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유수정 기자] 삼성가(家)가 주식 및 이익배당금을 둔 상속분쟁을 펼친 가운데 1심 판결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경제개혁연대(이하 경개연)는 14일 공식 논평을 통해 “이번 판결로 이건희 회장이 자신의 재산은 지킬지 몰라도 ‘불법의 왕국’으로 기록될 것은 명백하다”고 밝혔다.
경개연은 이번 판결로 인해 차명재산의 원천과 사용처를 수사하지 않은 삼성특검의 부실 수사가 명백히 드러났다고 전했다.
또 단순히 ‘숨기고 섞으면 된다’는 식의 1심 판결을 수용하기 어렵다며 금융실명제의 허점을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지난 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2부(서창원 부장판사)는 이맹희 씨 등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삼성에버랜드를 상대로 제기한 주식인도소송에서 “제척기간이 도과됐거나 상속재산으로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일부 기각 및 일부 각하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삼성생명 주식과 관련해 상속재산으로 인정되는 50만 주(액면분할 후 기준) 중 이맹희 씨 등의 상속분 합계 17만7732주에 대해서는 10년의 제척기간이 경과하였다는 판단을 기초로 부적법 각하했다.
이와 함께 나머지 삼성생명·삼성전자 주식과 이에 따른 이익배당금 등은 상속재산이 아니기 때문에 공동상속인에게 귀속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이 상속분할협의에 의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차명주식을 단독으로 상속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경개연은 이번 판결이 2008년 자신들이 발표한 논평을 재판부가 최종 확인해 준 셈이 됐다고 전했다.
이는 1998년 유상증자 당시 신세계와 제일제당의 실권분(26.00%)이 새로운 차명된 재산으로 전환됐다는 주장을 재판부가 공식적으로 확인해 준 것이라는 것.
당시 이들은 “삼성생명 차명 주식의 상당부분이 이병철 선대회장의 상속재산이 아닌 1988년 9월 유상증자 당시 제일제당 및 신세계의 실권분이 새로 차명재산으로 전환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뿐만 아니라 “계열분리 전 삼성그룹 계열사였던 신세계와 제일제당(현 CJ)은 이병철 선대회장 사망 시점인 1987년 말까지 각각 29.00%와 23.00%, 합계 52.00%의 삼성생명 지분을 보유했다”면서 “삼성생명의 차명주식은 결코 48.00%를 초과할 수 없다. 이는 즉 임직원 명의의 차명주식 51.75%가 모두 상속재산이라는 삼성특검의 수사결과 자체가 애당초 성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앞서 삼성특검은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 명의의 삼성생명 주식 51.75%가 모두 이병철 선대회장 사망 시 차명상태로 상속받은 이건희 회장 소유의 차명재산이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경개연은 “결국 삼성특검은 시민단체도 확인할 수 있던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간과했다”면서 “사실상 ‘삼성 봐주기’ 내지 ‘삼성 면죄부’ 수사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차명재산의 원천과 그 사용처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음으로써 이번 삼성가 형제들 간 상속분쟁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라며 “사법 정의와 경제민주화를 진전시킬 수 있는 역사적 호기를 날려버린 셈”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판결의 의미와 그 문제점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액면분할과 경제적으로 하등에 다를 바 없는 무상증자로 증가된 주식을 상속재산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재판부의 판결은 상속재산을 10년간 숨기거나 다른 재산과 섞기만 하면 다른 공동상속인들이 상속회복을 주장할 수 없다는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라며 “이번 판결은 재벌총수들로 하여금 어떻게 하면 차명재산을 지킬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는 지침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차명재산의 운용 및 관리 등에 대한 경제적 제재가 너무 미흡한 것이 이러한 불합리한 상황을 초래한 근본 원인”이라며 “금융실명법 등의 법제도적 개선 노력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재판부의 이번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된다면 이건희 회장은 형제들에게도 재산을 나눠줄 필요가 없다.
그렇게 되면 이 회장은 재산은 그대로 지킬 수 있겠지만 상당부분의 재산과 삼성그룹의 소유구조 골간이 불법 위에 서 있다는 것이 법원의 판결을 통해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는 일침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유수정 기자 crystal0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