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삼일째인 2012년 10월 15일. 여야의 ‘무소속 후보’와 ‘단일화 카드’로 안철수 후보는 협공을 당하고 있었다. 안 후보는 강연 정치를 통해 정면 대응을 했고 스피커 역할을 하는 본부장, 교수 등이 나서 ‘무소속 대통령은 불안하다’는 이미지를 방어해야만 했다. 내부적으론 이를 돌파하기위한 작업으로 ‘중량감 있는 외부 인사 영입’ 보고서가 올라갔다. 특히 송호창 민주당 의원이 탈당해 안 캠프로 오면서 민주당의 추가 탈당 조짐마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안 후보와 캠프 상층부는 전현직 정치인 영입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포문은 이해찬 대표가 열었다. 10월9일 교섭단체 대표 라디오 연설을 통해 ‘전세계에 무소속으로 당선된 대통령은 없다’면서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연이어 신계륜 문재인 특보 단장 역시 ‘무소속 대통령은 이상에 가까운 것’이라고 가세했다.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은 한발 더 나아가 ‘국가시스템을 파괴하는 국가적 재앙’이라며 국정마비 상황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안철수 캠프, ‘국민피로 증후군’ 출현
민주당과 여당의 총공세에 안 후보와 캠프는 초장부터 적극적으로 대응전략을 구사했다. 이 대표가 ‘무소속 대통령 불가론’을 언급한 다음날 10일 안 후보가 직접 나서서 “지금 상태에서 만약 여당이 대통령이 되면 밀어붙이기로 세월이 지나갈 것 같고, 만약에 야당이 당선되면 여소야대로 임기 내내 시끄러울 것 같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무소속 대통령이 국회를 존중하고 양쪽을 설득해 나가면서 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11일 청주교대 강연에서 안 후보는 “무소속 대통령 비판, 어처구니없다”며 “정당이 대통령을 무소속으로 만들어놓고선…”이라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빗대 역공을 펼치기도 했다.
내부적으론 국민이 불러낸 후보라는 점에서 ‘국민후보론’으로 논리를 개발했다. ‘정당 후보론’에 맞선 개념이자 ‘국민이 어떤 리더십을 원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아울러 기존 정치권이 보인 대의 민주주의 한계를 지적하며 이에 실망한 국민들에게 직접 민주주의 욕구가 안철수 현상을 낳았다고 논리를 개발했다.
하지만 언론들은 안 후보의 모든 이슈에 등장하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란 발언에 식상해하기 시작했다. 캠프출입기자들마저 사석에서 짜증까지 낼 정도였다. 실제로 캠프 내부에서도 ‘국민’을 너무 자주 언급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었다. 이런 점으로 인해 ‘국민 후보론’이 힘을 받지 못한 배경이 되기도 했다.
한편 안 후보와 인연이 깊은 송호창 민주당 의원이 9일 탈당하고 캠프로 들어오면서 민주당 추가 탈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다. 실제로 민주당내에서 ‘다음 타자는 누구냐’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에 맞춰 분석대응실에선 민주당내 비주류이자 비노의 상징인 K 의원과 L 의원 등이 탈당할 수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영입 작업을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단일화와 무소속 대통령이라는 공세에 대응해 ‘중량감 있는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후보자에게 안정감을 주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캠프 분위기는 기존 ‘시기상조’라는 반응에서 한발 더 나아가 부정적인 기류가 강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안 후보와 상층부도 크게 관심을 보이질 않는 모습이었다. 새정치를 내세운 진심 캠프의 또 다른 딜레마였다. 이에 우리실에선 대안으로 안철수 캠프에 관심 있는 전현직 의원 등 영입 대상자들을 최소한 제 3지대에 묶어두자는 대안을 냈지만 이 역시 크게 호응을 받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안철수 후보가 출마 선언을 하기전 접촉했거나 안 후보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던 전직 의원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지 않은 것은 아쉬움이 뭍어나는 대목이다. 거론된 인사 면면을 보면 손학규 고문과 김한길 최고를 필두로 문국현 김부겸 김효석 정장선 박형준 김성순 정태근 전 의원 등과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으로 여야를 떠나 합리적인 인사가 다수였다. 특히 김부겸 전 의원의 경우 안 후보가 출마선언하기전 두 차례나 만나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 게 알려지면서 캠프로 영입될 것이란 소문이 무성했지만 문 캠프에게 선수를 빼앗긴 대표적인 케이스다.
