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 ①] 한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의 ‘창업스토리’
[STX ①] 한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의 ‘창업스토리’
  • 박수진 기자
  • 입력 2013-02-26 09:04
  • 승인 2013.02.26 09:04
  • 호수 982
  • 4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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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리맨의 신화…도전의 돛 달다

한국경제가 짧은 시간 안에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과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들 기업가들은 독특한 경영이론과 기법들을 창안했으며 한국의 기업풍토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이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은 인재제일주의를, 현대의 정주영은 생산의 혁신을, LG의 구인회는 인화모델을 각각 창안해 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들 1세대 창업자들의 도전과 혁신적인 창업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일요서울]은 한국 경제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기업들의 창업스토리를 출판물 또는 기존 자료를 통해 다시금 재구성해 본다. 그 열 번째 창업스토리의 주인공은 출범 8년 만에 상선에서 여객선·해양플랜트·군함·크루즈선까지 건조하는 종합조선그룹으로 도약한 STX그룹이다.

2001년 위기의 쌍용중공업을 모태로 출범한 STX그룹이 지난 8년간 이룬 실적은 엄청나다. 2000억 원대였던 매출은 30조 원으로 불어났고, 4000억 원대 자산 규모는 16조 원대로 커졌다. 자산 기준으로 공기업과 민영화된 공기업, 채권단이 대주주인 기업을 제외하고 대한민국 재계 서열 상위권에 올랐다. 10년도 안 된 짧은 역사로 엄청난 성과를 거둔 것이다.

이 엄청난 성장은 공격적 M&A(인수·합병)와 완벽한 수직계열화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 결과다. 특히 STX그룹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STX엔진을 비롯해 STX엔파코, STX중공업, STX건설을 설립했고, 대동조선(STX조선해양), 2002년 산단에너지(STX에너지), 2004년 범양상선(STX팬오션)을 인수·합병하며 덩치를 키웠다.

여기에 2007년 세계 2위의 크루즈선 건조사인 아커야즈(STX유럽)를 인수해 중국 다롄에 건설한 생산기지를 본격 가동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조선기자재-엔진제조-선박건조-해상운송-에너지로 이어지는 최적의 사업 프토폴리오를 완성했다. 사업 부문 간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얻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로써 STX는 상선에서 여객선·해양플랜트·군함까지 조선 4대 분야 전 선종을 건조하는 세계 유일의 글로벌 종합조선그룹으로 도약했다.

STX그룹이 대한민국 조선 산업의 지평을 전 세계로 넓히자 갑자기 출현한 무적함대에 세계 조선·해운업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처럼 STX는 매우 빠른 성장 속도를 자랑했다. 매년 성장 목표를 최대한 늘려 잡았음에도 언제나 조기 달성했다. 2007년 ‘비전2010’을 발표하면서 목표로 설정했던 2010년 매출 20조 원은 이미 2008년 28조 원의 매출을 기록해 초과 달성했다. 당시 고유가와 경기침체 등으로 경영환경이 악화됐지만 1조 원에 가까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선보였다.

STX가 놀라운 경영실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주력 사업인 해운·조선·엔진·에너지 각 분야에서 과감한 시설투자와 신규시장 개척, 그리고 해외영업력 강화를 통해 고른 성장세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STX 성장을 견인한 ‘트로이카’라 할 만한 STX조선해양·STX팬오션, STX엔진의 활약은 눈부실 정도다.

쌍용양회서 27년간 근무

그룹 총수 강덕수 회장은 불과 8년 전까지만 해도 샐러리맨이었다. 오너 2세도, 부자도 아니었다. 1950년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서울 동대문상고와 명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73년 지금은 해체된 쌍용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쌍용양회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27년간 근무했다.

입사 초년 때부터 기획력이 뛰어났던 강 회장은 한번 맡은 일은 속전속결 추진력을 선보여 조직에서 인정받는 직원이었다. 이후 경영관리·기획·금융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1993년 쌍용중공업의 CFO(최고재무책임자)에까지 올랐다. 강 회장은 회사를 다니면서 월급쟁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어쩌면 이런 주인의식이 ‘샐러리맨 신화’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2000년 외환위기로 경영난을 겪던 쌍용그룹은 끝내 쌍용중공업의 퇴출을 결정하고, 지분을 한누리컨소시엄에 매각했다. 그룹을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대주주인 한누리컨소시엄은 평소 회사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오너처럼 일하는 강 회장을 주목하고 그를 대표이사 사장으로 전격 발탁했다.

강 회장이 경영을 맡을 당시만 해도 쌍용중공업의 주식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보유하고 있는 것조차 갑갑한 애물단지였다. 업황 탓인지 회사는 주인이 바뀐 후에도 도무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주가는 바닥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강 회장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비단 자신이 청춘을 바친 회사에 대한 애착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과거와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보았다. 쌍용중공업의 실질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강 회장이었다. 그 순간 ‘오너처럼’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오너가 돼’ 회사를 경영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강 회장은 회사를 사기로 결정 했다. 그런데 밑천이 문제였다. 이미 대표이사를 맡은 후 상여금으로 1000주의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을 받은 상태였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경영권을 확보할 만큼 지분을 사기 위해선 최소 20억 원이 필요했다. 쌍용중공업 주가가 워낙 바닥인 때라 그 정도 투자액으로도 그는 단번에 최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었다.

