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설특집①]대한민국 힐링피플-‘배달종사자가 사는 세상’
[2013설특집①]대한민국 힐링피플-‘배달종사자가 사는 세상’
  • 박수진 기자
  • 입력 2013-02-05 11:00
  • 승인 2013.02.05 11:00
  • 호수 979
  • 3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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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세상, 아직 살 맛 난다~”

[일요서울│박수진 기자]국제 경제 전문가들이 올해 국내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수출 둔화는 물론, 주택시장 침체와 가계 부채 등 앞으로 발목 잡힐 악재들이 산적해 있다는 것이다. 한두 해 듣는 소리가 아니거늘 왜 들을 때마다 맥이 빠지는지 알 수 없는 영문이다. 이처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사는 게 힘들다보니, 세상 인심이 각박해지고 있다. 지난해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는 배달원들의 엘리베이터 사용을 금지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한국인은 곧 정이라는 공식을 한방에 깨트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인색한 세상 속에서도 따뜻한 이웃과 든든한 가족으로 인해 힘이 난다며 웃음을 잃지 않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은 바로 ‘대한민국 대표 배달종사자’들이다. 일은 힘들지만 주변의 넉넉한 마음으로 오히려 웃을 수 있단다. 그들 삶의 현장을 [일요서울]이 직접 들여다봤다. 

고객·이웃 모두 친구

인천에서 야쿠르트 배달원인 S씨(49)는 남들보다 이른 시간인 새벽 4시30분에 출근 준비를 서두른다. 아이들 아침을 챙겨놓고 출근 준비를 마친 시간은 5시. 다른 직장인들의 기상시간이라고 하기에도 이른 시간이다.

S씨는 집에서 나가기 전, 옷매무새는 물론 핫팩을 꼭 챙긴다.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 길에서 일하는 만큼 만만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동상 걸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년 겨울 감기몸살은 연례행사처럼 치르고 지나가기 일쑤다. 지난해엔 찬바람으로 인해 얼굴이 얼었던 적도 있었다. 경력 15년을 자랑하는 만큼 추위와 더위에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S씨는 날씨 앞에서는 당해낼 장사가 없다고 말한다.

S씨가 대리점에 도착한 시간은 5시30분. 보통 8시에 출근하는 게 맞지만 S씨는 유난히 욕심을 더 낸다. 15년 전 남편과 사별한 S씨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가장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두배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빨리 고정 고객의 배달을 마친 후, 거리에서 제품 하나라도 더 팔고 싶다고 한다.

S씨는 “일은 들지만 이렇게 욕심낸 덕에 고정 고객 확보는 물론, 두 아이 모두 대학까지 보낼 수 있었다”며 “조금 더 열심히 해서 아이들이 출가할 때까지 힘을 낼 것”이라고 씩씩한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힘든 와중에도 S씨가 하루 중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회사와 동사무소가 연계한 사회복지프로그램인 독거노인 보살피기다. 이 프로그램은 야쿠르트 배달원들이 야쿠르트 배달과 함께 무의탁노인 가정을 방문해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자원봉사 활동이다.

S씨는 집에 홀로 계신 어르신들의 생사와 건강 상태를 일주일에 2~3번 확인 하는데, 어르신들을 보면 시골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나면서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진다고 말한다.

S씨는 “모두 알뜰히 챙겨드릴 순 없지만 말벗이 돼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늘 고맙다며 손을 잡아주시는 어르신들에게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했다.

배달을 마친 S씨가 다음에 할 일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추운 겨울에 거리에 서 있기란 굉장히 곤욕스럽다. 하지만 S씨는 주변 이웃으로 인해 추위와 더위는 물론 스트레스마저 털어버린다고 말한다. 상가에서 부동산·분식점·피아노·미용실 등을 운영하는 분들이 이제는 모두 언니이자 동생이기 때문이다. 더위와 추위를 피하러 들어갔다가 오고가는 얘기 속에 정을 키웠다.

S씨는 “이렇게 얘기하다 보면 서로 제품도 팔아주고, 이용하게 된다”면서 “김장김치를 서로 가져다주는 일은 예삿일이고, 아마 집에 숟가락 젓가락이 몇 개 있는지도 다 알 것”이라고 말하며 호탕한 웃음을 선보였다.

S씨는 주변 이웃뿐만 아니라 오래된 고객들과도 이제는 우정으로 뭉친다. 점심 먹으러 집으로 오라는 고객부터 커피 마시러 들르라는 고객까지 신경 써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 어느 고객과는 10년 이상의 우정으로 딸 결혼식까지 참석했을 정도이다.

이에 S씨는 “세상살이 많이 각박해졌다고 하지만, 아직 살 맛 나는 세상”이라며 “그래서 웃을 수 있고 일 할 힘이 솟아난다”고 말했다.

든든한 가족이 곁에 있다면 괜찮아

인천에 거주하는 W(47)씨와 P(44·여)씨 부부는 남편의 사업이 갑작스럽게 어려워지면서 신문배달을 하기 시작했다. P씨가 아침에 공단으로 출근하고 남편 역시 사업에 여전히 몸담고 있지만, 쌓여버린 빚과 커가는 두 아이의 교육비까지 충당하기엔 생활비가 부족하다. 그래서 부부는 새벽잠을 줄이고 신문 배달에 나섰다. 처음엔 신문배달이 부끄러워 아이들의 입단속을 시키기기에 급급했다. 속상해 울던 날도 많았다. 

