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백교 살인사건 7
백백교 살인사건 7
  • 이수광 작가
  • 입력 2013-02-26 10:32
  • 승인 2013.02.26 10:32
  • 호수 982
  • 2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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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살인마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폭압통치에 시달리던 가난한 민중에게 희망은 사치에 불과한 듯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줄기 희망을 꿈꾸게 해주는 이가 등장했다. 그는 바로 백백교 교주 전용해였다. 신선의 땅에서 불로장생한다는 백백교의 달콤한 교리는 한 줄기 구원이고 희망이었다. 그러나 백백교에 끌려온 사람들은 재산을 빼앗기고 부인과 딸을 교주에게 바쳤다. 교주 전용해의 행태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너희가 수십 명을 죽였나?”
소장은 얼굴에 웃음기를 가득 띠고 밧줄에 묶인 백백교 말단간부들을 쓸어보았다.
“수십 명은 안 되고 20명쯤 됩니다.”
백백교 말단간부들의 말에 소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주재소에 있는 순사들도 바짝 긴장했다.
“이놈들이 전부 미쳤나? 떼거지로 몰려와서 무슨 짓거리야? 네놈들이 대일본제국 경찰을 희롱하는 거야?”
소장이 겁이라도 주려는 듯이 허리에 찬 일본도를 번쩍 들어서 책상을 후려쳤다. 유곤룡은 태연했으나 사람을 죽인 백백교 간부들은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사, 사실은 이분 말씀대로입니다.”
“뭐야?”
“수십 명을 죽인 것은 사실입니다.”

백백교의 말단간부들이라고 해도 무지몽매한 빈민층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주재소 소장이 화를 내면 낼수록 자신들의 죄를 털어놓기에 바빴다. 처음에는 20명쯤에서 수십 명으로, 수십 명이 수백 명으로 변했다. 소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당황했다. 그는 두세 명을 살해한 살인자들은 보았으나 5명 이상을 살해한 살인범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백백교 신자들이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신자들을 살해했다고 자백하고 있는 것이다. 소장은 반신반의하면서 심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자백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소장은 동대문경찰서에 보고했다. 그러나 동대문경찰서에서도 백백교의 그와 같은 살인행각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장의 보고를 무시할 수 없어서 즉시 동대문경찰서 고등계 형사들을 하왕십리 주재소에 파견했다.

중범죄자는 쉽사리 잡히지 않는다

동대문경찰서 고등계 형사들은 즉각 경성부 신당동에 있는 교주 전용해의 집을 급습했다. 그 결과 이순문과 첩 10여 명을 검거했다. 형사들은 밤을 새워 그들을 취조해 백백교 교주 전용해와 간부들이 수백 명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놈들의 자백이 사실이라면 너무나 무서운 일이다.”
형사들은 공포에 떨었다. 백백교 말단간부들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형사들은 일단 본서인 동대문경찰서장에게 보고했다. 동대문경찰서장은 총독부에 보고하고, 일본 육군대신을 지낸 조선총독 미나미는 경무국에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이에 조선총독부 경무국은 14개의 형사대를 조직해 백백교를 수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불과 한 달 만에 백백교 간부 150여 명을 검거했다. 백백교의 지부, 사업장, 수련원, 개간지에 형사들이 급파되었다. 조선은 발칵 뒤집혔다. 서울의 각 경찰서들은 백백교 간부들의 진술에 따라 양주, 강계, 양평 등지에서 수십 구의 시체들을 발굴했다.

김서진, 문봉조 등 백백교의 간부들도 속속 검거되었다. 그러나 백백교의 교주 전용해는 검거되지 않고 있었다. 전용해의 밀정 정삼례는 양주에 도망쳐 숨어 있다가 형사들에게 잡혀왔다.
일본 경찰은 이순문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이순문은 전용해의 비서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백백교의 비밀을 그 누구보다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이순문에 의해 백백교 지부간부들의 집주소가 낱낱이 밝혀졌다.

“전용해를 검거하라!”
경찰은 형사대를 파견해 추적에 나섰다. 전용해는 경찰이 수사에 나서고 있는데도 며칠 동안 경성부 안에서 유유히 돌아다니며 도피자금을 마련한 뒤에 행방불명이 되었다가 살인마 이경득이 살고 있는 양평군 단월면 행소리로 내려갔다. 그러나 그 집에서 하루만 머물고 다시 이한영의 집으로 옮겼다.
이한영은 양평 지부의 책임자로 전용해에게 많은 돈을 바쳐 첩까지 하사받은 인물이었다.
“대원님, 어서 오십시오.”
이한영은 백백교의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그래서 전용해를 극진하게 맞이했다. 이경득은 그때까지도 체포되지 않고 전용해를 뒤따르고 있었다.
“네 첩을 방에 들여라.”
전용해는 이한영이 술상을 차려 올리자 그에게 하사했던 첩인 장자봉, 장손희, 장해순을 불러들여 술을 따르게 했다. 그녀들은 모두 20대의 꽃다운 여인들이었다.

