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사퇴회견과 박 대통령 대국민담화로 野 궁지
김 후보자는 4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고 했던 마음을 접으려고 한다”며 사퇴의사를 표명했다.
그는 “새 정부가 출범하고 일주일 지나고 어제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 영수회담 무산을 보면서 참으로 답답한 심정이었다”며 “조국을 위해 바치려 했던 모든 것이 무너지고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착잡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런 뒤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가 절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부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치와 국민이 힘을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가 전격적으로 사퇴의사를 밝힌 데에는 미래부 신설로 기존의 방송통신위원회가 전담했던 방송통신 정책의 이관 문제가 여야간 핵심쟁점으로 발목을 붙잡으면서 정부조직법 개편안 처리가 난항을 겪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여야는 IPTV와 위성방송의 인·허가권을 미래부가 담당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지만 케이블방송의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 문제를 놓고 야당이 방통위에 그대로 남겨둬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고, 청와대와 여당은 방송진흥의 핵심이라며 미래부 이관을 주장하면서 팽팽하게 맞서 있는 상태다.
민주당은 공정성 문제를 들어 미래부에 이관될 경우 방송산업 전반이 정부의 통제 아래 장악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부처 신설을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김 후보자는 “지금 한국은 과학과 아이씨티(ICT) 산업을 생산적으로 융합해 새로운 일자리와 미래 성장동력 창출해야 미래를 열 수 있다”며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를 실현하려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도 이날 대국민담화문을 통해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하고,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반드시 과학기술과 방송통신의 융합에 기반한 ICT 산업 육성을 통해 국가성장동력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것은 저의 신념이자 국정철학이고 국가의 미래가 달려있는 문제”라며 역설했다.
박 대통령은 “저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 문제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라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국민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겠다는 목적 이외에 어떠한 정치적 사심도 담겨있지 않다”고 밝혔다.
야당이 우려하는 방송 장악에 대해서도 “일부에서 주장하는 방송 장악은 그것을 할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며 “그 문제는 이 자리에서 국민 앞에서 약속드릴 수 있다. 대통령으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충정의 마음을 정치권과 국민들께서 이해해 달라”고 야당에 호소했다.
김종훈 사퇴로 결국 정부조직법 개편안 처리 끝내 진흙탕 대결?
김 후보자의 사퇴를 놓고 여야간 반응은 극명하다. 여당은 안타까움과 함께 야당이 새 정부 출범에 몽니를 부리고 있다며 책임을 전가하면서 비판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 후보자는) 어렵게 모신 유능한 분에게 제대로 기회를 못드려서 죄송하다”며 “미국에서 성공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이를 버리고 조국을 위해 일해보겠다고 나선 분이 실망하고 우리나를 떠나게 된 데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을 향해 “정부조직법이 제대로 통과됐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매우 아쉽다”며 “인사청문회가 장관 후보자에 대해 능력보다는 사생활을 침해하는 정도가 너무 심하고, 명예훼손을 물론,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황우여 대표 역시 “대한민국은 어려움이 많은 땅이지만 국민과 정치권이 함께 이를 극복하는데 의미가 있다”며 “어려움 뒤로 물러서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 (김 후보자가) 조국을 위한 뜻을 접겠다는 것에 대해 재고해야 한다. 국민들이 (미래부에 대해) 기대하고 있고, 정부조직법도 곧 타결될 것이니 사퇴를 재고해서 조국을 위해 헌신해 달라”고 덧붙였다.
반면 민주당은 김 후보자가 자진 사퇴 이유를 야당에 떠넘긴 것으로도 공직후보자 자질이 없다고 지적했다.
정성호 수석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김 후보자는 CIA 근무경력과 국적논란, 거액의 재산축적 논란 등 본인의 자질문제”라며 “많은 국민에게 우려를 끼쳤음에도 야당에 책임을 전가하고 사퇴하는 것은 그 자체로 그가 공직후보자로서의 자질이 없음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이라고 몰아세웠다.
정 대변인은 “만약 김 후보자가 미국의 장관 후보자로 나섰다면 철저한 사전 검증에 걸려 후보자 반열에 아예 들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무원칙한 부실인사에 있다. 김 후보자 사퇴로 박근혜 정부의 인사난맥상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모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은 야당만 탓하지 말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자질과 능력, 도덕성 있는 인사를 추천하기 바란다”고 질타했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됐든 김 후보자의 자진사퇴와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계기로 더 이상 정부조직개편안의 처리를 지연해선 안된다는 비난여론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두고 ‘국회와의 불통’이 거론되는 이면에 민주당도 새 정부 출범에 발목을 잡는다는 정치적 부담을 떠앉을 수밖에 없는 막다른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김 후보자의 사퇴는 박 대통령의 불통 보다는 민주당이 몽니를 부린 결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간이 지체될수록 반대급부만 초래할 공산이 크다. 대화와 타협으로 양보를 이끌어 내려던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정면돌파로 배수진을 칠 경우 정국의 흐름은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될 수 있다”며 “대승적 차원에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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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석 기자 kd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