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터널에 들어섰다고 생각할겁니다. 아직은 많이 어둡지만 꼭 빠져나오겠습니다”
역사(力士) 사재혁(29·제주특별자치도청)이 다시 바벨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2012 런던올림픽, 플랫폼에 쓰러져 있던 사재혁의 모습이 대중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남자 역도의 대들보 사재혁은 지난해 8월 2일 영국 런던 엑셀 아레나에서 열린 남자역도 77㎏급 인상 2차 시기에서 162㎏을 들어 올리다 불의의 부상을 입었다. 바벨을 머리 위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오른쪽 팔꿈치가 뒤로 꺾인 것이다. 이날 찾아온 끔찍한 사고는 올림픽 2연패를 향해 질주하던 역사의 꿈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이후 많은 이들이 사재혁의 은퇴를 예상했지만 그는 기어코 재활을 선택, 선수로서의 복귀를 선언했다.
사재혁은 지난 18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대한역도연맹 2012년도 우수선수·단체·유공자 시상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연맹은 이날 런던올림픽 남자 역도를 대표했던 사재혁에게 특별상을 수여했다.
시상식 참석 차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사재혁 역시 밝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졌다. 사고를 당했던 그날의 상처가 생각보다 깊어 보였다.
사재혁은 올림픽 이후 바벨을 놓고 지냈던 6개월을 ‘타락’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그는 “올림픽 이후 역도를 계속해야 할지 정말 고민이 많았다”며 “오랜 고민 끝에 최근에야 재활을 시작했다”고 그간 마음고생을 드러냈다.
사재혁은 실제로 지옥과도 같은 나날을 보내야 했다. 부상의 악령을 떨쳐 버리기도 벅찬 상황에서 대표팀 자리까지 반납해야했다. 더욱이 잘나가던 때와 비교해 여건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성적을 못내면 연봉의 절반을 돌려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지만 선뜻 그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실업팀 찾기도 쉽지 않았다. 유일하게 그를 품은 곳이 제주특별자치도청이었다.
하지만 사재혁은 수많은 악조건 속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는 “일단 역도라는 긴 터널에 들어섰다. (하지만) 긴 터널을 꼭 빠져 나오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이어 “대표팀에서 탈락 한 뒤 외부에서 개인 훈련을 하고 있는데 상황이 절박하니 더 부지런해 졌다”며 “한 때 메달리스트였다는 생각은 버린 지 오래다. 오로지 재활에만 전념하고 있다”고 현재 상태를 전했다.
그는 또 유일하게 자신을 받아준 제주도청에 대해서도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신 만큼 팀에게 꼭 보답하고 싶다”고 밝혔다.
“당신은 나의 영웅” 한마디에 재활 결심
사재혁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돌아온 이유는 오직 사람이었다. 자신을 영웅이라 부르는 소중한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 부상을 당한 것도 재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모두 본인의 업보라고 받아들였다.
사재혁은 부상을 당한 후 자신이 미웠고 사람들의 기대는 원망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스스로를 움츠러들게 했고 바깥세상과 단절을 가져왔다. 그렇게 흘려보낸 6개월이 사재혁이 말한 ‘타락’의 시간이었다.
이후 그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고민했다. 어깨부상에 비해 비교적 회복이 빠른 팔꿈치 부상이었지만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바벨을 다시 드느냐 마느냐’라는 인생의 고민을 놓고 사재혁이 선택한 것은 한 달 간의 해외여행이었다.
그리고 사재혁은 해외여행의 끝자락에서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이 여행에서 세상 모두가 자신을 욕할 거라는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재혁은 “해외여행 당시 주변인들로부터 생각치도 못했던 말을 들었다. 나에겐 더할 나위 없는 위로였다”며 “‘너는 영웅이야…’라는 한마디가 나를 움직였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다시 역도를 시작하게 된 사재혁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조카의 탄생도 큰 힘이 됐다. 사재혁은 조카에 대해 “조카를 통해 ‘인꽃’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그 만큼 소중한 첫 조카다. 매우 예쁘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물론 그는 아직도 부상의 망령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그 역시 올림픽 당시 입은 부상이 향후 10년은 스스로를 괴롭힐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무릎, 손목, 어깨, 그리고 팔꿈치까지, 5번의 수술을 하고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다시 바벨을 들어 올렸던 사재혁이기에 많은 팬들이 그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터널 입구에서 생애 6번째 자신과 싸움을 다짐한 사재혁이 다시금 제2의 전성기를 열여 제칠 수 있을지 많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