“너는 물러가라.”
전용해는 이한영을 물러가게 한 뒤에 첩들에게 술을 따르게 하고 수청을 들게 했다. 세 여인은 전용해에게 억지로 웃음을 팔고 성의 노리개가 되었다. 이한영이 아침에 그 방에 들어가보니 세 여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목이 졸려 죽어 있었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이한영은 경악했다. 경찰의 추적은 그동안에도 계속되어 양평의 단월면까지 형사대가 내려와 수사에 나섰다. 이경득은 행소리의 집에 숨어 있다가 체포되고 전용해는 다시 이삼득의 집으로 도주했다. 그러나 이삼득의 집에 나타난 이후에 전용해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경찰의 맹렬한 추적에도 꼬리를 잡히지 않았다.

전용해는 죽었을까, 살았을까?

1937년 4월 6일, 양평군 단월면 행소리의 비솔고개라고 불리는 산봉우리 부근에서 나무를 하던 마을 주민이 끔찍한 시체를 하나 발견했다. 그는 단월면 주재소에 신고를 했다. 주재소 순사들이 달려가보자 시체는 오른손에 칼을 쥐고 있었고 오른쪽 뇌가 반쯤 손상되어 있었다. 의사가 부검을 해보니 칼로 뇌동맥을 끊어서 죽은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 경찰은 이 시체를 희대의 살인마 전용해가 자살한 시체라고 결론짓고 서둘러 사건을 종결했다.
그러나 전용해의 죽음에는 여러 가지 의문이 남아 있다. 전용해와 같은 희대의 살인마가 스스로 뇌동맥을 끊어 자살했다는 것에 수긍할 수 없다. 일부에서는 장자봉, 장손희, 장해순 등 세 명의 첩을 잃은 이한영의 복수에 의해 전용해가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추정하고 있으나 당사자인 전용해가 죽었기 때문에 진실은 영원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또한 비솔고개에서 죽은 인물이 전용해가 아니라는 소문도 파다하게 나돌았다. 그러나 전용해를 살해한 자가 누구인지,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끝내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1937년 2월에 그 만행이 밝혀진 백백교사건은 3년 동안이나 조사와 재판이 계속된 끝에 1940년 5월 5일에 이르러 1심 구형 선고가 이루어졌다. 일본 경찰은 2만 원이나 되는 거액을 발굴한 시체의 부검비로 써야 했다. 중일전쟁이 벌어진 마당에 식민지 백성을 위해 쓰인 이 비용은 실로 아까운 것이었을 것이다. 일본 경찰은 부검비가 1구당 100원이나 되었기 때문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자 약 200구만 부검했다. 이처럼 나라의 재산이 정작 쓰일 곳에 쓰이지 못하는 일은 오늘날에도 종종 벌어지고 있으므로 안타깝기만 하다.

2심은 1941년에 판결이 났는데 이순문, 이경득, 문봉조, 김서진을 비롯한 백백교 간부 11명과 김차옥, 정삼례 등에게 사형이 선고되어 백백교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살인귀들은 14명이 되었다. 이처럼 1930년대에 수많은 조선인들이 백백교의 마수에 걸려들어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것은 일제 치하에서 생활의 터전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백백교에게 집중적으로 희생당한 피해자들은 글자조차 모르는 하층민들이었다.

조선의 소작농들은 일본인 지주들로 인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 1년 내내 농사를 지어도 가을철에 수확을 하게 되면 일본인들이 몽땅 가져가고 소작인에게 남는 것은 석 달도 견디기 어려운 곡식뿐이었다. 조선인들은 겨울이 지나 춘궁기가 되면 양식이 떨어져 풀죽을 쑤어먹어야 했고 일본인들에게 딸을 팔거나 종노릇을 해야 했다.

그리하여 찬바람이 불면 길거리에는 굶어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낙엽처럼 나뒹굴었다.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의 착취를 견디다 못해 유리걸식을 하면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신천지인 만주로 떠났다. 문이순도 가족들을 데리고 만주로 떠나려 했다. 조선에서는 도저히 아내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때 백백교가 구원의 손길을 뻗쳐왔다. 문이순은 백백교를 믿으면 불로장생하고 일하지 않아도 부자가 된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백백교에 입교해 비참한 죽음을 당한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 위 내용은 <대한민국 12비사>(이수광 저, 일상과이상 간)의 일부 내용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책 속에 있습니다.

이수광 작가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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