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사라지는 서울의 전통거리
[르포] 사라지는 서울의 전통거리
  • 강휘호 기자
  • 입력 2013-03-04 11:21
  • 승인 2013.03.04 11:21
  • 호수 983
  • 2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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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사업 논리에 문화시장 헉헉

신세계·롯데 등 대기업, 성역 없는 사업 확장
자영업자 “상대할 방법·선택할 권리 없다”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 인해 서울의 전통거리들이 몰락하고 있다. 충무로 애견거리·신당동 떡볶이타운·종로 단성사·신촌 아트레온 등은 각각 수십 년에서 백년이 넘는 세월을 거치면서 추억이 깃든 ‘서울거리’의 대명사로 자리매김 해왔다. 그러나 대기업들이 이들의 영역을 침범한지 불과 몇 년, 이들 중 대다수가 자리를 빼앗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대기업들의 영업방식이 골목상권 침해 문제를 넘어 서민들의 추억마저 앗아가고 있다”며 “젊은 세대들이 중·장년층이 됐을 때는 추억의 장소 하나 갖기도 힘들 것 같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울러 “역사와 추억이 공존하는 거리들이 가지고 있었던 관광 상품으로써의 가치도 바닥을 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서울 충무로 애견거리에는 폐점 후 간판조차 떼지 못한 채 방치된 상가들로 가득 차 있다.

‘대한민국 애견 중심지’인 서울 충무로 애견거리도 대기업의 화살을 피해갈 수 없었다. 애견거리가 처음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무려 1950년대, 하지만 이 같은 60년 역사도 대기업들의 자본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지난달 28일 낮에 찾은 충무로 애견거리는 썰렁하다 못해 음산하기까지 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40여 곳에 달하는 애견상가와 동물병원·애견용품점이 즐비해 있었지만 현재 남아있는 점포는 고작 10곳도 되지 않았다.

이유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한 애견상가 사장은 “몰라서 묻는 것 아니지 않느냐. 대기업들이 애견사업에 뛰어들면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에게는 답이 없다”며 “자영업자들이 일궈놓은 명소인 ‘애견거리’도 이제 모두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솔직히 애견사업까지 대기업의 영향을 받을 줄은 몰랐다”며 “정부도 골목상권 운운하지만 재래시장이나 신경써주지 애견사업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또 다른 애견상가 사장 역시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도 자영업자들이 내놓는 가게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가게 중 누가 이길 것 같나. 자영업자들은 그저 단골손님 장사가 전부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2010년 이후, 애견산업의 성장성을 탐내던 대기업들의 애견시장 진출이 거세졌다. 신세계 이마트는 2010년 애견전문매장인 ‘몰리스펫샵’을 선보였고, 롯데마트 역시 지난해 애완용품 전문점인 ‘펫가든’으로 애견시장에 뛰어들었다. 특히 몰리스펫샵은 지난해 매출이 전년대비 126% 증가했을 만큼 성장속도가 남다르다. 더불어 아이파크백화점(쿨펫), 대한제분(이리온), CJ제일제당(CJ오프레쉬), 모나미(닥터펫·모나미랜드·모나미펫)등 다수 대기업들이 애견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농촌진흥청이 애견시장 규모는 1조8000억 원에 달하며 매년 11% 가량 성장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음에도 많은 애견상가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설 곳 잃은 자영업자, 선택권 날린 소비자

서울 종로에 위치한 단성사가 새로운 주인을 찾기 위해 분양 중이다.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영화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07년 세워진 한국 최초 본격 상설 영화관 종로 단성사가 없어졌다. 지난달 15일에는 신촌 신영극장의 명맥을 이어오던 영화관 아트레온도 문을 닫았다. 아트레온이 문을 닫은 자리에는 대기업 CJ의 계열사인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가 들어선다. 단성사 공사 현장 관계자도 “현재 CJ, 롯데 등 다양한 대기업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대형 멀티플렉스의 등장을 예고했다.

최근 대기업 멀티플렉스 체인의 관람료 인상으로 영화계가 술렁이는 이 때, 개인 사업자 영화관들이 점점 줄어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극장수는 314개로 2011년 292개에 비해 22개 많아졌다. 스크린수도 2011년(1974개)보다 107개 늘어 2081개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 중 멀티플렉스는 83.7%의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증가와 함께 폐관하는 개인 사업자 영화관 역시 급증하는 추세다. 최근 서울시내에서 폐관된 40개 영화관 중 대기업 계열이 아닌 영화관의 수는 36개관이나 됐다. 종로 3가의 서울극장·대한극장 등 극장 문화를 선도하던 극장들도 대기업 멀티플렉스들에 밀려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극장이 사라진 자리 곳곳에는 CGV·메가박스·롯데시네마 등 대기업 계열 영화관들이 생겨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같은 현상은 자영업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도 아쉬움을 느끼게 했다.

공사 중인 단성사 주변을 서성이던 한 노파는 “대기업들 돈 버는 건 좋지만 노인네들 추억의 장소 몇 군데는 남길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며 “옛날 극장 주변에서 장사하던 친구들도 다 사라졌다”고 전했다. 또 “요즘 생기는 영화관들은 너무 젊은 사람들만 있어서 끼지도 못 하겠다”며 “시설 좋은 영화관이라고 해서 마냥 좋은 것 같지는 않다. 다양한 소비자가 있으면 다양한 장소가 있어야지 않겠는가”라고 생각을 밝혔다.  

문화 관광 시장도 빛 좋은 개살구?

서울 중구 신당동 떡볶이타운에는 북적이는 손님 대신 한적한 거리만 남아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고 있는 ‘음식테마거리 관광활성화 지원사업’ 대상지인 서울 중구 신당동 떡볶이타운에도 손님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관광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쓸쓸한 거리가 눈에 띄었다.

떡볶이타운에서 영업 중인 한 상인은 “떡볶이도 더 이상 길거리 음식이 아니라는 인식이 많아졌다”며 “대기업까지는 아니더라도 프랜차이즈 떡볶이 업체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도 “관광지역이라고 하더라도 신당동 떡촌 명성은 사라진지 오래됐다”면서 “젊은 사람들이 주로 찾는 떡볶이 시장 싸움에는 프랜차이즈만 있다”고 하소연했다.

신당동 떡볶이타운 앞에서 만난 대학생 연인 또한 “동대문에 놀러왔다가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신당동 떡볶이타운으로 들어왔다”며 “사실 관광지라고 할 게 있나 싶다. 우리는 신당동에 추억도 없고, 프랜차이즈가 더 가기 편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러한 의견들과 마찬가지로 업계 분석에 따르면 분식 프랜차이즈는 4년 전보다 무려 62% 증가했다. 특히 분식 프랜차이즈의 선두주자 아딸은 전국기준 1000여 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죠스떡볶이·국대떡볶이·공수간 등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대부분의 떡볶이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죠스떡볶이의 경우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대기업 CJ와 연관설이 흘러나와 “골목상권 침해다”라며 한바탕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에 죠스떡볶이를 운영하는 죠스푸드와 CJ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비난여론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었다.

이처럼 골목상권과 함께 관광지 사업마저 대기업이 집어 삼키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대기업이 사업을 주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민들의 문화마저 주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선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중소기업적합업종이 산업수출을 막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정치권과 행정당국이 대기업한테는 눈치를 보면서 골목상권을 잠식한다는 논리에 프랜차이즈 기업들만 내세워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때문에 대기업과 자영업·중소기업 간 동반성장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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