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유수정 기자] 충격적인 실화 마이얼링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가 성공적인 초연을 마무리 지었다.
지난해 11월 화려한 개막을 알린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는 공연 첫 주부터 93% 이상의 객석 점유율을 기록하며 막강한 티켓파워를 과시했다. 이와 함께 크리스마스·연말 등에 연인과 함께 보고 싶은 공연으로 손꼽히며 그 인기에 힘을 실었다.
이는 ‘지킬 앤 하이드’와 ‘몬테크리스토’ 등을 통해 뛰어난 음악성을 인정받은 프랭크 와일드혼(Frank Wildhorn)이 작품에 참여했으며 ‘엘리자벳’, ‘모차르트’ 등을 성공으로 이끈 EMK뮤지컬컴퍼니가 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입증 가능했다.
여기에 안재욱, 옥주현, 임태경 등 뮤지컬 톱스타들이 함께했다는 점이 팬들의 기대감을 더욱 증폭시켰다는 평이다.
MBC ‘빛과 그림자’로 안방극장을 평정한 안재욱의 합류는 90년대 ‘별은 내 가슴에’의 애절한 눈빛 연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기대감을 심어줬다. 앞서 뮤지컬 ‘락 오브 에이지’, ‘잭더리퍼’ 등을 통해 뮤지컬 배우로 변신을 꾀한 바 있는 그는 20년에 가까운 연기 인생과 더불어 ‘친구’, ‘포에버’ 등으로 가창력까지 인정받았던 터라 뮤지컬 배우로서의 자질은 믿어 의심치 않을 부분이었다.
이런 그가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픈 사랑의 주인공 루돌프 이야기에 푹 빠졌다. 비운의 황태자로 완벽하게 빙의한 듯한 모습은 스스로 ‘안돌프(안재욱과 루돌프의 합성어)’를 자청한 듯 보였다. 오랜 연기 경력 덕에 그 어떤 배우보다 완벽한 표정 연기를 선보였으며 특유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마리 베체라는 물론 수많은 여성 관객들을 녹였다.
뮤지컬계의 황태자로 불리는 임태경이 진짜 황태자 역할을 맡은 것도 크게 한몫했다는 의견이다. KBS ‘불후의 명곡’을 통해 다양한 팬 층을 확보한 그는 뮤지컬에 무지하던 대중들에게 뮤지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기 때문.
묵직한 보이스와 진중한 말투를 자랑하는 임태경은 앞서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등을 통해 비운의 주인공으로 분했던 만큼 루돌프와 마리의 가슴 아픈 사랑을 누구보다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특히 회를 거듭할수록 더욱 애절하고 애틋한 루돌프를 만들어 냈다는 평이다.
뮤지컬 ‘엘리자벳’으로 여우주연상 수상의 영예를 얻었던 옥주현 역시 이번 캐스팅의 기대주였다. 티켓파워를 빌미 삼아 아이돌 가수들이 무분별하게 뮤지컬 시장에 진출하는 요즘과는 달리 옥주현이야말로 숱한 선입견 속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정상의 자리까지 오른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2005년 뮤지컬 ‘아이다’를 시작으로 ‘시카고’, ‘캣츠’, ‘브로드웨이 42번가’ 등 대작에 연달아 참여하며 아이돌 가수 출신이라는 편견에 맞서 싸워왔다. 숱한 노력으로 갈고 닦은 실력은 황태자의 아름다운 연인 마리 베체라를 통해 그 절정의 꽃을 피운 듯 보였다.
특히 전작인 ‘몬테크리스토’를 통해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과 인연이 있던 만큼 이번 작품에서도 그의 음악에 그녀만의 음색을 입혀 감동을 배가시켰다. 옥주현은 프랭크 와일드혼에게 ‘황태자 루돌프’의 영어버전을 부른 여배우 린다 에더와 비슷한 음색을 지녔다고 극찬 받은 바 있어 원작자들 역시 그녀의 캐스팅을 적극 추천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유럽 역사를 놀라게 한 실존 사건에 기반을 두고 탄생한 만큼 황태자와 마리 베체라의 비극적 스토리는 드라마틱한 음악과 전개를 통해 더욱 극적으로 풀어졌다.
이와 함께 19세기 후반 제국주의가 무너지고 산업화가 시작되던 무렵을 배경으로 두고 있는 만큼 화려함과 모던함의 조화를 적절히 꾀해 극의 분위기를 살렸다. 비엔나에서 직접 공수한 120여 점의 가구와 소품들은 간결하게 꾸며진 무대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이밖에도 실제 비엔나를 방문했던 제작진이 황실과 관련된 곳곳에서 다양한 영감을 얻어 특별한 무대 연출을 지시했던 만큼 화려하면서도 간결한 무대는 빛을 발했다.
극의 오프닝 부분인 ‘궁정극장’ 신에서는 클림트의 작품 비엔나 부르크극장의 계단실 천정화를 그대로 옮겨놔 보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루돌프와 마리 베체라가 처음 만났던 1888년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공연 모습을 담고 있어 이들의 비극적인 결말을 예시하는 듯한 복선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한국 정서에 맞춰 특별히 제작된 만큼 원작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비엔나 공연의 경우 자신들의 역사를 배경으로 두고 있는 만큼 정치·역사적 사실을 강조했고 헝가리 초연은 해설자를 앞세워 극을 이끌어왔다.
이번 공연의 경우 원작자인 프랭크 와일드혼과 오랜 시간 호흡을 맞췄던 로버트 요한슨이 연출을 맡아 기존 작품과 다른 한국적 색채를 첨가했다. 극적인 드라마 요소를 강조하기위해 황태자의 부인 스테파니와 그의 연인 마리 베체라가 서로의 입장을 표하는 듀엣곡을 추가한 것.
이는 자극적인 상황을 즐기고 막장 드라마에 길들여진 한국인들의 성향에 맞춰 한국 공연에서만 특별히 첨가된 장면이다. 두 여인간의 대결 구도를 통해 관객들은 훨씬 더 극에 빠져들고 공감하는 듯 보였다. 로버트 요한슨이 의도했던 바가 그대로 극에 투영된 셈. 앞서 그는 “황태자 루돌프는 역사적, 정치적 사실을 담고 있지만 우리와 먼 이야기가 아니다”라면서 “사랑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설명한 바 있다.
약 3개월간의 서울 공연은 끝이 났지만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는 전국 투어로 또 한번의 감동을 전할 예정이다. 전주를 시작으로 대구·광주·창원·부산·안산 등에서 루돌프와 마리의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가 꽃을 피운다.
유수정 기자 crystal0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