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현대중, 활발한 상호거래…일감몰아주기 과세 피해가
악재 이어지는 현대차그룹…철탑농성 100일·소비자 집단소송
[일요서울|강길홍 기자] 현대자동차(회장 정몽구)가 잇단 구설수로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 상징인 송전철탑 고공농성이 100일을 넘어가고 있지만 노조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면서 여전히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던 현대글로비스의 일감몰아주기는 형제그룹으로 이어지면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가 내부거래 비중을 줄이기 위해 현대중공업그룹의 일감을 따낸 것인데 현대차와 현대중공업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달라진 게 없다는 평가다. 이와 함께 현대차 소비자들이 현대차의 광고가 연비를 과장해 내보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집단 소송에 돌입한 상황이다. 새해 초부터 험난한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현대차의 상황을 살펴봤다.
정의선 기아차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글로비스는 현대·기아차의 물류를 등에 업고 급성장했다.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제철·현대하이스코 등의 내부거래 비중은 2001년 93.58%, 2003년 86.71%, 2005년 85.34%, 2007년 86.12%, 2010년 89.33%에 달했다. 현대글로비스는 지난해에도 3분기까지 분기당 2300억~2900억 원에 이르는 물류계약을 현대기아차와 체결했다.
정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에 출자한 금액은 2001년과 2002년 각각 15억 원씩 총 30억 원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2003년 60억 원의 현금배당을 통해 모두 회수했다. 이후 2004년에 일부 지분을 매각해 850억 원의 수입을 올렸고, 2005년 현대글로비스가 주식시장에 상장되면서 현재 지분평가액이 2조5000억 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현대글로비스는 재벌그룹의 대표적인 일감몰아주기 사례로 꼽혔다.
그러나 지난해 정부가 계열사 일감몰아주기에 대해 과세를 결정하면서 내부거래 비중을 줄여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일감몰아주기 과세제도 적용대상은 특수관계법인으로부터 정상거래비율(30%)을 초과한 일감을 받은 수혜법인 지배주주와 그 친족(배우자,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중 3% 이상을 출자한 대주주다. 수혜법인에 일감을 몰아준 특수관계법인은 수혜법인의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인에 해당되는 법인으로 비영리법인도 포함된다.
과세를 피하기 위해서 내부거래 비중을 줄여야 했던 현대글로비스는 원유 수송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결국은 형제그룹끼리의 일감몰아주기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중공업(최대주주 정몽준)의 자회사인 현대오일뱅크와 1조1110억 원 규모의 원유 장기운송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이달 초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동생으로 정 부회장의 숙부다. 현대오일뱅크는 그동안 현대그룹(회장 현정은)의 계열사인 현대상선에 원유 수송을 맡겨왔지만 두 그룹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현대글로비스가 기회를 얻게 됐다. 이번 계약 결과에 따라 현대글로비스는 2014년 7월 1일부터 2024년 6월 30일까지 10년간 현대오일뱅크의 원유 수송을 담당하게 된다.
이 같은 계약과 함께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오일뱅크의 원유 수송에 투입할 초대형유조선 4척의 건조비용을 현대중공업계열사인 ‘하이투자증권'이 선박펀드(하이골드오션 11호)를 통해 마련하기로 했다. 선박건조는 현대중공업의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에 발주했다. 이에 앞서 현대글로비스는 발전사 유연탄 수송 입찰에 투입할 9척의 벌크선 발주도 현대중공업에 맡긴 바 있다. 형제그룹끼리 일감을 주고받는 모습이지만 두 회사는 법적으로 계열사 관계는 아니다.
결국 현대글로비스는 형제그룹과의 거래를 통해 계열사 간 내부거래 비중 축소라는 숙제를 해결하고 과세를 피할 수 있게 됐다. 이 때문에 물류업계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모기업과의 거래를 통해 급성장한 재벌기업의 물류회사 때문에 숨죽이고 있던 물류업계는 정부의 과세 정책에 기대를 걸었으나 결국은 형제그룹끼리 또다시 나눠먹는 결과를 낳았다고 푸념하고 있다.
연비 과장 집단소송 휘말려
형제그룹끼리의 일감몰아주기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내부거래 비중 축소라는 숙제를 해결한 현대차그룹에게 국내 소비자의 불만은 잠재워야 하는 새로운 숙제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23일 이모씨(60) 등 자가용 소유자 48명은 서울중앙지법에 현대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씨 등은 부당한 연비 표시에 따른 재산 손해와 정신적 손해 50만 원씩 1인당 100만 원을 청구했다.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예율 대표 김웅 변호사는 “현대차는 신문광고에서 ‘휘발유 1ℓ로 ○○㎞ 주행’이라고만 할 뿐, 혼잡한 시내 기준인지 고속도로 기준인지 등을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이는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부당한 표시·광고행위의 유형 및 기준 지정고시’에서 “‘휘발유 1ℓ로 ○○㎞ 주행’이라고만 하고 그것이 혼잡한 시내에서의 기준인지 또는 고속도로에서의 기준인지를 분명히 밝히지 않는 경우”를 부당광고의 예로 들고 있다.
한편, 지난해 10월 17일부터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 노동자인 최병승씨(37)가 현대차 울산3공장 인근 송전탑에서 진행한 고공농성이 지난 24일로 100일이 됐지만 여전히 사태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최씨는 불법파견 비정규직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일부만 신규 채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울산지법은 송전철탑 농성자 강제퇴거와 천막농성장 강제 집행을 실시하려다 비정규직 노조 측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법원이 강제집행을 계속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철탑농성을 둘러싼 갈등은 이어질 전망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서울 대한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04년 노동부가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지 꼬박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대법원에서 두 번씩이나 불법파견 판결을 내렸지만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며 “현대차는 100일간 철탑에 매달린 비정규직의 절규를 들어야 한다”고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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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홍 기자 sliz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