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야인’ 알고보니 ‘사기꾼’이었다
자칭 ‘야인’ 알고보니 ‘사기꾼’이었다
  • 김현진 
  • 입력 2004-12-13 09:00
  • 승인 2004.12.1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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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두한의 후계자임을 자처해 온 전국 조직 폭력계의 원로 조일환(66·폭력등 9범)씨가 폭력을 교사하고 갈취를 일삼다 구속됐다.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2일 부동산 개발과 자서전 발간 등의 명목으로 42회에 걸쳐 40억 원을 갈취한 혐의로 충남 천안 송악파 고문인 조씨를 전격 구속했다. 조씨의 폭력·사기 행각 전모를 취재했다.경찰 조사에 따르면 조씨는 2000년 10월 하순경 개발 중이던 ‘천수만 회센터’ 분양업자인 피해자 방모(46)씨에게 무조건 분양하고 돈은 먼저 받아서 챙기라고 지시했다. 방씨가 이를 이행하지 않자 조씨는 조직원 6명에게 집단 폭행을 지시했고, 조씨의 사주를 받은 조직원들은 야구 방망이와 쇠 파이프 등으로 승용차를 부숴 약 800만원 상당의 재물을 파손했다.

조씨는 또 내연녀 이모(58)씨의 찜질방 사업과 관련해 최모(58)씨에게 약속어음(5,000만원)을 대신 갚으라고 협박, 최씨가 갚지 않자 조직원 4명에게 폭행을 지시했다. 이로 인해 최씨는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었다.‘천수만 관광타운’과 관련해서도 조씨는 피해자 박모(44)씨에게 “공사가 30%에 이르면 일단 이에 상응하는 부동산을 담보로 설정해 주겠다”고 속였다. 그러나 피해자가 15억원 상당의 공사를 진행했는데도 금액이 지급되지 않아 피해자의 회사는 부도가 나고 말았다.또한 피해자 최모(53)씨에게는 “내가 여기에 관광타운뿐 만 아니라, 김두한 박물관도 지을 생각이니 해변가 계단 공사를 시작해라. 나는 현금뿐 아니라 천안과 아산에 건물도 여러 채 소유하고 있다. 일단 공사가 진행되면 대금은 바로 지급하겠다”고 속여 2,000만원 상당의 공사대금도 편취했다.

조씨는 또 평소 돈은 많으나 무지하다고 여겼던 피해자 노모(45)씨에게 접근해 성관계를 맺고 이를 미끼로 10회에 걸쳐 10억여원 상당을 갈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1년 4월에는 출판사 대표인 피해자 고모(50)씨에게 접근 “나의 주먹세계를 그린 자서전(22권) 1만질을 출간해 달라. 제작비를 어음으로 주겠다. 어음은 결제 날에 틀림없이 될 것이다”라고 속였다. 이후 타인 명의의 백지 약속어음 4매에 3억 8,000만원을 기재해 제시하고 이를 부도처리했다. 대필 작가에게도 수천만원의 돈을 갈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2001년 10월에는 피해자 정모(50)씨에게 “나는 김두한의 후계자이고 이 시대의 진정한 협객이다. 내가 현재 전국 조직폭력배들을 총괄 장악하고 있으니 나의 일대기를 영화화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 적어도 투자한 금액의 50~100배 이상의 돈을 벌게 해 주겠다. 인기 영화 ‘친구’나 ‘조폭 마누라’를 봐라. 그러니 투자해서 나에 대한 시나리오를 쓰게 하면 그 다음 비용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말해 수 천만원 상당의 금액을 끌어들였다.

이 밖에도 조씨는 폭력배 대부임을 자처하며 음식점 등지에서 끊임없는 행패와 갈취를 일삼았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조씨 조직의 욕설과 폭력이 두려워 일방적으로 당하면서도 진술을 거부해왔던 것으로 경찰은 전했다.그러던 중 피의자 조씨가 ‘부천식구파’와 결탁해 부천 모 아파트 재건축 공사 이권 개입 및 전국 조직폭력배의 연계를 시도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은 지난 1월 수사전담반을 편성,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부천식구파’일부가 검거되면서 조직이 와해됐고 부천 사무실이 폐쇄돼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조씨 일당도 천안으로 내려갔고 경찰은 끈질기게 이들을 추적했다. 경찰은 보복의 두려움으로 진술을 거부하는 피해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10개월간의 내사를 벌인 결과 42건의 범죄 사실을 밝혀냈다. 결국 지난 11월29일 천안 모 빌라에서 은닉중이던 국내 폭력계 ‘대부’ 조씨는 전격 검거됐고 사건은 마무리됐다.


조일환은 누구인가? 협객 행세하며 조폭 대부 역할

김두한 오른팔’조일환(66)씨는 38년 전북 부안 출생으로 이후 천안에서 생활했다. 6·25 전쟁 후 경부선 기차에서 활동했던 소매치기와 합세해 강·절도 행각을 일삼으며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천안지역 대표적인 폭력배(일명 ‘천안의 곰’)로 활동하다 국회의원에 출마한 김두한의 선거를 도우면서 김두한의 후계자임을 자처하고 ‘협객’ 행세를 했다.지난 88년 9월 충남 송악면에서 두목 장성길(47·폭력등 14범)씨 등 30명을 규합해 ‘송악파’를 결성했고 배후세력(고문)으로 활동했다. 또한 충청지역 폭력배 원로 모임인 ‘충우회’를 결성해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95년에는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의 옥중 결혼을 주선하는 등 조폭 대부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2001년 8월 서대문구 독립문 앞에서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과 고이즈미 총리 신사참배에 항의한다는 명목으로 ‘송악파’조직원 등 26명을 동원해 13명의 손가락을 절단하게 해 더욱 악명이 높아졌다.당시 손가락을 잘랐던 조직원 윤모(37)씨 등 4명은 자신들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그런 행위를 한 것이 아니고, 조일환에게 속아서 결국 책장사(조일환의 자서전)에만 도움을 준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알려졌다.

조일환 자서전 보니 … 자기 폭력배 생활 잔뜩 미화

2001년 조일환은 ‘불의 아들’, ‘후계자’ 등 자서전을 출간했다. 자서전에는 5·16 사건 이후 검거돼 ‘국토 건설단’에 투입됐을 당시 한라산에서의 생활경험과 ‘삼청교육대’ 훈련 등 자신의 폭력배 생활을 잔뜩 미화시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2002년 7월. 김두한 일대기를 그린 SBS 드라마 ‘야인시대’가 흥행하자, 부천 촬영장에 원로 폭력배 김동희(지난 9월 사망)씨등과 드나들며 자신의 위상을 알리려 했다. 조씨는 야인 시대 후반부에 김두한의 후계자로 그려지기도 해 더욱 기세 등등이었다. 조씨는 또 ‘부천식구파’ 두목 김모(48·2004년 10월 검거)씨와 교류하며 고문으로 추대된바 있고 충남, 경기지역 조직폭력배들과 연계를 기도했었다. 2004년 3월에는 충청지역 원로 폭력배 모임인 ‘충우회’ 회원 김모(54)씨의 재혼식장에 참석해 전국 폭력배 수백명이 모인 자리에서 주례를 맡는 등 위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김현진  kideye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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