굵었지요. 환경 분야를 전공했고 대학에서 환경 강의도 했습니다. 박사학위도 받고, 환경분야 기술사도 두 개나 취득했지요. 
제가 환경을 공부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한국과학원을 졸업하고 처음에는 농촌진흥청으로 발령을 받았지요. 진흥청에서 3년 근무하다가 1980년 환경청이 생기면서 환경청으로 옮겼지요. 환경청에 근무하게 되면서 환경공부를 하게 됐는데 당시에는 환경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국내 대학에도 환경학과가 개설된 곳이 몇 군데 안 됐지요. 
저는 그래도 운이 좋아 공무원 생활하면서 외국 유학을 가게 됐고 1987년에 환경공학 박사학위를 받았었는데 당시에는 박사 사무관이 흔치 않았지요. 사무관으로 외국에서 박사학위 받은 것은 중앙 부처에서 제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환경부에서는 최고의 전문가로서 각광을 받았지요. 장ㆍ차관님들도 전문분야에 대해서는 저의 견해를 자주 물으셨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 본면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신현국 ilyoseou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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