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의처증
20대 후반의 남성 김필연(가명)씨는 최근 가정법률상담소를 찾았다. 그의 부모님은 결혼한지 30년 됐고 슬하에 2남 4녀를 뒀다. 김씨의 형제들은 현재 모두 부모와 떨어져 생활하고 있다. 김씨 형제들에겐 아버지는 늘 공포의 대상이었다. 함께 살 때 아버지의 폭력은 하루가 멀다 할 정도였다. 어머니는 물론 자식들도 아버지한테 수시로 폭력을 당했다. 실제 김씨의 아버지에게 돌로 머리를 맞고 칼로 위협까지 당했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괴롭힘에 자살하려고 농약까지 마신 적이 있다.
심지어 요즘은 다른 여자와 이중살림을 하면서 의처증으로 어머니를 못살게 괴롭힌다. 최근엔 아버지가 어머니를 차에 태우고 나가 일주일 동안 끈으로 손을 묶은 채 보자기로 얼굴을 가리고 칼로 위협하면서 때렸다. 또한 멍투성이가 된 어머니에게 밭일을 시키기도 했다. 이같은 가정폭력에 시달린 김씨의 어머니는 다리를 못 쓰게 됐고 어깨뼈도 부러져 팔도 제대로 못 쓰는 상태다. 손가락도 성한 데가 한 군데도 없다. 결국 장애4급을 받았다. 이혼을 원하지만 아버지가 합의도 해주지 않는 상황이다.
옷 벗겨 냄새 맡고
김씨의 사례 외에도 가정폭력상담소를 찾는 이들의 이유는 다양하다. 50대 회사원 정희준(가명)씨는 의부증에 시달려 고통을 받고 있다. 정씨는 “부정한 행위를 한 적이 전혀 없는데도 아내는 단지 내 눈빛이 방탕해 보인다”며 “내 불륜을 기정 사실화한 후 무조건 사실대로 이야기하라며 발악한다”고 상담소를 찾아 하소연했다. 정씨는 “아내가 ‘내 옷에 구겨진 곳이 있으면 무슨 짓을 했기에 옷이 구겨졌냐’고 못살게 굴었고 속옷 검사는 필수였다”며 “때론 몸 냄새까지 맡아보고 ‘누구 냄새냐’며 폭력을 썼다”고 털어놨다. 심지어 퇴근 후 귀가시간이 조금만 늦어도 그의 부인은 “어떤 여자를 만나 무엇을 하고 왔냐”며 밤새 “괴롭히기까지 한다”는 게 정씨의 하소연이다. 이에 정씨는 수면부족으로 직장에서 조는 일도 많다. 또 부인이 직장에 수시로 전화를 해 직장생활도 어려워진 상황이다.
친정 부모 죽이겠다고 협박
40대 가정주부 김수정(가명)씨는 남편의 의처증에 시달리고 있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남편은 월급을 자신의 통장에 입금한 후 손도 못 대게 한다. 생활비 역시 주지 않는다. 김씨가 인출을 하면 견디기 힘든 폭언으로 괴롭혔다. 김씨는 7, 8년 전부터 회사에 다니면서 6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아 생활했다. 자녀 학원비만도 30만원이 넘게 들어갔기 때문에 부인 김씨는 카드빚을 지게 됐고 결국 사채에도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남편은 늘 경제적인 면에 쪼들렸던 부인 김씨를 항상 의심했다. 그는 김씨가 회사에 회식이 있거나 좀 늦게 퇴근하면 회사까지 쫓아와 확인하곤 했다. 욕설과 갖은 행패를 부려 정상적인 회사 생활이 어려웠다. 김씨를 때리면서 자기 손으로 유리를 깨 119에 신고한 적도 있다. 당시 아이들은 방바닥에 흥건한 피를 보고 놀라 어쩔 줄 몰라했다. 남편의 폭력에 견디지 못한 김씨가 집을 나와 친정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남편은 친정에 전화를 걸어 김씨의 부모까지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에 김씨의 친정은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상황이다.
아내에게 맞고 산다
모회사 영업소장 곽지훈(가명·40대)씨는 아내의 의부증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곽씨는 지난 1년간 영업소장직을 맡았다. 영업일을 하기에 통화량이 많았던 그는 사무실로 온 전화를 휴대폰으로 받을 수 있게 연결해 놓았다. 때문에 밤에도 전화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아내는 이를 보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후 아내는 곽씨가 쓰는 돈의 모든 출처를 물었고 아내는 “자기 모르게 다른 여자에게 돈을 빼돌린다”며 곽씨를 다그쳤다. 아내는 곽씨를 집에서 내쫓았고 그는 집을 나와 화물차에서 자며 생활했다. 이 무렵 아내는 곽씨를 두번이나 경찰에 신고했다. 곽씨는 “한번은 증거가 없어 풀려났고 또 한번은 아내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모아 ‘다른 여자의 것’이라며 우기는 바람에 상담 명령을 받았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곽씨는 또 최근 아내가 칼을 휘두르고 물었다는 증거로 팔을 걷어 보이며 “그 동안 맞고 살았다”고 주장했다.강남의 한 정신과에 접수된 상담 사례 중에는 고교 물리교사 박준호(가명·47)씨가 부인의 외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차를 집 주차장에 주차할 때 바퀴를 조금 틀어 놓았다가 귀가 후 차바퀴의 각도가 그대로인지를 확인하며 부인을 의심한 경우도 있었다. 또 한 여성(37)은 “남편의 정액(精液) 양이 이전보다 훨씬 적어졌다”며 그게 외도의 증거가 아닌지 의사에게 상담했다. 이런 증세에 대해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지만 환자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환자를 의사에게 데려가는 일부터가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김현진 kideye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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