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당시 퍼스트레이디 박근혜 행적논란
10·26당시 퍼스트레이디 박근혜 행적논란
  • 이석 
  • 입력 2005-03-10 09:00
  • 승인 2005.03.1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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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구국여성봉사단을 이끌던 당시 상황을 상세히 언급한 책이 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 10·26 사건의 실체를 추적한 ‘김재규 X-파일’이 그 것. 이 책은 5공 시절이던 1985년 ‘10·26과 김재규’라는 제목으로 첫 출간됐다. 그러나 서점에 깔리자마자 당국의 조치로 전량 수거됐다. 이번에 출간됨으로써 이 책은 20년만에 햇빛을 다시 보게 되는 셈이다. 박 대표는 지금까지 구국여성봉사단 문제를 극구 부인해 왔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음해성 루머로 치부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박 대표의 이같은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고 있다. 구국여성봉사단 명예총재로 있던 최모 목사(사망)의 비리, 비리에 대한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국, 이 과정에서 최 목사가 비리를 인정한 내용 등을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심지어 비리사실을 인정한 장소에 박 대표도 동석한 것으로 적고 있어 자칫 논란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기자는 사실 확인을 위해 저자인 김대곤(전 월간 신동아 편집장)씨와의 인터뷰를 여러차례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직접 모은 자료와 관련자들의 증언을 통해 구성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인터뷰에는 응하지 않았다. 때문에 책 내용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복기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우선 여성봉사단의 조직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 여성봉사단에는 운영위원회가 별도 존재했다. 운영위원이 되기 위해서는 수천만원의 가입비와 수백만원의 운영비를 매달 내야 한다. 때문에 운영위원은 고액 소득세 납부자들이 대부분이다. 유모 의원 등 국회의원도 일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김재규 전중앙정보부장이 구국여성봉사단의 비리를 파헤치게 된 배경도 상세하게 언급했다.

지난 79년 구국여성봉사단의 총재인 최모 목사는 박 대표를 명예총재로 추대했다. 박씨를 등에 업은 최 목사는 이후 적지 않은 이권에 개입했다. 최 목사의 집이 ‘소(小) 청와대’로 통할 정도였다. 때문에 최 목사의 집에는 청와대의 후광을 얻기 위한 고위 공직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장가를 가려거나 국회의원이 되려면 최 목사와 통하라”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물론 수사기관들도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가족이 연관돼 있어 쉽게 손을 못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청와대에도 좋지 않은 소식이 들어갔다. 중앙정보부와 수사기관의 보고서가 모두 최 목사의 비리를 지적하고 있었다. 결국 박모 민정수석비서관을 주축으로 하는 진상 조사단이 구성됐다. 보고서를 본 박 전대통령은 박 대표를 불러 주의를 줬었다. 또 최 목사에게 여성봉사단에서 손을 떼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최 목사의 부정은 계속됐다. 최 목사는 오히려 박 대표를 총재로 앉히고, 자신은 명예총재로 물러앉았다. 김재규가 이 사건을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한 것도 이때 즈음이다. 대통령 주위의 비리를 아무도 문제삼지 않는 것을 본 김재규는 직접 조사에 착수했다. 김재규는 검사 출신인 백모씨 등에게 조사를 지시했다. 조사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했지만 면전에서 핀잔만 들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에서 그런 것까지 조사하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잡음이 끊이지 않자 대통령이 직접 최 목사를 ‘친국’하기로 했다.

박 전대통령은 고려병원에 입원한 최 목사를 불러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친국 장소에는 김재규와 김씨의 지시로 문제를 조사한 중앙정보부 소속 백모씨, 박 대표 등이 참석했다. 최 목사는 처음에 자신의 비리 사실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결국 문제를 시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김재규의 이같은 행동에 대한 평가는 현재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비판론자의 경우 그가 ‘만용’을 부린 것으로 평가한다. 정보부장 정도 되는 사람이 이런 문제를 자기 선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대통령의 친국까지 몰고간 것은 능력부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옹호론자의 경우 “김재규가 아니었으면 도저히 못할 행동”이라고 말한다. 당시 박 대통령은 정에 이끌리는 인사 모습을 많이 보였다.

