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홍 뒤 쫓는 경찰… 검·경 수사권 조정 불똥 튄 SK
김원홍 뒤 쫓는 경찰… 검·경 수사권 조정 불똥 튄 SK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3-02-12 11:20
  • 승인 2013.02.12 11:20
  • 호수 980
  • 2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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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최태원 회장 SK그룹 횡령사건’ 다시 들춘다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실형 선고를 받았다. 지난해 8월 이후 6개월 새 10대 그룹 총수 2명이 법정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재계의 좌불안석은 극에 달하고 있다. 재계는 ‘다음 타깃은 누구냐’는 폭풍전야의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최 회장 SK그룹 자금 횡령사건’은 이제부터 시작일 수 있다. 경찰이 최 회장 구속으로 마무리되는 듯 했던 이 사건에 대해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 내부 소식에 정통한 한 소식통에 따르면 경찰 고위층에서 최 회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다음날인 지난 1일 “이번 사건의 또 다른 핵심자인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의 소재를 파악하는데 사활을 걸라”라는 특명이 하달됐다. 경찰은 김 전 고문의 소재 파악을 통해 ‘검·경 수사권 조정’, ‘김기용 경찰청장의 임기 보장’등 민감한 사안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1월 불구속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31일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함께 기소됐던 최 회장의 동생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최 회장은 법원으로 부터 실형을 선고받은 데 대해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했다. 이에 검찰 역시 최 회장의 일부 혐의가 무죄 판결 난 것에 불복하며 최태원·최재원 형제에 대해 항소했다.

‘수수께끼 인물’ 김원홍

이번 사건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최 회장과 검찰 모두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데다 1심 선고 직후 경찰 내부에서 내려진 ‘특명’ 때문이다.

경찰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1일 경찰 고위층으로부터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의 소재를 파악해 추가적 사안을 확보하라’는 특명이 하달됐다. 경찰은 중국, 홍콩, 싱가폴 등 중화권 국가의 협조를 최대한 얻어 김 전 고문의 소재 추적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수사한 이번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고, 주요 참고인인 김 전 고문의 소재 파악에 나선 것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증권사 출신의 무속인 김 전 고문은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각계 유력인사와 재력가들의 선물투자를 대행하고 고수익을 내 강남에서 이른바 ‘도사’로 통했던 인물이다. 최 회장은 김 전 고문에게 경영 자문을 받으며, SK해운 고문에 앉히고 선물투자도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고문의 존재가 외부로 드러난 것은 2003년 ‘SK그룹 분식회계 사건’이다. 당시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의 거래에 김 전 고문이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는 김 전 고문에 대한 정보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어 ‘수수께끼 인물’로 불린다. SK그룹 내부에서도 김 전 고문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고문은 검찰 수사 초기인 2011년 3월 중국으로 출국해 귀국하지 않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SK그룹 총수 형제의 회삿돈 횡령 의혹을 풀어줄 열쇠로 꼽히는 김 전 고문에 대해 검찰이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검찰은 수차례에 걸쳐 SK그룹 측을 통해 그의 귀국을 요청했을 뿐 김 전 고문에 대해 범죄인 인도청구 등 강제송환 절차를 밟지 않았다. 검찰은 김 전 고문 송환문제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면서도 법무부와 외교통상부를 통해 중국 당국에 김 전 고문 송환을 공식 요구한 적 없었다. 검찰은 김 전 고문에 대한 직접 조사가 없어도 최 회장 형제의 혐의를 입증하는데 차질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 태도를 두고 경찰 주변에서는 “김 전 고문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이번 사건의 선물투자 과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일 것”이라며 “검찰이 이번 사건에서 미처 파헤치지 못한 부분이 많이 있으니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 전 고문의 소재를 파악해 소환조사한다면 새롭게 판이 짜져 ‘파괴력’을 가질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수사력·공정성 부각 전략

경찰이 이미 검찰 조사까지 끝난 최태원 회장 횡령 사건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검·경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검찰은 스폰서 검사·섹검·떡검·벤츠 여검사 등 탈선한 검사들로 인해 위신이 추락됐다. 경찰이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번 사건을 통해 검찰이 미처 밝히지 못하고 넘긴 부분을 캐내는 등의 성과를 내겠다는 것으로 경찰 수사력과 공정성을 크게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재판부의 판결을 두고 검찰의 ‘최태원 봐주기’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검찰은 법원이 인정한 범죄금액보다 약 170억 원 더 많은 637억 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최 회장을 기소하고도 양형기준상의 최저 형량인 징역 4년만 구형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여 ‘봐주기 구형’이라는 비난을 샀다. 한상대 당시 검찰총장이 ‘봐주기 구형’을 지시했다는 의혹까지 일었었다.

최 회장과 함께 기소된 최 수석부회장에 대해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것도 검찰에겐 아픈 대목이다. 검찰은 최 회장에게는 징역 4년을 구형했으나 최 수석부회장에게는 더 높은 징역 5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법원의 선고는 정반대로 나왔다.

경찰 소식통은 “‘검찰의 봐주기 수사·구형’의혹이 인 사건에 대해 경찰이 추가 비리 의혹을 밝혀내는 등에 성과를 낸다면 검찰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 돼 경찰 입지를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이것이 바로 경찰의 이번 사건을 다시 파헤쳐보는 ‘노림수’다”라고 말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경찰이 김 전 고문의 소재만 파악하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김 전 고문을 소환하더라도 김 전 고문이 ‘묵비권’을 행사하면 검찰 수사결과 보다 진전된 결과를 내놓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경찰 주변에서는 경찰 조직의 수장인 ‘김기용 경찰청장의 임기 보장을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공약을 통해 ‘경찰청장 임기 보장’을 약속했지만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가정보원 여직원 김모씨의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민주당이 국정조사 실시와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검찰에 고발하는 등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다.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이를 두고 국정원 여직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의 불똥이 김용판 청장에 이어 김기용 청장에게까지 튀어 경찰청장 임기가 지켜질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보고 있다.

또 경찰 소식통들에 따르면 최근 김기용 청장은 서울청장 출신과 시경캡(서울시경 출입기자로 사건기자들을 총괄)들의 모임을 주선해 우호적 여론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서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박 당선인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각 권력기관장들에게 자진 퇴임을 요청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부는 이를 받아들여 조만간 자진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일부는 박 당선인이 직접 요구하지 않는 한 절대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강경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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