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지난 16일 하버드 대학이 마련한 존 F 케네디 포럼에서 한미동맹과 북한문제를 주제로 한 연설을 통해 ‘북핵문제와 대북경협을 연계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대북경협은 북핵문제와는 별도로 진행하길 희망하는 참여정부와는 배치되는 의견을 피력한 셈. 고 전총리의 의미심장한 이날 메시지를 두고 정치권은 사실상 ‘고건의 색깔’을 좀더 분명히 하려는 의지로 풀이하고 있다. 그가 미국내 유력정치인들과 잇단 접촉을 갖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서울시장,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 등을 경험하며‘행정의 달인’으로 불리지만 외교력은 검증되지 않았다. 정치쟁점에서 자유로운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고 해외방문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세우기 위한 포석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해외방문으로 ‘고건의 색깔’다지기
행정중심도시안 통과 이후 당이 겪고 있는 내홍을 뒤로하고 지난 15일 미국으로 떠난 박 대표는 잠시 휴식을 취하는 눈치다. 측근이었던 박세일 의원의 의원직 사퇴서 제출, 전재희·심재철 의원의 단식 등 당내 현안은 잠시 신임 강재섭 원내대표에게 맡기고 현장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는 것. 대신 초당적으로 북핵문제 해법을 강구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차기 대권후보답게 보다 큰 정치인으로 거듭나려는 노력이다. 특히 17일 해리티지 재단 강연에서는 “북·미간 양자대화의 필요성’과 ‘미 고위인사의 대북특사 파견’을 요청해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 여권으로부터 보기 드문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당내에선 박 대표의 방미를 두고 ‘숨고르기’의 일환이라는 시각이다. 당 핵심관계자는 ‘활발한 대미외교활동을 통해 차기 대권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복잡한 국내 정치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당을 재정비하기 위한 전략을 구상하려는 의도도 깔려있다’고 풀이했다.
박근혜 대표 미국서 숨고르기
사실상 고 전총리와 박 대표는 방문목적과 행보는 다르지만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셈. 한나라당 두 자치단체장의 움직임은 최근 정치권의 가장 큰 관심사다.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의 위헌판결이후 대안으로 내놓은 행정중심도시안에 대해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당의 입장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서울시의회에서 “수도이전 문제는 아직 해결된 것이 아니다’며 ‘정부 부처 몇 곳을 옮기느냐를 논의하는 것은 정치적인 논리일 뿐이며, 한 번 더 충청권을 속이는 일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발언한 대목은 이 시장의 입장을 잘 대변해 준다. 그러나 당내 반대기류에 편승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실제 이 시장은 지난 16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당 수투위 등이 개최한 ‘수도분할저지 범시민 궐기대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춘식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수투위 의원들의 입장에 공감하지만 함께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자칫 정치적 오해를 낳을 수 있고 당내 분란이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내 반대파에 빌미를 주지 않고 수도이전 반대운동의 성과를 이어나갈 수 있는 전략적인 접근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반면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당내 반대파 의원들을 설득하는 데 발벗고 나섰다. 박근혜 대표와 만나 대책을 논의하고 심지어 여권 수뇌부와 이해찬 총리까지 접촉하며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실제 손 지사는 위헌판결이후 충남과의 지역협정을 체결하는 등 행정수도이전 문제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며 이 시장과는 차별화된 행보를 이어왔다.
손학규경기지사 팔걷고 적극 나서기
그러나 당내에선 손 지사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차기전략차원으로 바라본다. 손 지사가 충청권 표심을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게 아니냐는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 자신의 약점인 전국적 인지도를 높이고 한나라당의 불모지가 되어가고 있는 충청권에 교두보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란 관측이다. 두 자치단체장 모두 서로의 입장에 반대되는 세력의 표심을 노리고 있는 것.여권의 차기 주자인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은 참여정부의 문제가 곧 자신들의 입지와 직결돼 있다.
잇따라 터지는 외교문제 여당의 암초로…
이 때문에 최근 잇따라 터지고 있는 외교문제가 두 장관의 앞길에 커다란 암초로 등장했다. 북핵문제와 독도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북핵문제는 여전히 6자회담의 성사여부가 불투명한데다 미국의 강경기조가 여전히 누그러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관되게 추진해 왔던 남북경협도 북핵문제와 연계되고있어 사실상 난관에 봉착해 있는 상황이다. 최근엔 독도문제까지 터졌다. ‘한일 우정의 해’인 올해 양국관계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급랭하고 있다. 국민정서를 감안해 두 장관 모두 강경한 입장을 밝히며 이 문제 해결에 앞장설 기세지만, 정부 관료로서 한·일관계도 고려해야하는 난처한 상황이다. 게다가 정치권 일각에선 여권의 4·30 총선전략의 일환으로 독도문제를 이용하려한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씻어야 한다. 두 사안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두 장관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실제 여권내부에선 두 장관의 차기행보는 북핵, 독도문제 해법에 달려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인철 chle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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