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베일에 묻혔던 빨치산 호남지구 총사령관 남태준 생포 주인공 찾았다
50년간 베일에 묻혔던 빨치산 호남지구 총사령관 남태준 생포 주인공 찾았다
  • 이석 
  • 입력 2005-04-09 09:00
  • 승인 2005.04.0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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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인근에서 악명을 떨치던 호남지구 총사령관인 남태준을 체포하기위해 지리산에 투입된 5사단 박정용 상사.실제 본지가 입수한 육군본부의 상훈대장에는 박 상사의 훈장 수여 사실이 누락돼 있다. 당시 작성된 육본의 자료에 따르면 50~54년까지 훈장을 받은 사람은 총 16명. 그러나 박 상사의 이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육본측은 현재 관련 자료를 모두 확인해 봤지만, 훈장 수여 사실은 확인이 안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육본의 한 고위 관계자는 “상훈명령지와 상훈대장을 확인해 봤지만 박씨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박씨가 소속돼 있는 5사단의 역사기록까지 뒤져봤지만 마찬가지였다”고 털어놓았다.

이 관계자는 심지어 박 상사가 남태준 총사령관을 생포한 사실조차도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박씨의 소속 부대인 5사단이 남태준 총사령관의 토벌에 가담한 것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확인이 됐다. 그러나 생포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면서 “현재로서는 박씨가 남태준을 생포한 사실 자체도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가족들의 입장은 다르다. 부주의로 분실하기는 했지만, 두 눈으로 훈장을 확인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유족들은 그 근거로 지난 67년 9월9일자로 발행된 전우신문(현 국방일보 전신) 사본을 제시했다. 박 상사의 딸인 박인숙(47)씨는 “당시 전우신문에서 아버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면서 “이 신문에 남태준을 생포한 뒤, 훈장을 받은 내용이 상세하게 게재돼 있다”고 말했다. 실제 ‘우리부대 주임상사’ 코너에 실린 당시 인터뷰 기사에는 남태준 생포 당시 상황이 자세히 게재돼 있다. 신문은 “그는 지리산 지구, 빨치산 작전에 참가해 호남지구 빨치산 총사령관인 남태준을 생포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바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신문은 이어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일 때 그의 가슴은 화랑훈장으로 더욱 빛났다”면서 화랑무공훈장 수여 사실도 확인해 주었다. 육본측도 이 부분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관련 자료를 다 뒤져보았지만 박씨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육본 고위 관계자는 “남태준이 생포된 50여일 후인 54년 4월25일 전남 광양의 진상중학교 운동장에서는 군 고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훈장 수여식을 가졌다”면서 “당시 기록에도 박씨의 이름은 누락돼 있다”고 전했다. 이 경우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다. 심증만 가지고는 처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게 육본측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그는 “국방부와 국가보훈처에 관련 사항을 논의했지만 불가 입장만을 전해 들었다”면서 “상훈대장 없이는 보상은 물론이고 명예회복도 불가능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박 상사의 유족들은 54년 당시 정부가 훈장 수여 사실을 일부러 누락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북측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남태준의 생포 사실을 숨겼다는 것이다. 유족들에 따르면 당시 상황은 휴전 협정이 체결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특히 남태준 총사령관은 당시 호남지구 빨치산 부대의 정신적 지주. 이런 거물이 생포됐다는 소식은 북측에 달갑게 들릴 리 만무하다. 적지 않은 공적에도 불구하고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게 유족들의 설명이다. 실제 박 상사의 자력표(일종의 인사기록카드)에는 현재 두개의 군번이 존재한다. 남태준을 생포할 당시 군번인 2602****번과 8000****번. 박씨는 이 군번이 당시 남태준 총사령관을 생포한 아버지를 숨기기 위한 증거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육본측은 “말도 안된다”며 관련 사실을 일축했다. 육본 관계자는 “군에서는 그동안 6·25 전쟁에 참여한 노병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당시 상황을 은폐할 이유가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박씨의 기사가 게재된 전우신문에 대한 다각적인 인증 절차를 현재 진행중”이라면서 “신문 내용이 검증된 사실일 경우 행자부와 대통령 결재를 거쳐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 박 상사 딸 박인숙씨 “아버지는 불행한 역사의 희생양”
박 상사 유족에 따르면 박 상사는 평소 인자한 아버지였지만, 전투에서만큼은 호랑이였다. 유족들이 털어놓는 일화 한토막. 6·25 전쟁이 발발한 지난 50년 박 상사는 강원도 강구지구 전투에 참가했다가 방망이 수류탄에 맞고 부상을 당했다. 당시 군에서는 제대를 권유했지만, 박 상사는 이를 거부했다. 이후 배치된 곳이 남태준을 생포한 5사단이다. 박 상사의 딸 박인숙씨는 “지난 67년 9월9일자로 발행된 전우신문에서 아버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이 신문에 남태준을 생포한 사실과 훈장을 받은 내용이 상세하게 게재돼 있다”고 설명했다.박씨가 아버지의 훈장 수여 사실을 밝히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5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같은 사실을 알리는 것은 결코 돈을 바라서가 아니다. 돈은 살만큼은 있다”면서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 - 육군본부 고위 관계자 A씨 “심증은 가지만 물증 없으면 곤란”
육본측은 현재 심증이 있더라도 물증이 없으면 곤란하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육본 관계자는 “상훈명령지와 상훈대장 뿐 아니라 박씨가 소속된 5사단의 역사기록까지 찾아봤지만 박씨의 이름이 없다”면서 “현재로서는 관련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군에서는 그동안 6·25 전쟁에 참여한 노병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박 상사의 경우 근거가 확실하다면 당연히 훈장을 수여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을 확인할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고 한다. 그는 “남태준이 생포된 50여일 후인 54년 4월25일 전남 광양의 진상중학교 운동장에서는 군 고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훈장 수여식을 가졌다”면서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각종 기록을 모두 확인해 봤지만 박씨의 이름은 누락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석  suk@trade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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