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 최영의 프리랜서] 국정원 여직원 사건과 관련해 추가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이번 사건을 불법선거운동으로 규정하고 일차적으로 수사를 축소·왜곡한 경찰에 책임을 추궁한다는 계획이다. 이어 민주당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박근혜 당선인에게까지 문제제기를 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궁지에 몰린 것은 경찰이다. 민주당은 경찰수사에 의혹을 제기하며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을 최근 고발한데 이어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 또는 특검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정치권에 적지 않은 파장이 일 전망이다.
만약 국정조사 등을 통해 경찰이 고의로 수사를 축소 은폐한 정황이 사실로 드러나면 경찰은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사안이 경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박 당선인에게로 옮겨갈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경우 새 정부가 경찰을 그대로 둘리 만무하다. 대대적인 수뇌부 인사 칼바람 뿐 아니라 검경 수사권조정도 없던 이야기로 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정보원 여직원 김모씨의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인수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검경수사권 조정과 경찰청장 인사 여부를 저울질해 오던 인수위는 최근 향후 방향을 내놓았다. 이를 접한 경찰은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대선 직전 수사권조정 가능성이 커지자 한껏 달아올랐으나 최근 인수위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경찰의 기대는 물 건너갔다.
인수위는 수사권조정에 대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경찰청장 교체와 관련해서는 당초 “잔여임기를 보장하겠다”는 입장에서 “검토해보고 새로 임명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에 경찰과 정치권 주변에서는 최근 경찰의 국정원 여직원 수사 반전을 두고 “경찰이 수사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국정원 여직원에 대한 경찰 수사가 거듭될수록 정치권에서는 두 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아무것도 없다”고 했던 경찰이 뒤늦게 “뭔가 있었다”고 밝히고 나선 배경과 또 다른 하나는 이번 사건에서 국정원이 실제로 선거에 개입했는지 여부다.
박근혜 정부까지 계속
민주당 국정원 불법선거운동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 6일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을 형법상 직권남용 및 경찰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국정원 여직원 사건’ 중간수사결과를 대선 사흘 전에 발표한 것과 지금 새로 드러나는 내용이 완전히 다른 것 등이 혐의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에 따르면 김 청장이 자신의 직권을 남용해 수서경찰서로 하여금 진실과 다른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해 언론보도를 유도한 점은 형법상 직권남용이다. 또 여당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브리핑자료를 수서경찰서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것에 대해 경찰공무원법위반 혐의가 있어 고발조치했다는 것이다.
이날 브리핑에서 박범계 의원은 “김 청장은 (대선 사흘 전) 기자회견을 통해 수사 상황을 오히려 축소ㆍ왜곡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며 “당시 경찰은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ㆍ비방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지만 결국 거짓임이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또 박 의원은 “지난해 12월16일 마지막 대선후보토론이 끝난 밤 11시경 기습적인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국정원 여직원이 제출한 컴퓨터 2대의 하드디스크를 조사한 결과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며 “경찰의 발표는 최근 거짓임이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그러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고발을 보류했다. 공직선거법상 구성요건 중 당선 목적 혹은 낙선을 목적으로 한다는 목적범적 측면이 있는데 그 부분이 조금 부족해 적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추후에 필요하면 추가로 고발한다는 입장이다.
사건이 대선 전과 다른 양상을 띠면서 정치권과 경찰 주변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김기용 경찰청장이 물러날 수 있다”는 조심스런 전망과 함께 민주당이 사안을 경찰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박근혜 당선인까지 문제 삼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난처한 경찰 마지막 해법
국정원 불법선거운동 진상조사위원회는 대선 전 경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가 공교롭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진상조사위는 “김 서울청장은 지난해 마지막 대선후보 TV토론이 끝난 직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에게 유리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수사결과 발표 시점도 석연치 않지만 수사 내용도 거짓이었음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고 경찰을 비난했다.
