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뽑은 칼날에 치명상 입은 조현오
자신이 뽑은 칼날에 치명상 입은 조현오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3-02-26 10:26
  • 승인 2013.02.26 10:26
  • 호수 982
  • 2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영향 미칠까 ‘촉각’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노무현 차명계좌설’을 주장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무심코 던진 경솔한 언행이 돌이킬 수 없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 전직 경찰청장이 구속된 것은 ‘수지김 피살사건’의 이무영 전 청장과 ‘함바비리’ 강희락 전 청장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이로써 조 전 청장은 도덕적·윤리적 치명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경찰 내부는 조 전 청장에게 실형이 선고되자 “예견됐던 일”이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조 전 청장에 대한 문제가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 전 청장 실형선고 이후 ‘경찰의 수사능력과 인권의식이 ‘홀로서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을 허용하는 것은 시기상조’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어 경찰이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다.

▲ 조현오 전 경찰청장 <정대웅 기자>
조 전 청장은 2010년 3월 말 서울경찰청 기동대 특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돼 자살했다”고 발언했다. 이 발언이 알려지면서 그는 결국 법적 심판대 위에 서게 됐다. 그해 8월 유족과 노무현 재단이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고소·고발한 것. 이때부터 양측의 물러설 수 없는 첨예한 대립이 시작됐다.

“조현오, 스스로 좌초했다”

이번 판결 등을 두고 조 전 청장이 좌초했다는 시각이 짙다. 이번 판결로 그는 ‘노 전 대통령을 두 번 죽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그동안 조 전 청장에게는 화를 면할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살리지 못했다. 조 전 청장은 “(노무현 차명계좌)발언에 대해 후회한다. 유가족들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면서도 ‘차명계좌 주장’은 굽히지 않았다. 조 전 청장은 차명계좌 주장은 계속하면서도 이와 그 어떤 증거도 내놓지 못했다. 이런 그의 태도는 양측 간의 갈등을 더욱 부채질했다.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선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는 “조 전 청장은 언론을 통해 ‘고소인 측과 합의하려 노력했다’고 하는데, (저한테) 연락 온 적이 없다”며 “조 전 청장의 말대로 우발적으로 그런 발언을 한 것이라면, 한번이라도 고소인 측에게 사과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제가 나서서 고소를 취하했을 것”이라고 말하며 조 전 청장의 태도를 꼬집었다.

재판부도 그동안 조 전 청장이 주장해 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주장은 허위사실이며 사실로 믿을 근거가 전혀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0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조 전 청장의 1심 선고 공판에서 조 전 청장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조 전 청장은 곧바로 법정구속 됐다. 쌍용차 무력 진압 등의 공적을 인정받아 MB정부 내내 승승장구했던 조 전 청장이 ‘몰락’하는 순간이었다.

법원은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존재 여부에 대해서 “당시 수사기록이나 관련 증거를 종합해보면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다. 조 전 청장에게 허위사실 공표 혐의가 인정돼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조 전 청장의 발언으로 노 전 대통령의 유족들이 큰 피해를 입었고, 국론이 분열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밝혔다. 법원은 “조 전 청장의 발언이 허위사실이 아니라면 그 근거를 본인이 밝히는 것이 고위공직자의 의무이자 국민에 대한 도리”고 지적했다.
조 전 청장은 공판에서 “2010년 3월께 나보다 정보력이 훨씬 뛰어나고 믿을만한 유력인사에게 우연히 차명계좌 얘기를 들었고, 8월 강연 내용이 보도된 이후 같은 해 12월 검찰 관계자 2명에게서 더 자세한 얘기를 각각 전해 들었다”주장했지만 ‘믿을만한 유력인사’와 검찰 관계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공개를 거부했다. 조 전 청장은 선고 하루 만에 즉각 항소했다. 앞서 재판부가 조 전 청장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해 조 전 총장이 항소심에서 어떤 논리로 방어할 것인지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또 발언의 출처 공개여부도 관심사다.

범죄자 신세로 전락

전직 경찰총수의 구속은 조 전 청장 뿐 아니다. 2001년 말 ‘수지김 피살사건’과 관련해 경찰 내사 중단을 주도한 혐의로 이무영 전 청장(9대)이 구속됐다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 2011년에는 강희락 전 청장(15대)이 ‘함바(건설공사 현장식당) 비리’에 연루돼 7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또 최기문 전 청장(11대)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사건에 연루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이택순 전 청장(13대)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집행유예 판결을 받기도 했다. 2004년 임기제 도입 이후 경찰 수장을 맡았던 6명의 경찰청장 중 임기를 채운 인물은 이택순 청장뿐이다.

허준영 전 총장(12대)은 서울 노원 병 보궐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9대 총선에서 노회찬 대표는 이 지역에 출마해 57.2%, 새누리당 허준영 당시 후보는 39.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에 여야 일각에서는 이미 지난 총선에서 패한 허 전 총장이 핵심 격전지로 승리 장담이 어려운 노원 병 지역에 출사표를 던질 것이란 소식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경찰 내부는 강 전 청장이 함바 비리 사건으로 복역 중인데 이어 조 전 청장까지 전직 경찰청장 2명이 잇따라 ‘범죄자 신세’로 전락하게 되자 침통한 분위기다. 또 조 전 청장의 구속이 검경 수사권 조정에 미칠 영향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 전 청장의 구속이 검경수사권 조정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에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수사권을 경찰에 일부 나눠주는 개혁안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경찰의 독립적인 수사권을 어느 선까지 인정할지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에 검경은 수사권 조정이 어느 선까지 이뤄질 것인가를 놓고 치열한 눈치작전을 벌이고 있다.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규모 증원, 수사권 강화 등 호재를 누리고 있는 경찰이 조 전 청장의 구속 등으로 수사권 재조정 논의에서 오히려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조 전 청장은 임기 내내 검경 수사권을 둘러싸고 검찰과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웠지만 정작 자신은 검찰에 의해 기소돼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국정원 여직원 사건’ 등으로 경찰에 대한 국민 불신이 커진 상황에서 조 전 청장이 구속돼 경찰의 ‘수사권 조정’ 주장이 맥이 빠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일선 경찰서의 한 경찰관은 “경찰수장으로서 조 전 청장의 발언이 몹시 경솔하긴 했지만 형량이 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며 “연이어 전직 총수가 구속되니 경찰 내부 사기가 많이 저하된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