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백교 살인사건 5
백백교 살인사건 5
  • 이수광 작가
  • 입력 2013-02-12 11:16
  • 승인 2013.02.12 11:16
  • 호수 980
  • 2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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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살인마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폭압통치에 시달리던 가난한 민중에게 희망은 사치에 불과한 듯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줄기 희망을 꿈꾸게 해주는 이가 등장했다. 그는 바로 백백교 교주 전용해였다. 신선의 땅에서 불로장생한다는 백백교의 달콤한 교리는 한 줄기 구원이고 희망이었다. 그러나 백백교에 끌려온 사람들은 재산을 빼앗기고 부인과 딸을 교주에게 바쳤다. 교주 전용해의 행태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백원창의 집 마당이 문이순의 몸에서 꾸역꾸역 흘러내린 피로 벌창을 이루었다. 전용해는 잔인했다. 그는 문이순을 몽둥이로 때려죽인 뒤에 그의 처 이순화까지 잔인하게 살해했다.

독재자는 2인자를 경계한다

독재자들은 2인자에게 자신이 가진 것만큼의 힘을 실어주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국가나 집단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권위를 훼손당하거나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까 봐 2인자에게 필요 이상의 권력을 허용하지 않는다. 전용해는 의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는 문봉조, 이경득 등 백백교 간부들끼리 충성을 경쟁시키고 항상 다른 사람들을 시켜 그들을 감시했다.

“문봉진이 나를 배신했다. 네가 상여꾼들을 데리고 가서 죽여라!”
전용해가 문봉조에게 명령을 내렸다. 문봉진은 문봉조의 사촌형이었다.
“예!”
문봉조가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갔다.
‘놈이 사촌형을 죽이면 나에게 충성하는 것이고, 죽이지 않으면 배신하는 것이다.’
전용해는 문봉조의 충성심을 시험하고 있었다.

문봉조는 이튿날 아침 자신의 사촌형인 문봉진 일가를 처형하기 위해 양주군 동하면 대인리로 내려갔다. 문봉조의 사촌형인 문봉진은 백백교에 입교해 대인리에서 화전을 개간하고 있었다. 그런데 백백교 간부인 사촌동생 문봉조의 세력을 믿었기 때문인지 그는 다른 신자들 앞에서 화전을 개간하는 일이 너무 힘들고 대우가 나쁘다고 불평했다. 그 사실이 밀정들에 의해 전용해에게 보고되어 처단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전용해의 명령에 문봉조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이미 수많은 신자들을 처형했기 때문에 살인귀로 변해 있었다.
“아이고, 동생이 이 먼 곳까지 웬일인가?”
문봉진은 사촌동생 문봉조를 반갑게 맞이했다.
“형님을 뵌 지가 오래되어서 인사나 드리려고 왔습니다.”
문봉조가 문봉진 처의 눈치를 살피며 얼버무렸다.
“뭐해? 동생이 왔는데 얼른 술상 차려.”

문봉진이 소리를 지르자 문봉진의 처가 부엌으로 나갔다. 그때였다. 문봉조는 노끈을 꺼내 문봉진의 목에 감았다. 문봉진은 숨이 막혀 발버둥을 쳤으나 문봉조가 억센 완력으로 노끈을 바짝 죄자 이내 눈을 부릅뜨고 숨이 끊어졌다.
‘교주님의 지시니 어쩔 수 없소.’

살인귀 문봉조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문봉진의 처가 술상을 차리다가 말고 문봉조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그녀는 사촌 시동생이 억세게 목을 조이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 그 다음은 옆방에서 자고 있는 어린 조카들이었다. 문봉조는 어린 조카들까지 잔인하게 살해한 뒤에 시체를 대인리 뒷산에 묻었다.

“음, 문봉조는 충성스러우니 오명애를 첩으로 준다.”
전용해가 만족해하면서 자신의 첩을 문봉조에게 하사했다.
1935년에 이르자 백백교의 살인 행각은 더욱 악랄해졌다. 백백교에 가입한 뒤에 재산을 바치지 않으면, 백백교 신자들은 교주 전용해가 있는 경성으로 끌려와 온갖 협박을 받고 재산을 빼앗긴 뒤에 살해당했다. 하지만 피살자의 가족들은 그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 가족들에게 가장이 백백교에서 부귀를 누리고 있다고 통보해 안심하도록 했다. 백백교에 입교한 가장이 돌아오지 않아 부인이 의심을 하거나 지부에 찾아와 수상쩍은 눈치를 보이면 경성으로 찾아가 보라고 정중하게 권했다.
“경성에 찾아가도 괜찮을까요?”
대부분의 부인들은 조심스러워하면서 물었다.
“그럼요. 어르신은 잘 계시니까 이 기회에 경성 구경도 한 번 하시지요. 찾기도 어렵지 않습니다.”
백백교의 지방 간부들은 친절하게 약도까지 그려주면서 차비까지 주어서 보냈다.

