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②]한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의 ‘창업스토리’
[포스코 ②]한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의 ‘창업스토리’
  • 박수진 기자
  • 입력 2013-01-22 10:46
  • 승인 2013.01.22 10:46
  • 호수 977
  • 4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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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한 배에 탄 공동운명체”

한국경제가 짧은 시간 안에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과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들 기업가들은 독특한 경영이론과 기법들을 창안했으며 한국의 기업풍토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이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은 인재제일주의를, 현대의 정주영은 생산의 혁신을, LG의 구인회는 인화모델을 각각 창안해 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들 1세대 창업자들의 도전과 혁신적인 창업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일요서울]은 한국 경제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기업들의 창업스토리를 출판물 또는 기존 자료를 통해 다시금 재구성해 본다. 그 여섯 번째 창업스토리의 주인공은 황량한 모래벌판 위에서 세계 1위로 우뚝 선 종합제철소 ‘포스코’다.

“종합제철 건설추진위원장으로 임명됐으니 어서 여기에 서명하시오, 박 사장.”

박태준은 계약서를 한 번 훑어본 뒤에 부총리를 쳐다보았다.

“죄송합니다. 서명하기가 곤란합니다. 저는 아직 정식발령을 받지도 않은데다 법률전문가와 합의각서를 검토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명할 수 없습니다.”

부총리는 예상치 못한 사태에 어안이 벙벙했다. 당황한 그는 얼굴이 벌게지면서 펜을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박태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똑바로 서서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저는 이 일에 목숨을 걸겠다고 맹세했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원칙을 지키기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정식 임명되고 계약서를 철저하게 검토한 다음 서명하겠습니다.”

“박 사장, 기공식이 3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기공식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시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건설추진위원장의 자격으로 여기에 서명하시고 합의각서는 기공식이 끝난 다음 천천히 검토하시는 것이 어떻소?”

화가 난 부총리가 그에게 서명하라고 재촉했다.

“아닙니다. 제철소 건설은 온 국민이 염원해 왔던 숙원 사업입니다. 일은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위원장이라는 자리는 내용도 보지 않고 서명하고 도장이나 찍는 자리가 아닙니다. 이 일은 매우 중요하고, 저는 제철소 건설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습니다. 합의각서를 세밀히 검토한 뒤에 결정하겠습니다.”

박태준의 태도는 완강했다. 장기영 부총리는 그를 내보내자마자 즉시 박 대통령에게 달려갔다.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박 대통령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태준은 장기간의 여행으로 피곤했지만 기본계약서 합의각서 사본을 들고 미국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 김흥한 변호사를 찾아갔다. 김 변호사는 박태준과 함께 합의각서의 모든 조항들을 일일이 살펴본 다음 법률적 검토 의견을 제시했다.

“박 사장님, KISA와의 합의각서에는 몇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건설자금에 관한 조항입니다. 합의각서에는 8개 회사가 협력한다고만 돼 있지, 각 회사가 언제 얼마만큼의 자금을 투자하고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박태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정부는 이런 문제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어떻게 합의각서에 서명했다는 말이오?”

“아마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협상 결과였을 것입니다.”

“우리 정부로서도 상대방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서면보장이 필요할 텐데. 내가 보기엔 이것은 계약서라고 하기가 어려운 것 같소.”

“박 사장님의 생각대로 국제금융기관들이 이 프로젝트에 책임지고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계약서란 쌍방간에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기술한 것이라고 나는 알고 있소. 그런데 이 각서는 아무리 보아도 재원 조달과 관련된 KISA의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은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박 사장님. 그런 점에서 이 각서는 KISA의 회원사들이 계약위반에 걸리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허점이 많습니다.”

박태준은 김 변호사의 사무실을 나오면서 매우 답답하고 우울했다. 이렇게 작성된 합의 각서는 그의 원칙상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 장기영 부총리가 그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박 사장, 내일이 가공식이오. 종합제철소 건설추진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해 주시오.”

박태준은 입장이 난처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아직 합의각서에 서명하지도 않았고 또한 정식으로 임명받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가공식에 참석하지 않겠습니다.”

박태준은 그의 심기를 또다시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화선 저쪽에 있는 상대방의 침묵이 무겁게 느껴졌다. 박태준은 온 국민의 열망이 담긴 종합제철소가 실질적인 보장도 하나 없이 기공식만 성대하게 치르는 것은 명백히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박 사장, 이러지 마시오. 대통령께서 기대하고 계시는데 실망시켜서는 안 됩니다.”

부총리는 짤막하게 말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그날 오후 박태준은 청와대로 불려갔다. 집무실에 들어가자 화가 난 대통령은 그에게 맞은편 의자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무슨 일이야?”

박 대통령이 그를 보자마자 나무랐다.

“정부가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라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왜 반기를 드는 건가?”

박 대통령은 격한 감정을 애써 누르면서 그의 마음을 바꿔보려고 했다.

“임자, 너무 까다롭게 굴지 마. 그렇게 해서 적을 많이 만들면 맡은 일을 제대로 끝낼 수 없잖아.”

