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법정관리 최단기 탈출이라는 기록을 세운 삼환그룹이 악재에 휘청거리고 있다. 검찰이 최용권 삼환기업 회장의 수백억 원대 회사자금 횡령 의혹 사건을 특수 1부로 재배당하고 수사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 검찰은 3월 중순까지 수사를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앞서 삼환기업 노조는 지난해 8월 청와대에 탄원서를 내는 등 최 회장 수사를 촉구해왔었다. 검찰은 “고발에 따른 통상적인 수사”라며 선을 그었지만 사주 일가가 사용한 차명계좌 운용 내역 등에 대한 검찰의 조사 과정에서 새로운 의혹이 제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삼환노조 측이 제기한 최 회장 일가의 회삿돈 100억 원대 횡령의혹 향방이 어디로 향할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특수1부는 지난 24일 국세청 자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삼한기업 세무조사 자료를 넘겨받았다. 국세청은 최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이 불거지자 지난해 9월 세무조사에 착수해 최근 마무리했다. 검찰이 넘겨받은 자료에는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사주 일가가 사용한 차명계좌 운용내역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사건 관련 기록과 국세청이 작성한 세무조사자료, 차명계좌 확인서 등을 분석하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검찰은 또 노조 측이 근거 자료로 제출한 이동식저장장치(USB)를 대검 디지털포렌식센터(DFC)로 넘겨 분석하고 있다. 해당 USB에는 삼환기업 경영관리팀 손모 차장이 허종 현 대표이사를 비롯해 30여 명의 임직원 명의로 개설된 회장 일가의 차명계좌 운용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검찰 대면조사는 고발인 측만 진행된 상태다. 최 회장 등 사건 주요 관계자를 소환하는 계획이나 일정은 잡히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환기업 노조는 지난해 11월 최 회장이 건설현장별로 1000만 원에서 2000만 원씩을 가로채는 수법으로 10년 간 수백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해 차명계좌 수십여 개를 관리해 왔다며 최 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일요서울]이 입수한 삼환기업 노조 고발장에 의하면 노조는 최 회장에 대해 6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고발장에 따르면 노조는 최 회장이 차명계좌를 통해 회사주식을 보유하고 비자금을 관리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최 회장이 회사임직원이나 친인척, 제3자의 명의로 차명계좌를 만들어 삼환기업 주식을 매입하거나 차명계좌 간 주식을 이동시키는 방식, 주식·선물매매 등의 방식을 통해 발생한 수백억 원에 이르는 차익을 보유했다”며 “이 같은 거래에 필요한 자금을 삼환기업으로부터 끌어다 쓰는 방식으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횡령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또 최 회장이 차명계좌를 통해 삼환기업의 주가의 종가를 관리하는 등 주가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노조는 “최 회장이 신민상호저축은행 유상증자와 관련해 총 180억 원에 달하는 회삿돈을 이사회의 결의도 거치지 않고 투입했다”며 배임의혹을 제기했다. 또 “최 회장이 2004년 8월경 아파트 현장 기계설비공사와 관련해 이미 선순위로 낙찰된 ‘성창기공’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계열사 진호실업(주)와 35억 원에 재계약을 체결하고 공사비 5억 원을 증액해줬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계열사 간 부당거래 의혹도 제기했다. 노조는 “삼환기업의 유동성위기가 심화되던 2012년 6월 경 삼환까뮤가 보유하고 있던 유동성자금을 최 회장 요구에 따라 삼환기업에 부당 대출했고 이 과정에서 이사회의 결의 등 정식적 절차조차 거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노조는 또 최 회장이 2009년 우성엠알오(주)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삼환기업을 포함한 2개의 계열사와 우성개발(주) 및 우성홀딩스 등의 시설관리용역업체 대행계약을 체결해 왔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실제 시설관리용역업체와의 계약관련 업무는 각 회사 총무부 등이 했음에도 우성엠알오(주)는 계약대행명목으로 수억 원을 취득했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노조는 “고(故) 최종환 명예회장이 2003년 경부터 영구 퇴직해 삼환기업에 단 한 차례도 출근한 적 없는데도 회사 ‘전자공시자료’에는 상근으로 표시하게 해 연간 수억 원의 연봉을 수령해 갔다”며 “최 회장 역시 삼한까뮤 주식회사 비상근 이사로서 회사에 거의 출근하지 않았음에도 상근이사인 것처럼 허위 공시해 2005년 1월 25일부터 2012년 6월 25일까지 월급총액 16억9213만400원을 임의로 수령해 소비했다”며 횡령의혹을 제기했다.
