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코리아나 연예인과는 전혀 무관하게 보이는 서씨가 ‘미스코리아 프로젝트’를 구상하며 길거리 헌팅에 나선 것은 지난해 10월경부터. 물론 자신이 직접 길거리를 헤매지는 않았다. 2년 전부터 자신과 내연관계를 맺어온 대구 K대학원 휴학생 최씨를 끌어들인 것. 지난해 대구지역 미스코리아 대회에 직접 출전했지만 입선에 실패했던 최씨는 마음을 바꿔 연예인 매니저를 꿈꾸고 있었다. 이들이 젊은 여성들을 포섭하기 위해 찾은 장소는 대구지역 중심가인 일명 ‘로데오’거리. 서씨는 늘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고급 외제차인 링컨 콘티넨탈을 몰고 로데오 거리로 향했고 두 눈은 거리를 지나가는 여성들에게 고정시켰다.
원하는 미모의 여성이 나타나면 곧바로 내연녀 최씨가 차에서 내려 다가갔다. 최씨는 그럴듯한 명함을 건네며 “미모가 뛰어난데 미스코리아 되고 싶지 않으세요”, “연예인이 되고 싶지 않아요”라는 달콤한 말로 여성들을 유혹했다. 최씨는 이들의 반응을 지켜본 뒤 확실한 믿음을 주기 위해 차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서씨를 손으로 가리키며 “내 고모부인데 의사다. 저 분은 방송국에 영향력도 있어 당신을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시켜 줄 수 있다”고 꼬득였다. 서씨는 여성에게 “미스코리아로 키워 줄 수 있다”며 유명 미스코리아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자신에 대한 신뢰를 갖게 만들었다. 치과병원 원장이라는 명함과 링컨 콘티넨탈의 보이지 않는 힘은 대단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두 사람의 말을 온전히 믿게끔 한 것.
미스코리아의 허망된 꿈
내연녀 최씨가 헌팅에 성공하면 서씨는 감추어 두었던 본색을 드러냈다. 최씨는 여성에게 “미스코리아가 되기 위해선 신체 사이즈를 알아봐야 한다”며 “고모부는 의사이기 때문에 여성을 성적으로 보지 않으니 안심하라”고 설득했다. 신체검사는 서씨의 병원이나 여관, 심지어 노래방에서 이뤄졌다. 그곳에서 알몸 검사를 한 다음 여성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었다. 다름아닌 처녀성 검사였다. 서씨는 “미스코리아는 외모가 예뻐야 되는 것은 물론, 머리에 든 것도 많아야 되고 성적으로도 문란하지 않아야 한다”며 “처녀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같은 검사를 한 것. 처녀가 아니라고 말하는 여성들에게는 “성적으로 문란한지 여부는 내가 검사를 해봐야 안다”는 황당한 말로 설득했다.
그러나 서씨의 본심은 자신의 성욕을 푸는데 있었다. 알몸 상태인 여성을 강제로 추행하는가 하면 ‘피부가 좋아진다는 약’이라고 속여 마취제와 신경안정제를 투여한 뒤 강간을 일삼았다. 지난달 로데오 거리에서 이들을 만났던 모 대학 1학년생이던 김양(18)도 이같은 수법에 당한 경우다. 김양은 “미스코리아를 시켜준다”는 말을 믿고 최씨를 따라 서씨의 병원을 찾았다. 김양은 이곳에서 최씨에게 워킹연습과 포즈 연습을 받으며 진짜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며칠 뒤 김양은 자신도 모르는 끔찍한 일을 당하고 만다. 서씨는 ‘피부가 고와지는 주사’라며 마취제를 투여하고 김양을 성폭행했다. 황당한 것은 내연녀 최씨는 그 장면을 고스란히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한 것.
수첩에 170명, 비디오에 20등장
미모의 젊은 여성들을 상대로 성욕을 채우던 서씨. 그의 엽기적인 행각은 경찰이 이같은 내용을 접하고 수사에 착수하면서 끝나게 됐다. 경찰조사 결과 서씨의 이같은 수법에 당한 피해자들은 현재까지 밝혀진 피해자만 7명으로 16세와 18세의 여고생 2명과 여대생 5명이다. 이들 중 한 명은 실제로 모지역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현재 밝혀진 피해자 숫자보다 훨씬 많은 여성들이 서씨에게 피해를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같은 근거는 서씨의 수첩에 출신학교와 나이 등이 적힌 170여명에 달하는 여성들의 이름이 낱낱이 기재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씨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증거품들에는 성관계 장면 등 여성들을 성추행하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가 14개나 발견됐고 테이프 내에 등장하는 여성도 20명에 달하고 있는 것. 게다가 여성들의 알몸 사진도 무려 300여장이 발견됐다.
피해여성들은 대부분 마취제나 신경안정제를 투여받고 정신을 잃은 상태여서 이같은 장면이 찍힌 사실은 눈치채지 못했다. 이에 경찰은 구속된 서씨와 최씨에 대한 여죄수사를 계속하며 피해자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서씨는 경찰조사에서 “6명을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시켜 3명을 입선시켰다”고 자랑하는 가하면 구속을 피하기 위해 “간암이 걸렸다”며 진단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 관계자는 “서씨가 제출한 진단서를 보니 실제 간에 혹이 있었다”며 “서씨 자신은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지만 구치소 생활은 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관계자는 “사건이후 ‘5년전에 서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제보 등 경찰서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들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며 “그러나 정작 피해자 진술을 위해 경찰서로 나오라는 요구에는 거부하고 있어 수사에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엽기의사, 대구선 유명인사
아내 대학교수 … 구청장 출마 경력
의사신분을 망각한 채 마취제를 투여해 젊은 여성들을 자신의 성 노리개로 삼은 서씨는 대구지역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인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어머니 역시 치과의사 출신이며 부인은 모 대학에 교수로 재직중인 소위 잘 나가는 집안 출신이다. 이같은 배경을 토대로 서씨는 지난 1998년에는 대구 모지역의 구청장 선거에 출마한 경험도 있었다. 그러나 서씨는 잘 나가던 치과병원장에서 하루아침에 주의가 요구되는 마취제와 신경제를 투여하면서까지 자신의 성욕을 채우는 등 최소한의 직업윤리의식마저 팽개친 파렴치범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서씨는 “미스코리아 대회가 외모 지상주의로 흘러 지성을 겸비한 여성들을 진출시키려고 했다”고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지역 미스코리아 대회에 3명을 입선시켰다”며 자랑하는 등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았다. 경찰조사결과 서씨는 일부 여성들에게 아무 이상이 없는 ‘치아를 교정해 주겠다’며 400만∼600만원을 받아 챙기기도 했다. 또 평소에는 자신의 병원을 `‘미스코리아를 만드는 병원’이라고 홍보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한편 경찰 관계자는 “서씨는 자녀들이 미국에 유학중이어서 부인과 함께 거주하고 있는데 집에는 잘 들어가지 않고 주로 자기병원 원장실에서 생활하며 이같은 짓을 벌이고 다녔다”고 말했다. <인>
이인철 chle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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