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2비사] 백백교 살인사건 2
[대한민국 12비사] 백백교 살인사건 2
  • 이수광 작가
  • 입력 2013-01-21 11:08
  • 승인 2013.01.21 11:08
  • 호수 977
  • 2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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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살인마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폭압통치에 시달리던 가난한 민중에게 희망은 사치에 불과한 듯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줄기 희망을 꿈꾸게 해주는 이가 등장했다. 그는 바로 백백교 교주 전용해였다. 신선의 땅에서 불로장생한다는 백백교의 달콤한 교리는 한 줄기 구원이고 희망이었다. 그러나 백백교에 끌려온 사람들은 재산을 빼앗기고 부인과 딸을 교주에게 바쳤다. 교주 전용해의 행태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나를 의심하는 자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300명 이상의 신도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백백교, 불과 몇 년 사이에 이러한 살인이 벌어진 것은 충격적이면서도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왜 백백교 신도들은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살해당한 것일까? 백백교에게 어떤 마술과 같은 힘이 있었을까? 그 의문을 풀어보기 위해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36년 늦가을, 함경남도 안변군 위익면 청학리의 깊은 산골에서는 을씨년스럽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청학리의 한 동굴에서는 밤마다 기도회가 열리고 백백교 교주 전용해가 머물고 있는 숙소에는 벽력사(霹靂使)와 화천사(化天使)들, 소위 부엉이부대로 불리는 밀정들까지 몰려들어 어수선했다.

교주 전용해의 심복들인 대법사(大法師), 도유사(道儒師), 공명사(公明師)와 심봉사자(心奉使者), 북두사자(北斗使者)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는 벽력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법사는 백백교의 2인자 겸 부교주지만 교주 전용해의 비서나 다름없었다. 대법사 밑에는 도유사가 1명 있고 공명사라는 장로집단이 약간 명 있었다. 벽력사는 전용해의 심복들로 살인마집단이었다. 화천사는 여자들의 집단인데, 교주의 첩과 시녀 중에서 총애를 받는 여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정삼례는 화천사에 속해 있으면서도 소년소녀들로 이루어진 밀정들인 부엉이부대의 책임자였다. 부엉이부대는 백백교 신자들이 배신하거나 불평하는 것을 찾아내 전용해에게 밀고하거나 직접 처단하는 집단이었다. 14세에서 21세까지의 소년소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비가 오는 한낮, 벽력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빗속에서 돌아다니는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일반 신자 중에는 거의 없었다. 백백교 신자들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짜는 등 일을 했고, 밤이 되자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하나둘씩 뒷산의 동굴로 모여들었다.

백백교 신자가 되면 전 재산을 헌납하고 공동생활을 하게 된다. 배우자나 가족이 있더라고 따로 떨어져 지내야 한다. 이러한 백백교의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신도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처형당한다. 애초에 현실의 법 따위는 이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니 백백교는 현실 사회와 동떨어져 그들만의 집단생활을 하고 있었다.
동굴에는 제단이 설치되어 있고 그 앞에는 붉은색의 휘장이 늘어져 있었다. 제단 앞에는 여러 개의 향로가 있어서 푸르스름한 향연이 자욱하게 피어올라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자아냈다. 신자들은 바닥에 멍석을 깔고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하고 있었다.

“백백백… 적적적… 흑흑흑!”
신자들은 머리를 조아리면서 주문을 외웠다.
“들으라. 나를 따르는 자는 죽지도 않을 것이며 병이 들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천신의 아들이니 결백한 심령이다. 나를 믿으면 몸과 마음이 결백해져 일체의 중생들이 선남선녀가 되어 구원을 받으리라.”
휘장 안에서 교주 전용해의 신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신자들은 더욱 머리를 조아려 제단을 향해 절했다.