안철수 2차례나 김부겸 만났지만…
김부겸 한 측근은 당시를 회고하며 “두 차례나 만나 몇 시간 얘기를 했지만 김 전 의원은 정작 안 캠프에 합류하는 데는 다소 부담스런 모습이었다”며 “김 전 의원은 대통령에 출마하려는 안 후보가 준비되지 않은 모습에 다소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회고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김 전 의원이 문 캠프 공동선대위 본부장으로 영입되면서 안 캠프에선 아쉬움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또한 김성식 본부장과 함께 탈당한 정태근 전 의원 역시 합류설이 그럴듯하게 돌았지만 실제로 성사되진 못했다. 손 고문의 경우에도 문 후보와 대통령 경선에서 패하고 잠행을 하면서 측근 그룹 20~30여명을 대거 안 캠프로 보내면서 안 후보와 손을 잡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저녁의 삶’을 만든 비서관까지 안 캠프로 보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 고문 역시 막판 문 후보를 지원하면서 물건너 가게 됐다. 사실상 정치권 인사의 영입은 안 후보 측근인 송 의원을 끝으로 더 이상 추진되지 않은 셈이다.
한편 문재인 캠프에선 이종걸 의원이 전날 9일 비노 진영을 대표해 친노 진영에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우원식 의원의 ‘이해찬 백의종군론’을 이어받아 ‘이해찬-박지원 2선 후퇴’를 비공개석상에서 주장한 게 알려지면서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동향보고였다. 더불어 이 의원과 함께 구 바른정치모임 출신 정동영 김한길 이강래 등 전현직 의원과 원혜영, 유인태 정대철 김원기 등 중진급 인사들 역시 동조하고 있다는 첩보였다.
민주당 내분이 ‘집단탈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캠프로선 고무적인 내용이었다. ‘집단 탈당 사태’가 벌어지지 않더라도 친노와 비노간의 다툼은 향후 안-문 단일화 과정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할 공산이 높았기 때문이다. <계속>
<정리=홍준철 정치부장> mariocap@ilyoseoul.co.kr
안철수식 ‘더치페이 정치’의 빛과 그림자
안철수의 정치를 혹자는 CEO형 정치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많다. 캠프 인사들과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지만 결정은 오너가 한다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CEO형 정치보다는 ‘더치페이 정치’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하지 않느냐는 판단이다. 실제로 안 후보는 자서전에서도 밝혔듯이 회사를 떠나기전까지 부하직원과 밥을 먹을 때도 더치 페이를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성향은 진심 캠프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처음 들어오는 캠프 인사들은 ‘안철수 후보가 돈이 많아서 밥값 정도는 주겠지’ 생각하고 들어온 사람들이 다수였다. 실제로 민주당은 소액이지만 밥값과 교통비로 월 30만 원 정도를 지급했고 따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잡아 줬다. 새누리당은 밥집뿐만 아니라 24시 사우나 티켓까지 주면서 밤새 일하는 캠프 인원에 대한 편의를 제공했다.
반면 진심 캠프는 밥집이나 차비는 차치하고 숙박 시설도 선거법에 저촉될까 우려해 제공하지 않았다. 특히 점심 식사는 곤혹스러울 때가 많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각 부서 팀장이 점심값을 내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외부 인사와 점심 약속을 잡거나 아니면 더치페이 등을 통해 사비로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밥값 걱정에 점심 스케줄 선약 전쟁
그나마 여유가 있는 법조팀은 실장 얼마 팀장 얼마해서 식대를 따로 걷어서 해결해 캠프내에서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조광희 비서실장 역시 점심시간에 도넛츠를 사가지고 들어와 혼자 식사하는 경우를 종종 목도하기도 했다.
한 번은 밤을 새거나 새벽에 일찍 출근하는 인사들을 배려해 근처에 숙박시설을 마련하자고 제안을 했다가 무안을 당한 경험도 새롭다. 문제는 공식 행사때다. 유세일정을 따라 지방에 다니는데 다수 캠프 직원은 식대는 제공될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전북 유세중 2~30여 명이 점심을 먹는 데 담당자가 만 원씩 갹출을 하자고 제안해 몇 몇 캠프 인사가 황당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물론 유세 일정이 계속되면서 밥값은 자연스럽게 해결이 됐지만 그 과정을 보면 참으로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캠프내에서 ‘돈을 안푼다’는 말이 돌았고 급기야 정보지에 실리기도 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제목도 ‘갑부 안철수 후보 캠프 웬 돈 걱정’이냐며 돈이 없어서 캠프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돈이 풍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정보지에 실린 내용처럼 자금 부족으로 쩔쩔 매는 상황은 아니었다. 오히려 밥이나 교통비를 제외하곤 사무실에선 모자람이 없이 일했던 기억이 난다. 안철수 진심 캠프 생활하는 동안 선거법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과 함께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안철수식 더치페이’다. <철>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