박태준은 대통령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각하 말씀대로 무조건 포항으로 내려가 기공식에 참석하는 것은 원활하게 지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인심도 잃지 않고 뒤에서 손가락질도 당하지 않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각하께서는 저를 믿고 이 일을 맡기실 때 바라던 바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박 대통령은 박태준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 어디 한번 임자 생각을 설명해 보게.”

“저는 합의각서의 문제점을 끄집어내 남을 헐뜯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더구나 남이 해놓은 일을 깎아내리거나 공연히 트집을 잡으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첫 출발부터 이렇게 일이 허술하게 진행돼서야 어떻게 제철소를 제대로 지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합의각서의 허점들을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그가 제기한 문제점들을 주의 깊게 듣더니 믿기 어렵다는 듯이 말했다.

“계약서를 내가 한번 훑어볼 테니 놓고 가게나.”

박 대통령은 계약서를 받아들고 박태준을 내보냈다. 청와대를 나온 그는 마음이 매우 무겁고 심란했다.

10월 3일 포항에서는 기공식이 성대하게 열리고 있었다. 내외귀빈들로 가득한 식장에는 경제기획원장을 비롯해 건설부장관, 상공부장관, 재무부장관 등의 정부각료가 대거 참석했다.

한편에서는 코퍼스의 샌드빅 부사장을 비롯한 KISA의 대표단, 전력회사, 건설회사, 무역회사 등의 임직원들도 참석해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경남도지사가 귀빈들을 소개했다. 그러나 정작 참석해야 할 박태준 건설추진위원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장기영 부총리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감격스러운 듯이 치사를 하기 시작했다.

“한반도에 하늘과 땅이 열린 지 4300년 만에 우리는 마침내 선진국들의 도움을 받아 종합제철소를 건설하게 됐습니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패가 이 제철소 건설에 달려 있는 만큼 강철같이 굳센 책임감과 철석같은 단결로 우리의 과업을 성취해 나갑시다.”

포항 기공식장으로 가는 도중에 장기영 부총리는 자신의 해임 소식을 들었다. 후임으로 임명된 박충훈 상공부장관이 앞으로 종합제철소에 관한 전반적인 일을 주도하게 됐다. 처음부터 KISA와 기본계약 협상을 벌여온 경제기획원은 종합제철소 관련 업무를 대한중석에 이관하는 한편 최종 서명단계에서는 경제기획원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이 시점부터 박태준은 종합제철소 프로젝트를 실질적으로 관리 운영하는 책임자가 된 것이다.

장기영 부총리는 박태준이 너무 고지식하다고 생각했겠지만, 합의각서에 서명하지 않은 것의 뜻은 보다 깊은 데 있었다. 박태준은 자신의 원칙인 철저함과 완벽함을 계속 지켜왔던 것이며, 대통령이 자신에게 맡긴 임무는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소신을 지킨 것이었다. 그는 남이 주는 정보나 의견에 따라 결재를 하고, 자리나 지키는 명색뿐인 위원장 역할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

따라서 박태준은 합의각서에 쓰인 대로 기본계약을 체결하지 말고 우리의 조건을 강력하게 밀어붙여서 이를 관철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사 설립형태 ‘고심’

박태준은 종합제철의 설립 형태를 두고 신설회사를 상법상의 주식회사로 할 것인지 아니면 특별법에 의한 국영기업체로 할 것인지 고심했다. 왜냐하면 회사의 형태가 경영통제, 의사결정, 정부간섭, 효율성, 동기부여, 성장정책, 세금혜택, 자금조달, 배당정책 등의 관리운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회사 설립 시 형태를 잘못 선택하면 문제점이 끝없이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국영기업체의 형태는 국회로부터 감사와 통제를 받기 때문에 관리운영이 관료적이고 복잡한 반면 정부로부터 재정지원과 조세감면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재정적인 혜택을 받을 수는 있지만 경영 효율성과 국제경쟁력 측면에서는 불리한 것이다.

민간기업의 형태는 막대한 자금을 장기간에 걸쳐 조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경영 효율성 측면에서는 커다란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국제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경영을 할 수 있는 민간기업의 형태가 유리하다. 경쟁력이 높은 세계적인 철강업체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장상황과 경쟁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민간기업의 형태가 바람직하다. 즉 신설회사를 민간기업의 형태로 설립하면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의사결정 체제를 갖출 수 있어 경영에 만전을 기할 수 있는 것이다.

박태준은 대한중석을 경영하는 과정에서 관료주의와 정부 간섭으로 인해 국영기업체가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에 신설회사는 민간이업의 유연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미 국영기업체가 정치적인 영향과 연줄뿐만 아니라 힘 있는 정부 관료들로부터 수많은 간섭을 받는다는 것을 직접 체험했었다.