당시 그의 나이 50세. 주위에서는 무모하다고 했다. 여느 샐러리맨이라면 은퇴를 준비하고 노후대책을 걱정할 나이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모험에 박수를 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강 회장은 주위의 걱정과 만류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는 가족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회사를 인수하기로 결심한 그는 가족과 여행을 떠난 자리에서 가족에게 동의를 구했다.

“아빠가 다니던 회사를 직접 경영하려고 한다. 그런데 가산을 모두 쏟아 부어야 할 것 같다. 잘 될 거라고 확신하지만, 백에 하나 실패할 경우 너희들 학비를 대지 못할 수도 있다.”

가족의 동의를 구하고 돌아온 그는 당시 갖고 있던 아파트 세 채를 팔거나 담보로 대출받아 운영자금을 조달했다. 그리고 강 회장의 가족은 전세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STX 창업의 신호탄

강 회장이 사재를 털어 쌍용중공업의 최대주주로 올라선 것은 창업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강 회장의 첫 번째 M&A였다. 그것은 STX그룹이 이룬 M&A 가운데 가증 규모가 작은 것이지만, 가장 용기 있는 기업 인수로 기록된다. 언제나 시작은 미미하지만 용기 있는 작은 발걸음이 끝을 창대하게 만드는 법이다. 연매출 30조 원을 바라보는 STX그룹은 이렇게 태동했다.

최대주주로 등극한 강 회장은 쌍용중공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독자 생존을 위해 그가 오랫동안 구상했던 경영체제를 바꾸기 시작했다. 모두 쌍용중공업의 회생에 대해서 회의적이었지만 강 회장은 이제 자신의 회사가 됐으니 스스로의 판단과 능력을 마음껏 발휘해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한한 희열을 느꼈다. 그것은 샐러리맨의 한계를 뛰어넘어 기업가가 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강 회장은 우선 사명부터 바꾸었다. 임직원을 대상으로 사명을 공모하는 등 대대적인 CI(기업이미지 통합)작업을 거쳐 ‘STX (System Technology eXcellence)’로 결정했다. 시스템과 기술이 훌륭한 회사를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이다. 이 세자리 알파벳은 아무리 거센 폭풍과 높은 파도가 몰아쳐도 끄떡없이 항진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경영시스템과 세계 어느 경쟁사도 따라오지 못할 탄탄한 기술력으로 부장한 함대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상징한다.

너무나도 생소했던 그 이름은 불과 6년도 안 돼 대한민국 재계 20위권에 올랐고, 2년 후엔 10위권을 바라보게 됐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 한 이변이었다.

강 회장은 처음부터 해운과 조선을 그룹의 주력사업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 우선 쌍용중공업의 선박용 엔진 부품사업 부문을 물적 분할 방식으로 떼어내 지금의 STX엔파코를 설립했다. 배를 만들고 배를 움직이는 심장인 엔진부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공격적으로 기업 인수·합병에 나섰다. 그의 시야에 가장 먼저 포착된 기업은 법정관리 중이던 대동조선이었다. 바로 지금의 STX그룹의 중심이 된 STX조선해양의 전신이다.

당시 대동조선은 주인이 다섯 차례나 바뀌는 동안에도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회사였다. 하지만 강 회장은 잠재된 가능성을 보았다. 선박용 엔진을 만들고 있는 쌍용중공업과 대동조선을 묶을 경우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실무진에게 인수를 검토하라고 즉각 지시했다.

일단 결심을 굳히자 과감한 베팅에 나섰다. 경쟁사가 제시한 금액의 두 배에 달하는 1000억 원을 써냈다. 강 회장의 예상은 적중했고 대성공이었다. 매출채권을 담보로 ABS를 발행해 마련한 자금으로 대동조선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M&A는 또 터졌다. 2002년 산단열병합발전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바로 지금의 STX에너지다. 그때까지만 해도 강 회장의 M&A는 업계의 관심을 받는 정도였다. 업계를 움찔하게 한 것은 범양상선 인수다. 2004년 당시 그룹 전체 규모와 맞먹는 4100억 원이 넘는 대모험을 감행했다. 강 회장은 조선과 함께 주력사업의 하나로 삼았던 해운을 시작할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범양상선은 그룹으로 돌아와 STX팬오션으로 재탄생했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박수진 기자>
<출처=샐러리맨 신화, STX강덕수 나는 생각을 행동에 옮겼을 뿐이다│글로세움>

soojina6027@ilyoseoul.co.kr

박수진 기자 soojina602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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