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불안정·형평성 시비가 국민적 불신 낳아
노후안정 대책보다 ‘부자 배불리기’라는 지적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국민연금 폐지 논란과 관련, 국민연금관리공단(이사장 전광우)의 향후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이 기초연금 인상안 정책을 펼치는 과정에서 세수확보 방안으로 국민연금을 거론했다. 이에 발맞추듯 국민연금은 준정부기관이라는 입장 하에 박 당선인의 정책을 돕겠다는 움직임을 드러냈다.
하지만 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이미 국민연금 폐지운동으로 폭발했고, 서명자가 수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는 시민단체의 목소리 역시 거세게 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의 세수확보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일각에서는 “전광우 이사장이 박 당선인의 측근이기 때문에 박 당선인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사이에서 박근혜 정부 인수위의 정책 내용이 수시로 변해 국민들에게 혼선을 주고 있다. 정책 내용에 있어서도 합리성이나 형평성에 대한 시비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또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기금의 기초연금 재원조달 방안이 제기되면서 국민연금 재정불안정 문제 역시 부각된 상태다.
하지만 정작 문제의 중심에 서있는 국민연금은 인수위의 결정만 기다리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박근혜 정부가 단행하고 있는 공기업 수장 세대교체의 흐름에 끼지 않으려 전광우 이사장이 몸을 사리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새어나오는 실정이다.
경제·사회·정치 문제의 종합판
국민연금 폐지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납세자연맹은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줄어들면 파산하는 다단계 피라미드와 다를 것 없다”며 “절대 지속가능하지 않은 끔찍한 구조”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연금폐지 운동에 가담하는 국민 수도 수만 명에 이를 만큼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서명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한결같이 “노후대비하다 당장 죽게 생겼다”며 “지금 사는 것도 힘들어서 못 살겠는데 노후보장이 무슨 필요냐”고 토로했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적립된 연금기금은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돼 부자들의 수익을 높여주는 역진성이 농후하다”며 “갈수록 저소득계층의 가처분소득을 줄여 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도 높다”고 비판했다.
홍백의 서울대 사회복지학 교수 역시 지난 13일 국민연금 개선 토론회에 참석해 저소득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 영세사업장과 10억 이상 사업자 등 사이의 비형평성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더욱이 형평성 논란은 소득차를 넘어 세대 간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어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이어 홍 교수는 공단의 기능과 역할의 모호성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국민연금이 가입자를 대상으로 ‘고리 대부업’을 수행하고 있는 형상”이라며 “마치 민간보험 회사와 같은 수익사업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2004년 안티 국민연금 운동 때부터 폐지를 주장한 최모(34)씨는 “국민은 대출까지 받아서 연금을 내는데 그 돈으로 대기업들과 협력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속이 뒤집힌다”고 격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많은 기업들과 협력 관계에 있으며 채권발행 문제도 있는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게다가 술·담배·도박산업 투자규모 확대와 부실투자 논란 등으로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국민총생산(GDP)의 30%가 넘는 대규모 강제기금 규모가 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강제저축으로 인한 과다한 기금이 민간소비를 감소시키고 관치경제를 키우는 동시에 시장경제를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적립금을 개개인에게 돌려주게 되면 시장경제가 단기간에 활성화될 수 있다는 계산까지 깔려 있다. 이에 많은 이들이 소비시장의 활성화를 전면에 내세워 국민연금을 몰아세우고 있다.
신뢰회복 급선무나 ‘모르쇠’로 일관
논란이 커지자 국민연금은 언론을 통해 제도적인 안정을 주장하기에 이르렀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는 국민연금 개선 토론회를 개최, 합리적 발전 방안을 내놨지만 민심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아무런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신뢰성 문제가 끊임없이 지적돼 왔기 때문이다. 먼저 2004년 온라인상에는 ‘국민연금의 8대 비밀’이라는 제목의 글이 퍼져나가 국민들의 분노를 샀었다.
이후 2007년 참여정부 시절엔 국민연금 개혁을 놓고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결국 여야는 ‘그대로 내고 덜 받는’ 안을 채택해 연금 고갈 시기를 당초 2047년에서 2060년으로 13년 연장시키는 결과를 냈다. 당시엔 최상의 선택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박근혜 정부의 공약과 국민연금의 태도는 다시금 임의가입자들을 반발하게 만들었다. 결국 연금고갈에 대한 불안을 감추고 지내왔던 국민들에게 데자뷰를 일으킨 꼴이 됐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과 박근혜 정부는 제도 안정화에 앞서 두 번씩이나 무너진 국민들의 신뢰를 어떻게 일으켜 세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