국제금융기관 또한 같은 이유로 국영기업체 형태를 불신하고 있었다. 이들은 국영기업체가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지, 그리고 수익을 낼 수 있을지 의심했다. 원리금 상환 여부와 관료주의 폐해에 대해서도 염려하고 있었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현 정부가 쿠데타를 통해서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생기는 정치적 위험에도 우려를 표명하고 있었다.

두 가지의 설립 형태를 놓고 장단점을 잘 비교해 본 결과 박태준은 이들의 장점만을 결합한 제3의 회사 형태를 생각해 내고 박대통령의 재가를 받기로 했다. 새로 설립되는 종합제철회사는 상법상 민간기업의 형태로 설립하되 재원 마련을 위해 정부가 대부분의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하면 회사의 일상적인 관리에 대해 정부의 직접적인 간섭과 통제를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료주의가 만연하리라는 인상도 지울 수 있었다.

박태준이 제시한 회사 설립 방안은 매우 생소했기 때문에 정부 관리들이 즉각 반대를 하고 나섰다.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민간기업을 설립하는 데 정부 돈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박태준은 대통령에게 종합제철소 건설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영의 자율성과 조직의 기동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대통령은 박태준의 주장을 지지했고, 신설회사는 상법상 주식회사 형태로 설립돼 완전한 자율권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신설회사의 이름은 ‘고려종합제철’, ‘한국종합제철’, ‘포항종합제철’ 등 세 개 안 가운데 공장 소재지의 지명을 따라 박 대통령이 ‘포항종합제철’로 정했다.

포항종합제철 창립

한국 정부는 1968년 3월 6일,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설립을 위한 발기인대회를 개최하고 회사 정관안을 확정했다. 3주일이 지난 4월 1일에 역사적인 창립식을 거행했다. 아침 9시 30분 서울 유네스코회관 3층에 자리 잡은 포항종합제철 본사 사무실에서는 박충훈 부총리가 내외귀빈을 영접하고, 박태준이 손수 가려 뽑은 38명의 창설요원들이 참석한 채 창립식이 거행됐다. 이날 취임사를 통해 박태준은 귀빈들 앞에서 약속했다.

▲[1기 착공] 만성적인 빈곤추방과 자립경제 달성이라는 국민적 염원을 안고 치른 포항 1기 설비 종합착공식에 박정희 대통령과 김학렬 부총리, 박태준 사장이 나란히 착공 버튼을 누르고 있다(1970.4.1).

“우리는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 최소의 경비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제철소를 건설할 것입니다.”

그날 오후 늦게 박태준은 첫 번째 포항제철 직원회의를 개최했다. 한국에서 최고의 인재들만을 모았다고 확신한 그는 제조, 판매, 회계 및 재무 등의 분야에서 뛰어난 기량을 지닌 38명의 창설요원들을 선발했다. 그는 이들을 일일이 면담하고 충성심, 인내심, 성실성, 정직성 등의 성품과 신체적인 건강을 기준으로 선발했다.

이는 직원들이 무엇보다도 좋은 성품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과 종합제철소 건설에 따른 힘든 일을 견디기 위해서는 건강이 필수적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한중석에서도 뛰어난 임직원들이 박태준을 따라 자리를 옮겼는데 그들은 대부분 재무, 공정관리, 기획부문에서 일하고 있던 직원들이었다. 기술직은 일류 공과대학 출신들이 철강관련업체에서 근무한 경험을 가진 직원들을 선발했다.

▲포스코는 70년 4월 1일 포항제철소 1기 설비를 착공, 38개월 만인 73년 7월 3일 조강 연산 103만 톤 규모의 일관제철소를 종합 준공했다.

그날부터 박태준은 회사의 기풍을 만들어갔다. ‘제철보국’ 정신을 거듭 강조하면서 직원들에게 철강산업을 일으켜 경제자립을 성취하자고 호소했다. 창립요원들의 어깨 위에 포항제철과 한국의 장래가 달려 있다고 역설하면서 항상 근면성실하고 자기를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태준은 임직원들에게 대한중석에서 했던 것처럼 공정하게 인사정책을 펴나가겠다고 공언했다. 직원들과 같이 회사 자산을 효율적이고 철저하게 경영해 관리자의 허점을 없애나갈 것이며 성실과 정직을 바탕으로 회사를 운영하겠다고 선언했다. 박태준은 특히 단결을 강조했다.

▲[포항1고로 화입]박태준 사장이 태양열로 채화한 원화를 제선공장의 포항 1고로에 화입하고 있다(1973.6.8).

“우리는 모두 한 배에 탄 공동운명체입니다. 서로 돕지 않는다면 배가 가라앉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두 힘을 합쳐 노력한다면 우리 앞에 닥친 문제점들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깊이 명심해 주기 바랍니다. 우리는 철상산업에서 세계적인 기업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행동 하나하나가 바로 포항제철을 대표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항상 성실하게 노력합시다. 무엇보다 회사와 동료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확실히 행동해야 합니다.”

<끝>
<정리=박수진 기자>
<출처=철강왕 박태준│서갑경 지음│한언 출판사>

박수진 기자 soojina602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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