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중국을 건국한 마오쩌뚱과는 거리가 멀며 오늘날의 중국을 규정짓고 있는 문화대혁명과도 무관하다. 그들이 아직 채 태어나기 전 혹은 아주 어렸을 때 마오쩌뚱이 사망했으며 혁명의 소용돌이도 가신 상태였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우리가 흔히 머릿속에 연상하는 경직된 중국과는 거리가 먼, 덩샤오핑의 탈이념, 실용주의 노선시기에 탄생 혹은 성장한 첫 성인세대이다. 좀 더 달리 표현하자면 출생과 더불어 서방 자본주의적 환경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상태에서 성장해 온 ‘신중국인’ 세대인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언행은 기존의 중국인들과 판이하게 다르게 나타난다. 집단의식이나 검소함, 자족 등과 같은 기존의 중국적 사회관념이 더 이상 이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부모세대들은 없는 살림 아껴가며 한푼두푼 저축으로 일관해왔지만 이들은 돈 없으면 대출받고 카드 긁어가며 자동차를 구입하거나 취미활동을 위해 지출하는 등 발전하고 있는 중국경제의 과실을 향유하며 철저히 개인적인 삶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정부에 의해 중화민족의 우수성을 줄기차게 주입받아온 그들의 ‘중국’과 ‘중화민족’에 대한 맹목적 애국주의와 애족주의가 너무 지나치다는 것이다. 그 한 예를 올해 초에 있었던 한국의 축구응원단 ‘붉은 악마’에 대한 축구 응원단의 폭력행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중국’과 ‘중화민족’이라는 단어앞에는 순식간에 냉정을 잃고 흥분하며 폭력도 불사하게 된다.
그들의 이와 같은 경향은 중·일관계나 중·미관계와 같은 국제관계에서 잘 나타나는데 특히 중·일관계에서는 일본과의 우호관계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는 중국정부를 신랄히 비난, 인터넷 등을 통해 격렬하게 반일운동을 주동하거나 중국에 있는 일본관련 시설이나 일본인에게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교육을 시켜 온 중국정부도 급기야는 마치 키워 준 맹수새끼에게 물리듯 이들의 요구를 무시하거나 경시할 수 만은 없게 되었으니 13억 인민의 정제되지 않은 민족주의의 분출은 상상만 해도 대단히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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