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오는 25일 출범을 앞둔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경제민주화가 향후 재계구조를 통째로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삼성(회장 이건희) 계열사들이 삼성화재(사장 김창수)에 ‘보험물량 몰아주기’방식으로 부당지원을 감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정부에서 재벌 기업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며 “수사당국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욱이 삼성그룹과 관련한 사안들 중 대다수가 검찰의 눈을 피해가고 있어 “아직도 정부 차원의 삼성 봐주기가 팽배한 것 아니냐”는 비판 역시 흘러나왔다. 더불어 이를 제재해야 할 현행법마저 미흡한 상태여서 정부 정책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부당지원 관련 힘겨루기 … 법원 판결서 종결될 듯
공정거래법 개정 필요성 대두, 새 정부 움직임 주목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1일 “이건희 삼성 회장 등 삼성전자 전·현직 임원 9명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 혐의에 대해 항고했지만 서울고등검찰청이 불기소 처분을 내려 법원에 재정신청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재정신청이란 현재까지 수사된 내용을 토대로 기소함이 타당한데도 검사가 불기소 처분한 경우 법원에 기소 판단을 요청하는 것으로 고소권자만이 신청할 수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 사건에서 삼성전자의 주주 자격으로 삼성전자 임원들을 고소했다.
삼성전자 등 계열사들이 보험료를 과다 지급해 삼성화재를 부당 지원했는지 여부가 사건의 핵심이었지만 검찰이 삼성화재 관계자의 의견만 듣고 수사를 종결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강정민 경제개혁연대 연구원은 “우리가 고소한 것은 삼성전자 임원인데 왜 삼성화재 관계자들만 조사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공정위 사무처는 삼성 계열사의 부당지원행위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해 과징금부과 등 제재내용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오히려 공정위 전원회의는 무혐의로 처분했다”며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로 ‘삼성 봐주기’라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고 각을 세웠다.
실제로 경제개혁연대가 공개한 공정위 사무처 심사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삼성화재에 가입한 기업보험 출재수수료 비율은 29.3~42.1%였던 것에 비해 타 화재보험사에 가입된 유사 보험물건의 출재수수료 비율은 5.9~19.6%에 불과했다.
삼성전자가 지불한 출재수수료를 액수로 환산하면 1040억 원으로 통상적인 출재수수료 비율인 10%에 해당하는 250억 원을 훨씬 상회한다. 따라서 삼성전자는 차액 780억 원 가량의 손실을 회사에 입히고 동액 상당의 이익을 삼성화재에 제공한 것이 증명됐다. 이와 함께 공정위가 조사에 나선 직후인 2008년에는 해당 출재수수료 비율이 전년대비 10% 이상 줄어들어 삼성전자가 의도적으로 삼성화재에 높은 출재수수료를 지급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공정위 관계자는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결정한 것 아니냐”며 “우리는 모든 적법절차를 거쳐 사건을 마무리했다”고 반발했다. 실무처 심사보고서를 검토한 전원회의가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사무처는 검찰의 역할이고 전원회의는 법원의 역할을 한다”며 “검찰이 기소한다고 해서 법원이 무조건 유죄를 확정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전혀 이상한 사례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해당 사건이 경제개혁연대와 공정위 간의 대립으로 확산되고 있음에도 삼성 측은 입을 굳게 다물어 의혹만 키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우리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이 공식입장”이라는 말만 되풀이해 “사건 당사자가 나서지 않는다면 누가 나서야 하는 것인가”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삼성화재 역시 “법을 위반하거나 편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정도의 소극적인 태도만 보이고 있다.
삼성의 권력인가, 정부의 삼성 봐주기인가
세 단체의 진실공방은 이제 법원의 판결에 달려있다. 하지만 이번 경제개혁연대의 재정신청에서도 삼성의 무혐의가 입증되면 정부의 ‘삼성 봐주기’라는 지적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송호창 민주통합당 의원(경기 과천·의왕)이 지난해 9월 공정위가 제출한 ‘상위 10대 대규모기업집단 및 그 계열사 관련 고발현황’자료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삼성그룹의 경우 총 조사건수가 26건이었지만 최종 고발한 것은 고작 2건(12.5%)에 불과해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에 송 의원은 “공정거래위원회는 준사법기관으로서 그 심결내용이 1심 판결에 해당하는 만큼, 보다 엄격한 법과 원칙에 의한 심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질타했다.
공정거래법 자체를 강화해 실효성을 높여야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 제23조7항은 계열사 등에 대한 부당지원을 규제하고 있으나 조문에 명시된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해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의 구체성이 떨어져 거의 사문화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저히’의 기준을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유리한 조건’에 대한 규제를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공정위 관계자는 “‘현저히’라는 단어에 대한 구체적인 범위를 규정할 수는 없다”고 변함없는 입장을 고수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를 두고 “삼성전자를 고소하고 2년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조사하고 있다’는 답변만 듣다 불기소 처분을 통보 받았다”며 “삼성을 봐주는 것이라고 해도 그 기간 중 보험물량 몰아주기와 관련한 최소한의 판단 기준이라도 정립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러한 논란 속에 경제민주화를 표방하는 박근혜 정부의 움직임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재벌 지배구조보다 불공정거래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인 민주통합당 역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이달 임시국회의 최우선 민생법안으로 분류하고 일감몰아주기, 부당내부거래 규제 강화 등을 제시한 상태다.
이처럼 여야가 동시에 추진하는 경제민주화 사안들이 새 정부 출범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되면 그동안 법 위에 군림하는 것처럼 보였던 대기업들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질 전망이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