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민호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업실패와 그로인한 불화로 그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부모님은 이혼했다. 그 이후 민호의 방황은 시작되었다.민호는 등록금이나 학생회비 등을 내지 못해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고 ‘참을 수 없을만큼 모욕스러웠다’고 당시 느낌을 전했다.‘도시속 작은학교’에서 만난 민호는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학교에서는 자퇴를 강요하는 눈치였다”며 “수업도 따라가기 힘들었고 내가 생각하는 학교와 너무 달랐다”고 털어놨다.“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이 미칠 듯 답답했다. 또 사고만 치는 내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민호의 말이다. 그러나 현재의 민호는 하루 하루가 무척 즐겁다.기자가 방문했을 때 민호는 반 친구들과 현장학습을 마치고 막 들어오는 길이었다.
링귀고리에 이어폰을 꽂고 원색 티셔츠에 힙합바지를 입은 민호는 학생이라기보다는 유명가수의 ‘백댄서’처럼 보였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그 누구도 민호의 옷차림이나 머리 스타일에 대해 문제삼지 않는다.그는 들어오자마자 기자와 대화중이던 최경미 선생을 붙들고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줄줄이 늘어놓기 시작했다.이는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선생을 둘러싸고 저마다 한마디씩 해대자 교실은 이내 겉잡을 수 없이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변했다. 이곳에서 이러한 학생들의 ‘소란’은 금기가 아닌 선생과의 자연스러운 커뮤니케이션이다. 대안학교에는 자퇴생이나 제적생들이 상당수 있지만 아무도 그들을 ‘문제아’로 낙인찍지 않는다.
일반 학교에서는 교사들을 거부하고, 교사들에게 거부당했던 학생들은 연신 ‘선생님’을 부르며 졸졸 따라다녔다.무리중에 있는 듯 없는 듯 끼여있던 준수(가명·15)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무척 얌전한 아이였다.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아이들 속에서 그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저번 학교에서 준수는 매사에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탓에 친구들과의 원만한 관계가 불가능했다. 결국 학교생활을 견디지 못한 준수는 밀려나다시피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던 것.지난 학교생활에 대해 그는“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곳에선 일명 ‘왕따’란 없다. 오히려 아이들은 서로 준수를 챙기느라 여념없었다. 활달한 민호와 내성적인 준수가 친구가 되는 일도 일반학교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겠지만 이곳에서는 모두들 마치 친 형제자매처럼 어울리고 있었다.오전 10시반경부터 시작되는 수업은 각 1시간 반동안 진행되는데 점심시간인 12시가 되면 겨우 1교시가 끝난다.
하루에 진행되는 정규 수업은 3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대신 특별활동이나 현장학습 등의 비중이 높다.점심은 ‘서태지방’으로 불리는 조리실에서 함께 만들어 먹는다. 3시 남짓해서 끝나는 정규수업 후에는 검정고시를 위한 일대일 맞춤학습이나 현장학습이 이루어진다. 개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독서실은 불우한 어린시절을 극복하고 최고의 토크쇼 진행자의 위치에 오른 오프라 윈프리의 이름을 따 ‘오프라방’으로 불린다.책상에는 검정고시 교재가 빼곡히 꽂혀 있었다. “아이들의 수준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일대일 학습을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 학교 관계자의 말이다.그러나 누구도 자신의 실력을 부끄러워하거나 성적으로 인해 조급해하지 않는다. 이곳에서의 공부는 강제가 아닌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일문일답> ‘도시속 작은학교’ 최경미 선생“상처있는 아이들끼리 식구처럼 생활”몇가지 규칙 조건으로 흡연실도 갖춰올해로 설립 5년째를 맞고 있는 용산의 ‘도시속 작은학교’에서 최경미 선생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 이 학교의 취지는 무엇인가.▲이땅의 무수한 탈학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그들에게 적합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 어떤 시스템으로 운영되나.▲2년 4학기제로서 정규수업 후 1:1 맞춤학습식으로 진행된다. 아이들의 수준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 어떤 아이들이 주로 오는가.▲2년전만해도 일명 문제아로 불리는 비행청소년이 많았으나 요즘에는 환경적 요인에 의해 일반 학교를 다니기 어려운 15~19살의 아이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일반 학교 수업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 학교에서 이탈해 공백기간이 길었던 아이들, 학교에서 자퇴를 강요해서 쫓겨나다시피한 아이들도 상당수다.
- 아이들끼리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는 없나.▲모두 한 식구처럼 지낸다. 첫 만남에서 낯설긴해도 점심먹고나면 어느새 다들 친구가 되어있다.
- 흡연실이 있는 것이 독특한데.▲강제로 금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단 흡연에 대한 몇가지 규칙을 정해놨다. 예를들면 4명이상 우루루 몰려 피우지 않기, 바닥에 침뱉지 않기, 정기적으로 재떨이 청소하기 등이다.
- 대학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은 얼마나 되나.▲반반이다. 대학 진학을 원하는 애들도 있는 반면 대학이 자신과는 너무 멀다고 느끼는 애들도 있다.
이수향 thelotus@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