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숙 살인사건 1
정인숙 살인사건 1
  • 이수광 작가
  • 입력 2013-03-04 10:56
  • 승인 2013.03.04 10:56
  • 호수 983
  • 2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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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과연 누구의 아이를 낳았을까

권력에 항상 뒤따르는 것이 돈과 여자다. 클린턴과 르윈스키, 케네디와 마릴린 먼로, 박정희 대통령과 궁정동 안가를 비롯해 오늘날에도 많은 권력형 스캔들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난다. 육영수 여사가 죽은 뒤에 중앙정보부에 젊은 여인들의 캐스팅(?)을 담당하는 채홍사(彩紅使)가 있었다는 것은, 김재규 재판 때 널리 알려져 국민들을 경악하게 했다. 10·26사건이 아니라면 국민들은 절대 알 수 없었던 일이었다.

우리가 권력자들의 스캔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들의 스캔들이 단순한 사생활의 범주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권력자가 도덕적으로 타락하면 정권이 타락하게 되고 사회도 부패하게 된다. 권력자의 스캔들은 독재국가일수록 문제가 심각해지고, 언론을 통제하기 때문에 무수한 유언비어가 나돌게 된다.

군사독재 시절인 제3공화국의 암울한 시대에 일어났던 정인숙 살인사건도 이러한 스캔들 중 하나다. 이 사건은 오빠가 동생을 살해했다고 해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정인숙이 낳은 아들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는 의혹과 그녀와 관계를 맺은 고위 관리가 누구냐 하는 의문으로 1970년대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사건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사건을 은폐하는 데 급급한 권력자들은 국민들의 비난을 자초했다.

1970년대는 영자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한국이 급속하게 산업화하면서 성을 파는 여성들이 거리를 메웠고 곳곳에 집창촌이 들어섰다. 많은 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집창촌으로 흘러들었다. 여자들이 부족하자 인신매매를 하게 되고 시골에서 올라오는 여성들을 서울역에서 유인해 사창가에 넘기기도 했다.

집창촌이 아니더라도 여성들은 술집과 요정 등에서 성매매를 했다. 호텔의 손님들을 상대로 윤락행위를 하는 콜걸까지 등장했다. 여성들의 성매매 역시 1970년대의 어두운 단면의 하나다. 그때는 사회가 전반적으로 병들고 부패했다. 이런 윤락여성을 다룬 소설까지 출판되어 성의 상업화가 이루어진 세태를 날카롭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모두 권력자들의 도덕성이 부족해 생긴 것이다.

1970년을 뒤흔든 심야의 총성

1970년 3월 17일 밤 11시, 아직 밤바람이 차가운 강변로에서였다. 어두운 밤하늘에는 함박눈이 자욱하게 날리고 있었다. 택시 기사 노삼룡은 눈 때문에 강변로를 조심스럽게 달리다가 절두산 근처에 이르렀을 때 검은색 코로나 승용차가 한적한 길옆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차가 왜 길가에 서 있지?’
그는 의아한 생각이 들어 승용차 뒤에 택시를 세웠다. 그러자 운전석에서 한 사내가 고통스러워하면서 살려달라고 소리 질렀다. 노삼룡은 재빨리 택시에서 내려 달려갔다. 사내는 왼쪽 하체가 피투성이였다. 노삼룡이 깜짝 놀라 사내를 부축하고 차에서 끌어내리자 그는 뒤에 있는 동생도 살려달라고 말했다.
‘뒤에도 사람이 있나?’
노삼룡은 그제야 뒷자리를 살폈다. 그러자 뒷자리에는 20대의 젊은 여자가 얼굴과 가슴에 피를 흘리면서 맥없이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그는 가슴이 철렁했다. 무엇인가 큰 사건이 벌어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젠장, 벌써 죽어 있잖아?’
그는 여자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이 일을 어떻게 하지?’
노삼룡은 잠시 망설였다. 눈은 자욱하게 내리고 있었고 사내는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죽어가는 사람을 그냥 둘 수 없지.’
그는 사내를 택시에 태워 병원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합정동에 있는 개인병원으로 갔으나 그 병원에서는 큰 병원으로 가라고 말했다. 노삼룡은 다시 택시를 몰고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달려가다가 신촌파출소를 발견하고 잠시 차를 멈춰 세웠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절두산 근처에 코로나 승용차가 있습니다. 그 안에 여자가 죽어 있습니다. 나는 부상자를 태우고 병원으로 가는 길입니다.”
노삼룡이 신고를 하자 당직 중이던 경찰이 나와서 부상당한 사내를 살피고 빨리 병원으로 가라고 말했다. 노삼룡은 즉시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택시 기사 노삼룡이 겪은 이 일은 정인숙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노삼룡의 신고를 받은 신촌파출소에서 서대문경찰서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기자들이 알게 되었다.
사회부 기자들은 밤마다 서울을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 순례한다. 사건이 발생하고 신고하는 곳이 경찰서고 희생자들이 오는 곳이 병원이기 때문에, 경찰서와 대형 병원은 기자들의 순례코스였다. 서부지역을 순례하는 기자들이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이르렀을 때 총상을 입고 택시에 실려 온 사내가 있었다.

어쩌면 이 사건은 세간의 눈에 띄지 않고 묻혀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 권총살인사건이었기 때문에 기자들의 이목을 끌게 되었다.
각 언론사의 기자들이 사건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현장은 이미 경찰에 의해 치워져 있었다. 그들은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노고단파출소로 달려갔다. 노고단파출소는 형사들이 몰려와 부산해지고 있었다. 사건의 경위는 간단했다. 강변로에서 코로나 택시가 발견되었고 남자는 부상당했고 여자는 총상으로 죽어 있었다. 죽은 여자는 당시에 국회의원도 갖고 있기 어려운 회수여권과 거액의 달러를 소유하고 있었다.

기자들은 맹렬하게 취재 경쟁을 벌여 그녀의 사진을 입수했다.
‘상당한 미인이다.’
정인숙의 사진을 본 기자들은 그녀가 영화배우들 못지않은 미모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런 여자가 누군가에게 권총으로 살해당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경찰은 사망한 여인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들은 기자들의 질문에 간단한 인적 사항만 겨우 알려주었다.
여자의 이름은 정인숙(본명 정금지), 당시 26세였다. 기자들은 정인숙에 대해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세 살 된 아들이 있는 미혼모로 비밀 요정 선운각에서 활동하던 호스티스였다. 취재를 하면서 최근에는 고급 콜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경찰은 노고단파출소에 수사본부를 설치했다.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권총살인사건이었기 때문에 서둘러 상부에 보고하고 수사본부를 설치하게 된 것이다.
기자들의 관심을 끈 것은 정인숙의 집에서 발견된 그녀의 수첩이었다. 그 수첩에는 정관계 인사들 26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탤런트 장자연의 유서에 언급된 사람들의 이름에 촉각에 곤두세우듯 기자들은 그 26명이 누구인지 알아내려 했다. 그러나 그 수첩은 수사본부에 넘어간 뒤에 사라져버렸다.
“대체 수첩에 기록된 사람이 누구입니까?”
“수첩에 정계 고위층의 이름이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기자들이 수사를 하는 형사들에게 벌떼처럼 달려들어 질문했다.
“우리는 수첩을 본 일이 없습니다.”<다음호에 계속>

* 위 내용은 <대한민국 12비사>(이수광 저, 일상과이상 간)의 일부 내용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책 속에 있습니다.

이수광 작가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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