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숙 살인사건 2
정인숙 살인사건 2
  • 이수광 작가
  • 입력 2013-03-14 15:21
  • 승인 2013.03.14 15:21
  • 호수 984
  • 2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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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과연 누구의 아이를 낳았을까

형사들은 수첩의 존재를 극구 부인했다. 그러나 공식적인 발표는 하지 않았으나 개인적인 친분을 통해 질문하자 현직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비롯해 정관계 고위층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심지어는 청와대까지 거론되었다.

‘권력형 스캔들이구나.’
기자들은 1970년을 뒤흔들 대형사건이라고 짐작했다.
경찰은 즉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언론에 발표했다. 사건이 한밤중에 발생했기 때문에 신문은 조간부터 사회면에 대서특필했고 방송은 시시각각 속보로 보도했다.
3월 19일 오후에 석간으로 발행된 <중앙일보> 역시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사건을 보도하는 기자들은 이미 권력형 스캔들로 파악하고 있었다.

17일 밤 11시쯤 서울 마포구 합정동 139번지 앞 강변3로에서 전 대구부시장 정도환의 4남 종욱(34)씨와 외동딸 인숙(26)양이 서울 자 2-262호 검은색 코로나 자가용을 타고 가다가 40대의 괴한이 쏜 45구경 권총에 인숙양은 오른쪽 귀밑에 관통상을 입고 그 자리에서 숨지고 종욱 씨는 오른쪽 허벅다리를 맞았다. 종욱씨는 이날 하오 9시쯤 집에 있다가 동생 인숙양으로부터 타워호텔에 있는데 데려가 달라는 전화를 받고 차를 몰고 나가 집으로 태워 가던 길이었다.

다리에 박힌 탄환제거수술을 받은 종욱씨는 18일 상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309호실에서 의식을 회복, “차가 절두산을 돌아 150미터쯤 합정동 인터체인지 쪽으로 달렸을 때 키가 후리후리하고 회색 코트를 입은 40대가량의 남자가 손을 들기에 검문인 줄 알고 멈추자 괴한은 갑자기 앞문을 열고 ‘꼼짝하면 죽인다’고 위협, 동생에게 한 발을 발사하고 계속 자기에게 한 발을 발사, 정신을 잃었다”고 말했다. 종욱씨는 “괴한이 차를 세웠을 때 얼굴을 못 보게 차가 진행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손을 쳐들었다”고 말했다.

현장검증에서 경찰은 운전석 밑바닥에서 45구경 권총 탄피 2개를 찾아냈을 뿐 아무런 유류품도 발견 못했으나 앞문 손잡이에서 3개의 지문을 채취 치안국에 조회했다. 사건은 밤 11시 5분쯤 서울 영 1-4285호 택시 운전사 노삼룡(31)씨가 현장을 지나치다 자가용의 앞문이 열린 채 인기척 없이 조용히 서 있는 것을 발견, 수상히 여겨 접근했다가 현장을 발견해 경찰에 알렸다.

이때 자가용차의 앞문은 앞쪽이 모두 열린 채 룸라이트가 꺼져 있었으며 뒷문은 양쪽 모두 잠겨 있었다. 운전대에 앉은 종욱씨는 머리를 운전대 옆문 쪽에 박고 고꾸라져 있었으며 인숙양은 오른손으로 총구를 막으려 했는 듯 머리 위로 구부리고 운전대 쪽으로 기울어진 채 숨져 있었으며 왼손은 시트에 축 처져 있었다. 운전사 노씨는 인숙양이 이미 죽은 것을 확인하고 부상한 종욱씨를 자기 택시에 태우고 대신의원에 옮겼으나 큰 병원으로 가라는 말에 세브란스병원으로 가는 길에 11시 20분쯤 신촌파출소에 신고했다.

운전석 밑바닥과 흰 커버를 한 시트는 온통 피로 얼룩져 있었고 검정색 밍크코트를 입은 인숙양은 초록색 원피스 자락이 들춰진 채였으며 검은색 하이힐의 왼쪽이 벗겨져 있었다. 인숙양은 오른손 무명지에 초록색 비취반지를 끼고 있었으나 평소에 1.7캐럿짜리 다이아반지(시가 200만 원)를 끼고 있던 왼쪽 무명지엔 핏자국이 난 채 빼어지고 없었다. 뒷자리에 떨어진 인숙양의 주황색 장미무늬가 프린트된 검정핸드백 속엔 출입국신고카드, 패스포드, 선글라스, 바이엘 아스피린과 화장품이 그대로 들어 있었으며 뒤진 흔적은 없었다. 정씨의 바지주머니에서는 라이터, 1만 원짜리 보증수표 2장, 현금 1200원이 나왔으며 인숙 양의 손가락에서 빼어진 다이아반지가 피가 엉겨진 채 발견됐다.

