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생들 “갈 데가 없다”
대학 졸업생들 “갈 데가 없다”
  • 중국 상해=우수근 통신원 
  • 입력 2004-07-28 09:00
  • 승인 2004.07.2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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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시라 불리는 중국의 대학. 지금 중국의 대학은 매년 잠시 찾아오는 망중한을 맞이하고 있다. 9월에 시작되는 신학기가 이듬해 6월 말에서 7월 초면 졸업과 더불어 한 해를 마무리짓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사각모를 눌러 쓴 그들의 표정이 밝지 만은 않다. 중국의 사람많음이야 두루두루 아는 바와 같이 정말이지 상상 이상이다. 이는 대학도 마찬가지다. 특히 점심`저녁 식사시간에 어디선가 애 울음소리만 더해지면 영낙없이 피난민 인파 그 자체다. 하지만 요즘 대학은 매년 잠시 찾아오는 망중한을 맞이하고 있다. 9월에 시작되는 신학기가 이듬해 6월 말에서 7월 초면 졸업과 더불어 한 해를 마무리짓기 때문이다. 이에 7월 초순이면 사각모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졸업생들이 자주 눈에 띄게 된다. 하지만 요즘 사각모를 눌러 쓴 그들의 표정이 밝지 만은 않다.

“실은, 대학을 막 졸업했어요.” 열람실로도 사용되는 한 대학 구내 식당의 한 켠에 멍하니 앉아있는 학생차림의 쩡꾸어핑(僧國平·남·21). 그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니다. 7월 초에 이미 ‘국제무역’과를 졸업한 졸업생이기 때문이다. 아직 이렇다할 직장을 잡지 못해 대학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사회의 급성장은 고학력자의 수요를 부추기며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게 된다. 이에 따라 대학 입학생 수는 1998년의 108만명에서 2002년에는 340만명으로 3배가, 2003년에는 다시 382만명으로 증가하며 대학진학증가율이 17%를 기록하게 된다. 그 결과 2003년 중국의 1,552개 고등교육기관(대학원 720개)에 재학중인 대학생 수는 1,108만5,600명(이는 2002년 대비 22.7% 증가한 수치), 대학원 재학생은 65만1,300명으로 집계되었다. 그런데 대학 진학률이 17%정도라는 것은 대학재학 자체가 사회저변에서는 아직도 일종의‘특권’으로 통함을 의미한다.

더우기 이와 같은 “아! 대학생…”현상은 중국의 13억 인구중 9억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낙후된 내륙지역으로 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내륙지역의 시골마을에서는 아직도 고등학교 졸업자가 초등학교 교사 역할을 하는 곳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졸자의 초임도 직종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2,000위안(한국 돈 약 30만원)부터 시작되는데 고졸자인 동년배는 그 절반인 1,000위안 정도에 불과하다. 이처럼 중국에서의 대학생은 수십년전 한국사회의 그들과 같이 아직까지는 촉망받고 기대받으며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화려함의 주인공인 것이다. 대학생 쩡의 말을 듣고 있자니 약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지금 중국경제가 얼마나 호황인가? 그만큼 신규인력이 필요할 법하다. 그는 성적도 좋은 편이라고 말한다.

전공도 국제무역으로 잘 나가는 분야이고 모교 역시 중국의 1,550여 대학중 랭킹 30위 안에들고, 상하이에서는 명문 4개 대학중의 하나가 아닌가. 그런데 취직실패의 원인을 묻는 기자에게 그는 다소 황당한 외마디를 들려주었다. 그 의미는 “사람이 너무 많잖아요!”중국의 사람많음이야 외국에서는 무궁한 소비시장으로서 군침을 흘리게 하는 요소지만 여기서는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잘 나가는 중국경제에 인력도 많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나 봇물터지듯 쏟아지는 졸업생은 차마 감당할 수 없는 형국이다. 졸업생들은 그 많은 경쟁자들을 뚫고 살아남아야 한다. 이곳의 한국인 유학생들에 의하면 “중국학생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하며 컴퓨터나 영어 등의 어학실력도 뛰어나 한국이나 일본 유학생들이 기죽기 일쑤”라고 한다.