그랬던 부부가 신문 배달을 시작한지도 벌써 2년째. 늦어도 6시까지는 모든 배달을 완료해야 하는 신문배달 특성상, 부부는 3시에 기상해 4시에 신문을 받아 2시간 동안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에 신문을 돌린다. 이제는 환상의 호흡을 자랑할 만큼 돌리는 속도도 빨라졌다. 

P씨는 처음 시작할 때 조용하고 깜깜한 새벽에 신문을 돌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하지만 다행히 남편이 함께 있고 야간 경비아저씨들이 배려해준 덕에 걱정을 덜고 배달 일을 할 수가 있었다. 남편과 아파트 동이 달라 따로 돌려야 할 때는 경비원 아저씨가 올라가서 내려올 때 까지 밖에서 지켜봐주기도 한다.

P씨는 “지난해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배달원들 엘리베이터 사용 금지’ 경고문을 붙였다는 뉴스를 보고 세상 인심 각박해졌구나”라고 느꼈다면서 “나는 다행히 좋은 분들을 만나 도움 받으면서 일하고 있다”고 말하며 감사해 했다.

부부가 신문배달을 처음 시작할 때 애를 먹었던 사항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신문을 원하는 위치에 놓는 것이었다. 지금은 익숙해져서 층 버튼을 미리 눌러 놓고 엘리베이터가 열린 잠깐 사이에 신문을 던져 놓지만, 처음엔 엘리베이터에서 직접 내려 신문을 놓고 와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다며 일부 주민에게 혼나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배달 일을 하면서 부부를 가장 뿌듯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다름 아닌 몇 달 전 방학을 맞이한 중학생 첫째 딸이 돕겠다며 새벽 일찍 일어났던 것이다. 이 모습에 부부는 잠 부족은 물론 주민에게 욕먹었던 것 모두 잊을 수 있었다.   

W씨는 “이제 고작 15살인 큰아이가 돕겠다며 새벽녘 일찍 일어나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가슴 한켠으로는 다 컸다는 생각에 기특했다”고 말했다.

결국 부부와 딸은 방학 한 달 동안만 함께 신문배달을 체험하기로 결정하고 딸은 엄마와 한 조를 이루어 신문을 배달했다. 엄마가 1·2라인을 맡고 딸은 3·4라인을 맡았다. 둘은 누가 빨리 내려오나 시합하는 등 일이라는 생각보다 소중한 경험을 함께 나눈다고 생각해 가족애는 더욱 더 돈독해졌다.

P씨의 딸인 W(15)양은 “처음엔 친구들에게 창피한 것 보다 매일 우는 엄마의 모습에 속상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우리를 위해 애쓰시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모님이 자랑스럽다.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부부는 일심동체

경제적인 이유로 바쁜 삶을 살면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아 보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반성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K씨(40)는 일명 ‘쓰리잡(3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새벽엔 두 시간 동안 아파트 내 우유배달을 하고, 아침엔 직장에 출근한다. 그리고 10시 이후에는 12시까지 아내와 함께 대리운전을 한다. K씨가 거주하는 곳이 외져 택시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아내와 함께 생각한 아이디어다. 

혼자 하면 힘들 법도 한데, 군소리 없이 따라와주는 아내 덕분에 오히려 의기투합하는 양상이란다. 하지만 고생하는 아내에게는 늘 미안해, 자신은 아내에게 부족한 남편이라고 말한다.  

아침 일찍 우유배달을 해야 하다 보니 K씨 역시 다른 배달원처럼 남들보다 이른 하루를 시작한다. 3시 반에 일어나 고양이 세수만 한 채, 곧바로 옷만 챙겨 입고 나간다. 일을 하는 동안 뛰어야 하기 때문에 아침은 우유 한 팩으로 끝낸다. 

우유배달은 야쿠르트와 달리 아침 배달로 끝나기 때문에 한 회사의 우유 제품만 가지고는 수입이 많지 않다. 이에 현재 K씨가 맡고 있는 우유 브랜드는 총 4개. 아파트 앞으로 배달되는 해당 우유들은 무게가 있다 보니 개인 자가용에 따로 실은 뒤, 다시 해당 아파트 동 앞에서는 시장 장바구니에 옮겨 담아 배달한다. 이렇게 한 달에 60만~70만 원은 벌 수 있다.

K씨가 집에 도착한 시간은 6시. 출근 준비 후, 곧바로 회사로 출근한다. 힘든 기색을 보일 때도 됐지만 K씨에게는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호탕한 웃음과 잦은 유머로 주변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

여러 일을 하면서 K씨에게 원칙이 있다면 이동 거리를 최소한 단축하자는 것이다. 쉬는 시간이 남들 보다 적은 만큼 길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재 우유배달도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만 하고 있으며, 집도 회사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마련했다.

K씨가 회사에서 퇴근 후,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7시 반. 씻고 밥 먹고 휴식을 취한 뒤, 10시가 되면 아내와 함께 대리운전에 나선다. 여성 고객은 아내가, 남성 고객은 K씨가 맡아 운전한다. 대리운전을 할 때는 K씨가 자신의 차를 가지고 뒤따라 다닌다. 보통 집 근방 1시간 거리 반경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큰 무리가 없다는 설명이다.

K씨는 “이렇게 힘들고 바쁘게 사는 것이 뒤로 후퇴하는 게 아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절망할 필요가 없다”면서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잡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 끝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또한 나에게는 함께 해주는 든든한 아내가 있지 않냐”며 너스레도 떨었다.

soojina6027@ilyoseoul.co.kr

박수진 기자 soojina602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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