<중앙일보>가 사회면에 대서특필한 내용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었다. 정인숙이 고급 콜걸이라는 신분이 밝혀지면서 1970년의 대한민국을 섹스 스캔들로 뒤흔들고 권력의 추악한 이면을 드러나게 했다. 특히 정인숙에게 세 살 된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의 아버지가 누구냐는 의문이 증폭되면서 최고 권력자인 박정희 대통령까지 소문에 휘말리게 되었다.

정인숙 리스트 너랑 나랑 구멍동서

이날 서울은 3월인데도 폭설이 내렸다. 서울 시내가 온통 하얗게 뒤덮인 가운데 라디오와 신문에서는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권총 살인사건은 그 예가 드물었고 살해된 피해자가 묘령의 여성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이 사건이 시민들에게 최고의 화젯거리가 된 가운데 수사본부가 노고단파출소에 설치되었다. 취재진 50여 명이 몰려들어 사건의 실체를 실감케 했다.

절두산 앞에 세워진 코로나 승용차는 3월 17일 밤에 파출소 앞으로 옮겨졌다. 이 차는 사실 경찰에 신고되자마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옮겨져야 했다. 그러나 경찰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초동수사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승용차가 노고단파출소 앞에 있다는 사실은 기자들조차 몰랐다.

3월 17일 밤이 지나고 3월 18일 새벽이 될 때까지 승용차는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채 파출소 앞에 방치되어 있었다.
“코로나 승용차에서 묘령의 여인이 살해되었다면서? 빨리 사진 찍어서 데스크로 보내.”
각 신문사의 데스크에서 기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한국일보>, <조선일보>를 비롯해 어느 신문사나 마찬가지였다. 코로나 승용차 사진을 찍으라는 지상명령이 떨어지자 기자들은 절두산 앞 강변로로 달려갔다. 그러나 사건 현장에 있어야 할 차는 이미 경찰이 치운 상태였다.
“코로나가 어디로 갔습니까?”
기자들은 수사본부가 설치되어 있는 노고단파출소로 몰려와 아우성을 쳤다.
“우리는 모릅니다.”
경찰은 기자들에게 코로나 승용차의 행방을 말해주지 않았다.
“아니, 수사를 하는 형사들이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우리도 지금 소집돼 상황을 잘 모릅니다.”

경찰을 다그쳐봐야 소용이 없었다. 파출소 안은 수많은 형사들과 기자들로 비좁았다. <조선일보> 도준호 기자는 파출소에 있기가 답답해서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한국일보> 기자가 도준호 기자를 따라 나왔다.
“대체 승용차를 어디 가서 찾아?”
<한국일보> 선배 기자가 투덜거렸다. 그들은 담배를 피우면서 파출소 주변을 왔다 갔다 하다가 근처에 세워져 있는 코로나 승용차를 발견했다.
‘설마 이 차가 사고차인가?’

도준호 기자는 <한국일보> 선배를 따라 코로나 승용차로 다가갔다. 선배가 먼저 유리창의 눈을 털고 차 안을 들여다보았다. 묘령의 여인이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여인이 누구인지 확인하려고 차문을 열었다.
“어이쿠!”
<한국일보> 선배가 뒷문을 열다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차문을 열자 여자가 옆으로 힘없이 쓰러진 것이다.
“정인숙!”
도준호 기자는 경악했다. 정인숙은 초록색 원피스에 스카프까지 두르고 있었다. 그날따라 한껏 멋을 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승용차가 여기에 있었다니!’

도준호 기자는 어이가 없었다. 정인숙의 시신은 그때까지 차 안에 방치돼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재빨리 시체와 승용차의 사진을 찍었다. 파출소에 있던 기자들도 몰려나와 사진을 찍었다. <다음호에 계속>

 

* 위 내용은 < 대한민국 12비사>(이수광 저, 일상과이상 간)의 일부 내용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책 속에 있습니다.

 

 

이수광 작가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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