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 상시ㆍ지속적 업무 정규직 전환… 재계 긴장도 ↑
- 새 정부 코드 맞춰 오너 특별사면 준비한다는 의혹도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한화그룹(회장 김승연)이 호텔ㆍ백화점 등 계열사 비정규직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재계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시 비용문제나 신규채용 축소 우려를 들며 몸을 사렸다. 분명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하는 계약직에 대해서는 고용형태를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공감하면서도 고개를 돌린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한화그룹이 정규직 전환을 선언하면서 재계 고용형태 변화의 작지만 큰 첫걸음이 될 것인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또한 금융권 역시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파생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비정규직 직원 20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지난달 27일 밝혔다. 또한 한화그룹은 향후 상시·지속적 직무는 계약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채용한다고 선언했다. 국내 10대 그룹사 중 그룹 차원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은 한화가 처음이다.
전환 대상은 그룹 계열사 호텔·리조트 서비스인력, 백화점 판매사원, 직영 시설관리인력, 고객상담사 등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직무에 종사하는 계약직 직원이다. 계열사별로는 한화호텔&리조트 725명, 한화손해보험 533명, 한화63시티 209명, 한화갤러리아 166명 등 총 2043명이다. 현재 한화그룹의 전체 비정규직 종사자수는 5000여명으로 40%가 넘는 전환율이다.
한화그룹은 평가를 통해 전환 대상자를 확정한 후 다음 달 1일부터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전환 시 무기계약직이 아닌 기존 정규직과 동일한 인사시스템 및 복리후생, 정년 등이 보장된다. 또한 상시ㆍ지속성을 띤 업무임을 감안해 향후 채용 시 고용형태를 정규직으로 변경할 예정이다. 고용노동부는 일반 계약직을 채용한 고용주에게 해당 업무가 상시적인 업무일 경우 가급적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나 의무사항은 아니다.
이번 조치로 한화그룹 내 비정규직 비율은 기존 17%에서 10.4%로 떨어질 예정이다. 지난해 8월 기준 우리나라 비정규직 비율인 33.8%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5%보다도 낮은 수치다. 현재 우리나라 비정규직 종사자수는 600만명으로 고용기간 1년 미만의 임시ㆍ일용직을 포함하면 862만명에 달한다.
장일형 한화그룹 사장은 “이번 정규직 전환은 ‘신용과 의리’, ‘함께 멀리’라는 한화그룹의 가치를 적극 실천하는 것”이라며 “지난해 창립 60주년을 맞아 기업의 경제ㆍ사회적 책임을 성실히 이행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여론은 ‘화색’, 재계ㆍ금융권은 ‘전전긍긍’
이번 한화그룹의 결정에 대해 여론이 우호적인 만큼 재계는 크나큰 압력을 느끼는 상황이다.
조준호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화그룹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침을 환영한다”면서 “현대차를 비롯한 다른 대기업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지난달 24일로 100일을 넘긴 현대차 비정규직 철탑농성에 이어 한화그룹의 정규직 전환에까지 거론돼 부담이 가중된 셈이다.
또한 변재일 민주통합당 정책위의장은 같은 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한화그룹의 이번 조치는 그동안 금융권에서 했던 것과 같이 단순히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화함으로써 정년만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승진, 자녀학자금 지원 등 기존 정규직과 동등한 복리후생 혜택을 받도록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로 인해 금융권에서도 동일 조건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압박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실제로 금융권에서는 정규직 전환 움직임이 이미 몇 차례나 일었다. 산업·기업·신한은행 등 주요 은행들은 지난해 말부터 계약직을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잇달아 발표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전부터 문제로 떠오른 ‘중규직’ 논란과 대대적인 새 정부 ‘눈치보기’라는 우려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특히 전환 시에도 기존 정규직과 비교해 직무와 급여 체계가 별도로 구성되기 때문에 오히려 차별을 고착화시킨다는 지적이 주를 이뤘다. 앞서 우리은행이 시도했던 분리직군제도 이러한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우리은행은 2007년 분리직군제를 도입하면서 비정규직 3076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앞장섰지만 업무 및 연봉 차별로 ‘중규직’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신분은 무늬만이라도 그럴싸한 정규직이지만 급여는 비정규직일 때와 별반 차이 없이 오히려 묶여 있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해당 직군의 연봉은 기존 정규직 신입행원으로 입사한 동기들의 60%에 불과하다.
이후 금융권에서는 무기계약직이 아니면 중규직으로 불리는 정규직 전환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중규직이 이미 비정규직의 또 다른 형태로 자리하면서 고용보장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더욱 늦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새 정부 코드에 맞추기 위해 제대로 된 검토 없이 성급하게 전환함으로써 자칫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편 한화그룹의 경우 제대로 된 정규직이라는 측면에서는 합격점을 받았지만 새 정부의 눈에 들어 김승연 회장의 특별사면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았다. 더불어 재계와 금융권에서는 향후 한화그룹에서 전환된 정규직이 기존 정규직에 비해 전혀 차별이 없을지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당시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노동의 유연성을 이유로 지나친 계약직이 양산돼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면서 “‘중규직’과 같이 이름뿐인 정규직 등 미봉책을 남발해 기형적인 구조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