경찰발표 시점에 대한 의혹은 정치권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이때 저녁 11시경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렇게 늦은 시간 그것도 대선 후보 토론회가 끝난 직후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경찰이 대선을 앞두고 서둘러 사건을 진화하려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 드러나는 사실들을 경찰이 그대로 밝혔을 경우 박 당선인은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축소 은폐 의혹이 이는 것은 이런 내용을 경찰이 미리 알고 덮었을 것이라는 데서 비롯된다.
민주당은 국정원 여직원 사건을 정권출범 이후에도 계속 쟁점화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박근혜 정부에 대한 문제의식을 확산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단순히 박 당선인을 비롯한 새 정부를 흔들기 위한 게 아니라 정치적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라며 “부당한 방법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면 이는 당연히 무효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권에서 당선무효를 주장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어 박 당선인으로서는 이번 사건을 쉽게 간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초반 광우병 파문으로 불신론에 휩싸이는 바람에 임기 내내 레임덕에 시달렸던 것을 감안할 때 이번 사건을 박근혜 정부의 미래를 결정짓는 첫 번째 관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민주당은 서울청장에 대한 고발에 이어 경찰청장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할 것으로 전해져 경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검경수사권조정 문제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 수장이 정치적 문제에 휘말릴 경우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민주당이 서울청장에 이어 김 청장에 대해서도 고발조치를 할 경우 조현오 전 청장에 이어 김 청장도 검찰 조사를 받게 되고 이렇게 되면 검찰에 수사권 관련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기게 된다.
민주당은 이 사건에 사활을 걸고 있는 눈치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여러 말들이 나오고 있다. 여권에서는 민주당이 이 문제를 통해 검찰 경찰 국정원 등 3개 사정기관 수장 인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내분 진정효과
검찰과 경찰, 국정원은 정권의 핵심 기관으로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이 사건을 통해 3개 사정기관 수장 인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 여직원 사건은 여권, 국정원, 검찰, 경찰이 모두 얽혀있다”며 “공교롭게도 모두 새로 조직 내 물갈이를 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민주당은 이 사안을 핵심 쟁점으로 만들면 물갈이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민주당이 대선패배에 대한 책임을 외부로 돌리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대선 직후 내부 갈등이 극에 달한 민주당은 당의 해체설까지 나올 정도로 참담한 분위기였다.
동교동계는 대선에 패배한 친노 386인사가 모두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386계는 “동교동계를 비롯한 몇몇 계파가 제대로 대선을 지원하지 않아 패했다”고 맞섰다. 심지어 이런 가운데 안철수 전 후보를 중심으로 신당이 창당되면 민주당 핵심부가 와해될 것이라는 관측도 파다했다.
민주당의 내분 조짐이 다시 협동모드로 바뀐 것은 공교롭게도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새롭게 전개되던 시점과 겹친다. 이에 여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대선패배에 대한 책임을 외부로 돌리려는 술책을 부리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일단 국정원 여직원 사건과 관련해서는 민주당이 ‘박 당선인 당선무효’로 여론을 몰아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는 일부 인사들의 발언에서도 가능성이 묻어난다.
18대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후보로 출마했던 강지원 변호사는 지난 4일 오전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 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에 출연해 “경찰이 계속 감춰오다 갑자기 (대선 직전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며 “결국 경찰도 여론 조성을 위해 개입한 것이 아니냐. (국민이) 엄청난 의문을 갖고 있다. 어느 나라의 경찰과 정부기관이 선거에 개입 하느냐. 만일 장기화하고 시끄러워진다면 예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재화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 모임 사법위원회)는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지난 4일 CBS 라디오 <김미화의 여러분>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국가 정보기관이 앞장서서 국민의 의사를 왜곡한 것이기 때문에 명백한 관권 선거고, 전모가 드러나면 대선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는 사유가 될 만큼 심각하다”고 말해 민주당이 박 당선인에 대해 당선무효 청구소송이 가능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인수위 측이 사태를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인수위와 경찰이 사태수습을 위해 모종의 해결책을 조만간 내놓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인수위는 사실 김 청장을 내리고 새 청장을 임명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다. 이런 눈치는 이미 김 청장에 전달된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최근 인수위가 다시 김 청장과 여러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마 김 청장과 인수위가 사태 수습안을 내놓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영의 프리랜서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