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조직 ‘범서방파’ 새 두목 납치사건 전말
폭력조직 ‘범서방파’ 새 두목 납치사건 전말
  • 고은별 기자
  • 입력 2013-02-19 11:29
  • 승인 2013.02.19 11:29
  • 호수 981
  • 2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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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간 권력다툼 전쟁 시작됐다”

故 김태촌 후임, 강남대로서 고향 선배에 납치
집단폭행에 갈비뼈 골절…조직간 ‘피바람’ 예고

[일요서울 | 고은별 기자] 단순한 납치사건인가. 아니면 조직간 권력다툼의 신호탄인가.
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에 연루됐고, ‘범서방파’ 새 두목으로 추대된 나모씨가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납치됐다. 강남경찰서는 나씨를 납치한 국제PJ파 조모씨를 추적하고 있다. 조폭들 간의 엽기 잔혹 범죄는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 사건은 김태촌이 죽은 후 벌어졌다는 점에서 경찰과 조직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단순한 납치사건으로 보이기는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영화를 방불케 하는 충격적인 납치 사건의 전말을 낱낱이 파헤쳐봤다.

▲ <사진자료=뉴시스>

폭력조직 ‘범서방파’의 새 두목 나모(48)씨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사거리 한복판에서 납치되는 기막힌 사건이 발생했다. 나씨를 납치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고향 선배 조모(54)씨로, 호남 최대 폭력조직인 ‘국제PJ파’ 두목이다. 나씨는 평소 금전거래를 하는 등 조씨와 친분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나씨는 “큰 도박판이 열리니 2억 원을 가져오라”는 조씨의 말에 청담사거리로 나갔다.

차에 마구잡이 태워 집단폭행

청담사거리에 다다른 나씨는 눈앞에서 조씨와 함께 4명의 상습 범죄자들을 마주했다. 당시 조씨는 범서방파의 다른 조직원인 박모씨 살해를 나씨에게 사주했다. 범서방파 내 조직원을 죽이라며 두목을 협박한 것이다.

박씨에게 아무 감정이 없었던 나씨는 “그를 왜 죽여야 하나. 못 하겠다”고 거부했다. 그러자 둔기를 동원한 무차별 구타가 시작됐고, 나씨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을 느꼈으나 딱히 손쓸 방도가 없었다. 아무 반항도 할 수 없던 나씨에게 조씨는 잔인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럼 대신 네가 죽어야 해. 지금부터 다른 장소로 이동할 테니 살고 싶으면 3~4시간 안에 잘 생각해”

나씨를 차에 강제로 태운 일당들은 나씨의 가슴과 손을 결박한 뒤 상반신을 다시 쇠사슬로 묶고 자물쇠를 채웠다.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나 볼 법한 납치행각이었다. 흩날리던 눈발이 굵어지기 시작한 오후 6시께 차량은 전주IC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씨가 탈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다. 나씨는 조씨와 교도소에서부터 알고 지낸 경남 진해의 상습 범죄자 4명과 함께 차량에 있었다. 이들은 조씨가 탄 차량과 합류하기 위해 경기 기흥휴게소에 멈춰 섰다. 나씨는 큰 부상에도 불구하고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때를 엿봤다.

휴게소에서 나씨는 일당들에게 “목이 마르니 물을 좀 사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그들 중 두 명이 물을 사러 잠시 내렸고, 나씨는 이틈을 놓치지 않았다. 나씨는 나머지 일당을 밀친 후 탈출에 성공했다. 나씨 측은 “납치극을 벌인 일당은 무늬만 주먹이었지 숙달된 프로는 아니었나 보다”고 전했다.

나씨의 납치사건이 지난 12일 언론에 처음 보도됐을 때 대부분의 언론들은 나씨가 식당에 숨어 경찰에 신고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나씨는 휴게소로 곧장 들어가 주방부터 찾았다고 한다. 이는 그들에게 끝까지 추적당할 경우 자신을 보호할 만한 ‘무기’가 있어야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도망간 나씨를 뒤쫓아온 일당들은 겁을 먹어 줄행랑을 쳤다. 나씨 또한 휴게소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숨을 이유가 없어 더욱 대담하게 행동했다.

당시 휴게소에 있던 시민들은 쇠사슬에 몸이 묶인 채 황급히 흉기를 찾는 나씨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 시민이 경찰에 즉각 신고한 점을 비춰볼 때 아마 강도 등 흉악범으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신고를 받은 경기 용인동부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현장에 왔을 때 나씨는 “노상강도를 당했다”며 조씨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경찰의 탐문 수사 중 사건 내용이 일부 노출돼 여러 추측성 보도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날 경찰은 폐쇄회로(CC)TV 화면 등 증거 자료와 나씨의 신병을 확보한 뒤 곧장 범서방파 관할서인 서울 강남경찰서에 사건을 인계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나씨는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러 장시간 폐봉합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범서방파 조직원이었던 W씨는 “만약 박씨가 살해됐다면 평생 그 사실을 실토하지 못하리란 계산을 한 것 같다”며 “이는 주먹 세계 안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비열한 행위”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씨가 휴게소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살아 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향후 ‘호남’ 주도권 다툼 가능성

이번 사건을 두고 조직폭력배들 사이에서는 범서방파와 국제PJ파 사이 전쟁이 예고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범서방파 조직 내 나씨의 위상을 조씨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므로 후환을 예상하고 벌인 범행이라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이에 대해 W씨는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조직간 다툼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의혹을 일축했다.

하지만 폭력조직계 내부 사정을 훤히 꿰고 있는 나씨의 지인 A씨는 “독불장군 성격을 지닌 나씨가 보복을 안 할리 없다”며 “이미 나씨에 대한 충성파들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고 후폭풍을 예견했다. 게다가 나씨는 2007년 3월 발생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차남 보복폭행 사건에서 당시 범서방파 행동책 역할을 했던 오모씨를 그룹 측에 연결해 준 장본인이라 충분히 무게가 실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또 호남 지방을 대표하는 범서방파에 대한 국제PJ파의 도전일 수 있다며 주도권 다툼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범서방파 조직원 W씨에 따르면 전국구에 흩어져 있는 범서방파 조직원은 2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1990년대 노태우 정부 시절 ‘범죄와의 전쟁’으로 폭력조직의 세력과 위상이 급격히 추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경찰의 관리 대상에 해당하는 점을 보면 폭력조직간 충돌은 언제든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한편 서울 강남경찰서는 이번 사건이 조직간 세력 다툼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조폭들의 동태 파악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조씨 등 달아난 일당 6명에 대해 수배를 내리고 추적 중”이라며 “조직간 세력 다툼인지 개인 간 금전 문제인지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eb8110@ilyoseoul.co.kr

고은별 기자 eb8110@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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