그런데도 이들의 사회진출의 기회는 그야말로 바늘구멍이다. 이쯤되면 대학진학률 17% 였던 한국의 당시 대학생들, “아, 철학이여!”를 외치다 괜히 인상쓰며 막걸리 잔을 기울이던‘한량’들과는 달리, 지금 중국의 17% 엘리트들은 그야말로 “고난의 장정기(한 중국인 대학생 표현)”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기자는 매주 목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부터 모 대학 교정의 마오쩌둥 주석 동상 아래에서 ‘잉찌아오(英角)’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궁금하게 여겨 찾아가 본 일요일 오후 7시. 한낮의 찌는 열기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마오주석 동상 주위에는 또 다른 열기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꾸역꾸역 모여든 수십명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뭔가를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다. ‘잉찌아오’란 다름 아닌’영어 모임’. 일주일에 두번씩 영어로만 말하는 모임으로 누구나 참가가 가능하단다.

실제로 개중에는 대학원생도 있었고 이미 사회에 진출한 사람도 있었다. 기자는 그곳의 몇몇에게 참가한 이유에 대해 영어로 말을 붙여보았다. 그랬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영어로 답변이 돌아오는데 그 중에는 순수 중국 국내학습자라고 생각되기 힘들 정도의 상당한 실력자도 있다. “취직을 위해서는 컴퓨터와 영어는 기본이니까요.”“무역회사에 취직하고 싶은데 그러면 아무래도 영어정도는….”“왜 영어를 하냐고요? 참 내, 먹고 살기 위한 기본 방편 아닙니까?” <2002-2003년 상하이 대학생 발전보고서>에 의하면 상하이 대학생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걱정하는 것이 바로 취업이라는 것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86.8%가 취업과 관련, 적지 않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데 이는 불과 2년 전인 2000년의 58.9%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또 다른 대학생 따오시(道希·남, 20)군. 벤치에 앉아 책에 집중하고 있는 그를 발견하고 중국의 대학생활에 대해 물어보았다.

“중국의 대학은 잘못 흘러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이 이래선 안되는 것 아닙니까? 한국의 대학은 어떻죠?”그의 말은 이렇다. 대학은‘응당’학문을 연마하는 장이어야 하거늘 지금의 중국대학은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전초기지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도 생계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지만, 그래도 대학기능의 주객전도가 너무 심하다고 개탄한다. 그런데 중국사가 전공으로 외국유학을 떠나 역사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꿈이라는 그는 기자가 만나 본 현재의‘일반적인’중국 대학생들과 꽤 다른 면을 보였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알고보니 그 부모님의 잘 나가는 사업덕분이었다. 그도 결국 부모 덕에 여유로운 대학생활을 보내는‘소수파 대학생’임을 인정한다.

기자는 중국의 대학생들을 만나며 많이 지쳐있는 그들을 느낄 수 있었다. 외국에서 보면 잘나가는 중국경제요, 또 중국 국내에서도 선망의 대상인 ‘대학생’이지만 그 화려함 이 더할수록 그들은 더욱 힘겹기만 하다. 이러한 그들을 보며 이미 50% 이상이 대학진학을 하며 국가 전체적인 불경기로 인해 ‘어쩌다 잘되면’취직이 되는‘이태백’인 한국의 대학생들보다(그 고통을 어찌 단순비교할 수 있겠는가 만은) 어쩌면 그들이 더한 스트레스와 불안속에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를 아는 듯 모르는 듯 중국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대입시험인 까오카오에 등록한 2004년도 상하이 응시자수는 8만5,073명으로 지난해 대비 19%가 증가했다.

중국 상해=우수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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