이같은 행동은 그렇지 않아도 쉽지 않은 대통령 가족에 대한 조사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때문에 옹호론자들은 김재규가 아니라면 과연 이같은 용기를 부릴 인물이 있었겠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실제 지난 75년부터 3년간 청와대를 출입했다는 이한수 전 서울신문 사장에 따르면 당시 이 문제를 청와대에 제기한 비서관은 사표를 써야 했다고 술회했다. 이 전사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구국여성봉사단은 당시 굉장한 조직이었다. 사실상 퍼스트레이디인 근혜씨가 관여했기 때문에 돈이 많이 모였다”면서 “박 대표 때문에 청와대에서 아무런 말도 못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분명한 사실은 이같은 문제가 10·26 사건이 발생하는데 ‘도화선’이 됐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는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김재규는 합리파였다. 국내 정치에도 온건노선을 취했다”면서 “그러나 박 전대통령이 거듭되는 문제 제기에도 이를 무시하자 거사를 결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재규도 항소이유서에서 “유신이라는 거대한 괴물은 막강한 것이나, 박 대통령 한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괴물은 박 대통령 한 사람이 없어지면 그대로 없어질 것으로 보았다”면서 “유신을 부수고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뺏겨버린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을 회복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박 전대통령이 최 목사를 상대로 친국할 당시 박 대표도 자리에 있었다는 점이다. 박 대표는 그동안 여성봉사단과의 연루 의혹을 극구 부인해 왔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만약 범죄가 있었다면 그동안 피해자도 나타나고 시끄러웠을 것”이라면서 음해성 루머로 치부했던 게 사실이다. 때문에 정가 안팎에서는 박 대표가 친국 당시 문제를 알고 있었다면 자칫 논란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재규는 청렴하고 심지가 곧은 인물”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는 반란 수괴로 처형됐지만 훗날 평가는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하나는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혁명을 꿈꾼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군부정권 내의 배신자다. 이 책은 개인적인 판단을 유보한다. 단지 그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들려줄 뿐이다.물론 한때는 출판금지라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 책은 지난 85년 ‘10·26과 김재규’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그러나 서점에 깔리자마자 당국의 조치로 전량 수거됐다 출간 20년만에 햇빛을 보게 되는 셈이다. 김재규는 재판정에서 “3군단장으로 있던 72년 유신헌법이 공포되는 것을 보고 거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거사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꽤 오랫동안 일을 꾸며온 것이 된다.

또 하나 새로운 내용은 “김재규가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축재축첩을 했다”는 계엄당국의 발표가 신빙성이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오히려 그가 청렴하고 심지가 곧은 인물이었다는 주장에 공감을 얻고 있다”고 말한다.에피소드 한토막. 김재규는 평소 구속된 민주인사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지난 77년 12월19일 당시 진주교도소에서 복역중이던 김대중 전대통령을 서울대학병원에 이송한 것도 그의 노력 때문이다. 당시 김재규는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 기분좋은 말씀 드리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추운데, 감방에서 수고하는 분 한분을 더운 곳으로 모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저자는 김재규의 ‘거사’에 미국이 어떤 형태로든 개입했을 것이라는 기존 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실제로 10·26 이후 김재규의 거사에 미국이 어떤 형태로든 개입했을 것이라는 루머가 나돌았다. 이 루머는 배후가 없다는 계엄사령부의 수사 발표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았다. 나중에는 대통령 살해범이 김재규가 아닌 미국이 보낸 전문 암살자일 것이라는 기상천외한 ‘설’까지도 확대됐다.그러나 저자는 미국과의 관련설을 한마디로 일축한다. 그는 “김재규는 ‘누구와도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으며, 더군다나 미국인과의 협의는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면서 “10·26이 일어나기 1주일 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 대사를 만난 적은 있지만, 그것은 의례적인 회동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이석  suk@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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