가족들은 백백교의 친절에 몇 번이나 사례의 인사를 하면서 경성으로 올라가기 위해 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길은 저승으로 가는 길이 되었다. 지부에서 뒤를 밟게 한 백백교의 살인귀들이 인적이 드문 산에서 악마로 돌변해 살해하는 것이다. 그들은 어린아이들도 가리지 않았다. 가장을 찾는 여인네들은 대부분 어린아이 두셋을 거느리고 있는데, 백백교의 살인귀들은 어린아이들까지 닥치는 대로 살해했다. 백백교가 살해한 신자들 중에 가장을 찾아 나섰다가 죽은 사람들이 절반이나 될 정도였다.

전용해는 무서운 인물이었다. 그는 수청을 들지 않는다고 15∼16세의 소녀들 셋을 발가벗겨서 얼려 죽인 일도 있었다. 한밤중에 그는 소녀들을 마당으로 끌어내게 한 뒤에 옷을 벗기고 꽁꽁 묶었다. 그러고는 그들에게 찬물을 쏟아 부었다. 소녀들은 추위에 덜덜 떨다가 결국 얼어 죽고 말았다. 전용해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이었다.

전쟁의 광기를 피하려 했건만

1937년이 되면서 전쟁의 광기가 휘몰아쳐왔다. 1937년에 일본이 중일전쟁이 일으키자 조선에도 그 여파가 미쳤다. 일본은 1935년부터 전쟁물자를 조선에서 동원했다. 중일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조선은 전쟁의 광기에 휩싸인 것이다.

조선인들은 불안했다. 그렇잖아도 일본인에게 착취당하고 있었기에 구원의 손길이 필요했다. 백백교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 구원을 약속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과 일본인의 착취를 피해 백백교로 몰려들었다.

“우리 교주 대원님은 참 하늘님이시오. 우리 하늘님에게 죄를 짓는 것이 가장 큰 죄악이오. 그러나 우리 하늘님을 받들면 병란도 피하고 죽지도 않을 것이오. 재산을 모두 처분하여 교주님께 오시오.”
백백교 신자들은 시골에 살면서 재산은 있으나 무지한 농민들을 끌어들였다.
“재산을 정리하면 어떻게 되오?”
“교주님에게는 엄청난 농장이 있소. 재산을 많이 바친 자는 평생 일하지 않고도 부귀를 누리며 살 수 있소.”
“그 말이 참이오?”
시골의 농민들은 의심이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을 속이려 드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자들은 농민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아 그들로 하여금 재산을 정리해 경성으로 올라오게 했다. 농민들이 경성의 백백교 본부로 올라오면 양주에 훌륭한 농장이 있다고 속여서 재산을 빼앗고 가장을 양주로 내려보냈다. 양주에서는 폐광이나 동굴에 기도처를 마련해놓고 재산을 바친 농민들에게 기도하게 했다.
“백백백… 적적적… 흑흑흑….”
농민들은 재산을 빼앗기고 입교를 한 처지라 무릎을 꿇고 앉아서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기도에 열중하고 있을 때 심봉사자나 북두사자의 명칭을 갖고 있는 벽력사들이 뒤로 다가와 몽둥이로 뒤통수를 후려쳐 살해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을 때 양주군에서는 모두 22구의 시체가 발굴되었는데 여자 시체는 11구였다. 22구의 시체 중에는 어린아이들의 시체까지 있어서 백백교의 잔혹함이 드러났다. 가장이 양주에서 살해되면 가족들은 양평이나 연천에 보내져 살해되었는데 연천에서 40구, 양평에서 40구, 강원도 평강에서 30구가 발굴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백백교의 말로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다음호에 계속>

* 위 내용은 <대한민국 12비사>(이수광 저, 일상과이상 간)의 일부 내용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책 속에 있습니다.


 

이수광 작가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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