노조, USB 증거물로 제출
삼환기업 노조는 확보된 증거물도 내부문건으로 작성해 검찰에 제출했다. 노조에 따르면 노조는 횡령사건으로 기소되었다가 최근 집행유예로 풀려난 손모 전 경영지원실 차장의 USB를 증거물로 확보했다.
비자금 조성의혹은 최 회장의 ‘개인비서’ 역할을 했던 손 차장이 회삿돈 126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손 차장은 2003년부터 약 8년4개월간 업무상 보관하던 회사 소유 주식을 50회에 걸쳐 임의로 처분해 개인적 용도로 썼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횡령 사실을 감추기 위해 증권사 지점장 인감을 도용한 혐의도 받았는데 1심 재판부는 이들 두 혐의 모두 유죄로 인정해 손 차장에게 징역 8년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지난해 7월 관련 범행은 손 차장이 최 회장 일가의 비자금 관리업무를 수행하다 벌어진 일이며 회사에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 등을 들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노조에 따르면 해당 USB에는 ▲2002년부터 2010년까지 관리해온 차명계좌 내역 ▲최 회장 일가의 주식관리 파일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차명계좌를 통해 받은 배당 수익 ▲차명계좌의 이름과 계좌를 만든 지점 ▲퇴사한 중역들의 차명계좌를 타인 명의로 인수한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일부 관련자 소환조사까지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에 따르면 손 차장은 당시 재판에서 최 회장 일가의 투자자금 및 비자금 관리 업무를 수행했다고 진술했으며 여러 증권회사 계좌에 차명계좌를 개설해 관리한 점이 인정됐다. 노조는 “손 차장이 2012년 3월 28일 사건과 관련한 탄원서를 고등법원에 제출하자 삼환기업은 대표명의의 처벌불원 합의서를 제출해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은 손 차장이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또 의견서를 통해 검찰에 “삼환기업 부동산 및 공사 관련 보험을 기업이 직접 보험회사와 계약하지 않고 회장 개인이 만든 대리점을 통해 들게 함으로써 매년 수억 원의 리베이트를 받아 챙겼을 가능성이 높다”며 “손 차장의 USB를 통해 삼환기업 주식과 신민상호저축은행 주식을 사들인 차명계좌가 발견됐으므로 그 계좌들을 동결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비자금은 단 한 푼도 없어”
이에 대해 삼환기업 측 관계자는 “노조 측에서 제기한 의혹들은 부풀려진 것으로 검찰 수사과정에서 명명백백히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며 “최 회장 일가의 비자금 의혹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비자금은 단 한 푼도 조성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또 “지난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뒤 최근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아 법정 관리에서 벗어났는데 노조와의 갈등, 검찰수사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노조와의 대화창구도 항상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의혹과 관련한 자료를 검토 후 혐의가 발견되면 회사 관계자 등을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한편 워커힐호텔, 플라자호텔, 신라호텔 등을 건설한 중견 건설업체인 삼환기업은 2008년부터 이어진 분양경기 침체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지난해 7월 채권은행으로부터 ‘부실징후기업’인 C등급 판정을 받고 법정관리절차를 신청했다. 그 뒤 구조조정에 들어갔던 삼환기업은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파산4부(수석부장판사 이종석)로부터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아 법정관리 최단기 탈출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법정관리에서 벗어났다. 최 회장은 지난해 11월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회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며 “소유한 회사 주식을 모두 사회에 출연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