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유수정 기자] ‘재벌’. 여러 개의 기업을 거느리며 막강한 재력과 거대한 자본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재벌의 개념과 별반 차이가 없다. 운전기사가 있는 고급세단 차량에서 내리는 총수들의 모습이 연상되는 것도 결국은 돈이 많다는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이 그렇지 않다면 과연 믿는 사람이 있을까. 실제 기업 오너들 중 보유주식 대비 담보주식 비율이 99.9%로 사실상 100%에 가까운 수치를 보이는가 하면 자녀 소유의 주식까지 모두 금융기관에 담보로 맡긴 ‘깡통 CEO’가 있다. 그들은 누구인지 [일요서울]이 알아본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담보주식 보유비율 99.9%
본인 지분 포함 가족지분까지 몽땅 잡힌 총수도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보유한 주식 대부분이 은행 등 금융기관에 묶여있는 상태로 나타났다.
CEO스코어(대표 박주근)가 발표한 ‘재벌 총수 주식담보비율’ 자료에 따르면 현재현 동양 회장은 지난달 26일 이전 기준 ㈜동양 보유주식 790만602주 가운데 789만6205주를 담보차입계약에 사용했다. 이는 99.9%에 달하는 수치로 자료상 공개된 14개 기업 중 가장 높은 수치다.
보유주식 556만8500주 중 552만7000주를 금융권에 담보로 맡긴 김준기 동부 회장이 99.3%의 비율로 그 뒤를 이었으며 박용만 두산 회장 역시 88만8179주 중 82만4262주를 질권설정해 담보주식으로 보유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밖에도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보유주식 203만964주 중 절반이 넘는 121만2100주가 금융권 주식담보로 묶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동양은 현재현 회장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주식담보 대출 비중 또한 상상을 초월해 눈길을 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동양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현 회장 자녀들의 질권설정 비중 역시 늘어났기 때문이다. 동양매직의 상무보이자 현 회장의 장녀인 현정담씨는 보유주식 중 389만6294주(99.9%)의 주식을 질권 설정 및 담보차입 계약했다.
또 동양온라인 본부장으로 재직 중인 차녀 현경담씨는 보유주식 156만5820주(86.3%)를 담보로 대출 받았으며 막내딸 현행담씨 역시 109만주(93.5%)를 질권 설정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 회장의 외아들이자 동양시멘트 상무보인 현승담 씨는 315만2496주(98.5%)에 대해 담보대출을 받은 상태다.
질권설정, 기업 부채 돌려막기?
총수 보유 주식의 대부분을 금융권에 맡긴 이들 4개 기업은 경영 악화로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보통 대주주인 기업의 오너가 주식을 담보로 대출 받는다는 것은 더 이상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파산 직전의 상태라는 말이다.
이에 그들은 주식담보를 최후의 히든카드로 꺼내 급한 불을 끈다. 결국 추가로 기업의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채권금융기관협의회(채권단)에서 대표에게 주식을 내놓으라고 했다는 것은 기업 경영이 난관에 봉착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지난 4일 ‘한계기업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1200개 상장기업 중 지난해 3분기 현재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한계기업의 비율이 전체의 15%(180개)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건설업종의 한계기업 증가세가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2009년 9개사에 그쳤던 대기업 한계기업 수가 지난해 19개로 대폭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같은 기간 시가총액 상위 5개 종목(삼성전자·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포스코)을 제외한 대기업의 영업이익 증가율이 54%에 그친 반면 부채 증가율은 97%에 달한 것으로 조사돼 경영악화와 부채증가 등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노호영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일요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사재를 출연해서 주식을 담보로 넣는 것은 기업에 대한 대출 여력이 없기 때문에 추가로 담보를 요청한다는 의미”라면서 “이는 경영 악화에 허덕이는 회사를 적극적으로 살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보유주식이 모두 담보주식으로 넘어갔다 하더라도 주식의 소유권은 여전히 그들 자신의 것”이라며 “이 같은 상황으로 섣불리 한계기업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으나 기업이 어려운 상태라고는 판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계기업이란 부실한 재무구조 탓에 벌어들인 수익이 이자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상태로 더 이상의 성장을 기대하기 힘든 기업을 뜻한다.
한편 금융권에 담보로 맡긴 주식이 단 한 주도 없는 대기업 총수들도 존재해 그들에게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을 비롯해 구본무 LG 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등은 주식담보비율이 0%다. 또 신동빈 롯데 회장과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 역시 금융권에 묶인 주식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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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정 기자 crystal0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