1936년 일제 감정기에 살던 사람들을 오늘날의 우리와 비교하면 안 된다. 그 당시에는 시골로 갈수록 글을 쓰거나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 무지했다. 오죽했으면 지식인들이 농민에게 세상 문물과 글을 가르쳐주려 한 농촌계몽운동을 벌였겠는가. 농민들은 일본 순사만큼이나 귀신과 산신령을 두려워했고 무당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전통적인 토속 신앙생활을 하던 그들에게 전용해의 설교는 색다르고 신비로웠다. 여름철에는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로 다니던 시골 사람들이었다.

“전 세계는 불원간 옥황상제의 심판을 받을 터인데 서양은 불로 망하고 동양은 물로 망할 것이다. 석 달 열흘 동안 비가 내려서 30척(尺)이 넘는 대홍수가 날 것인데 누가 여기서 살아남겠는가?”
“우리의 교주님 대원님이십니다.”
“그렇다. 나는 대홍수로 인한 물의 재앙이 내리면 동해에 새로 생기는 영주(瀛州)에 너희를 데리고 갈 것이다. 그곳은 무릉도원으로 사시사철 따뜻한 봄이요, 기린과 봉황이 춤을 추고 불로초가 자라며 서왕모(중국 전설 속의 여신)가 먹던 선도(복숭아)가 열린다. 나를 따르는 우리 백백교 신자들은 불로초와 선도를 먹고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리라! 신자들아, 나를 믿으라.”
“대원님, 황공하옵니다.”

신자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 그때 벽력을 치듯 징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제단을 가린 붉은 휘장이 걷혔다. 제단 위에는 흰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전용해가 앉아 있었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푸른 향연과 휘장이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대원님께서 현신하셨다. 4배를 올려라!”
대법사 이순문이 호통을 치자 신자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절하기 시작했다.

“들으라!”
전용해가 두 팔을 벌리고 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의 말이 메아리가 되어 넓은 동굴을 쩌렁쩌렁 울렸다. 소매가 치맛자락처럼 넓어서 흡사 커다란 새가 날개를 편 것 같았다.
“나 대원님을 믿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나를 믿지 않고 의심하는 자는 하늘이 벌을 내린다. 보라! 너희 앞에 앉아 있는 여덟 신자들은 나를 의심하여 천벌을 받는다. 모두 머리를 들고 보라!”

전용해의 명령에 신자들이 일제히 머리를 들었다. 북두사자들이 여덟 신자의 옆으로 다가가 툭툭 건드리자 시체들은 그대로 고꾸라졌다. 신도들은 자신들의 가장 앞줄에 앉아 있던 신자들이 맥없이 싸늘한 시체가 돼 쓰러지는 것을 발견하고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들은 교주 전용해의 신통력으로 이들이 죽은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가 않다. 벽력사들이 미리 목을 졸라 죽인 뒤에 멀쩡한 사람처럼 보이도록 앉혀 놓은 것이다. 이것은 교주 전용해가 신통력을 과시하기 위해 종종 신도들을 위협하는 방법이었다.

사이비종교의 전매특허, 종말론·재산헌납·공동체생활·음란행위

사이비 종교의 특징은 종말론·재산헌납·공동체생활·교주의 음란행위다. 신도들은 교주가 음란한 짓을 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교주이기 때문에, 전지전능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선택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성스러운 행위로 받아들이고 교주가 목욕하거나 발을 씻은 물도 성수라고 생각하며 마신다.

전용해는 음란한 행위를 할 때 조금이라도 반항하거나 의심하는 여자들을 신도들 앞에서 잔인하게 처형했다. 그리고 그녀들에게는 악마니 마귀니 하는 이름이 붙여졌다.

동굴에서 처형을 마치자 전용해는 숙소로 돌아와 음란한 행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는 여신도들을 닥치는 대로 농락해 부인이 여럿이고 첩이 10여 명이나 됐다.
“너는 천신을 맞이하는 것이다. 결백하신 대원님께서 너를 깨끗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전용해는 여신도들을 농락할 때 신이 강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여인들을 농락할 때 다른 첩들은 문밖에서 대기해야 했다. 여인들은 살인의 공포에 떨었다.

이수광 작가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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