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장 선거, 오는 28일 결정… 사실상 양강구도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축구협회장 후보 등록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14일, 정몽규(51·전 프로축구연맹 총재)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허승표(67) 피플웍스 회장, 윤상현(51) 새누리당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로써 지난 9일 가장 먼저 후보자 등록을 마무리 한 김석한(59·전 중등축구연맹 회장) 인성하이텍 회장을 포함, 총 4명의 후보가 축구협회장 선거에 출마하게 됐다.
연간 약 1000억 원의 예산을 아우르는 ‘축구대통령’, 축구협회장 선거는 24명으로 구성된 대의원의 투표에 의해 결정된다. 16명의 시·도 축구협회장(서울, 경기, 대전, 충북, 충남, 강원, 전북, 전남, 경남, 경북, 부산, 대구, 제주, 울산, 광주, 인천)과 8명의 산하 연맹 회장(초등, 중등, 고등, 대학, 실업, 풋살, 여자, 프로) 등 총 24명이 투표권을 행사한다.
축구협회 정관 제23조(회장의 선출)에 의거해 1차 투표에서 과반수이상을 득표하는 후보가 당선인으로 결정되며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는 상위득표자 2인에 대한 2차 결선 투표가 실시된다.
1차 투표 대의원 선거는 오는 28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사상 초유의 4파전으로 열리는 이번 선거는 벌써부터 각 후보 간 공약전쟁을 선포하는 등 대혼전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축구계에서는 “사실상 정몽규 회장과 허승표 회장의 양강구도가 아니겠느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한국축구의 권력중심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대가(家) 대표 정몽규 회장과 총 세 번의 경선에 참여했던 야권 대표 허승표 회장의 세력이 너무 막강하다는 것이 이들의 의견이다.
더불어 조중연 현 회장 체제에 대한 변혁의 요구가 최고조에 달한 지금 시점에 조중연 현 축구협회장의 지원을 받고 있는 김석한 회장의 입장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정치인의 축구계 입성을 달갑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을 가진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의 상황이 좋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 정몽규 회장과 허승표 두 후보가 무엇을 공약으로 내세울 것이며 추후 어떤 행보를 보여줄 수 있을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여당 ‘엘리트’ 정몽규 對 야당 ‘삼수생’ 허승표
정몽준 축구협회 명예회장의 사촌동생으로도 잘 알려진 정몽규 회장은 ‘현대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현대오일뱅크 사장인 권오갑 한국실업축구연맹 회장과 현대중공업 출신인 오규상 한국여자축구연맹 회장, 현대가의 본가라고 할 수 있는 울산시축구협회 등이 대표적인 지지 세력이다.
축구협회장 선거 출마를 위해 총재직에서 물러났지만 한국프로축구연맹도 여전히 정몽규 회장의 우군으로 분류된다. 총 4명의 후보에게 갈 수 있는 표수가 24장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막대한 세력이다.
아울러 정몽규 회장은 프로축구연맹 총재 재임 시절(2011.01~2013.01), 짧은 재임기간에도 프로축구의 위기를 효과적으로 타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외이사제 도입, 승강제 도입, 국내 스포츠 사상 최초의 1·2부 리그 출범 등 굵직한 사안들을 추진하며 축구 행정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했다. 특히 국내 스포츠계 전반을 뒤흔들었던 승부조작 파문을 최소화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
‘현대가’ 출신이라는 것이 약점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몽준 명예회장의 권력을 세습하려 한다는 비판을 극복하는 것이 최대 과제다.
반면 허승표 회장은 오랜 경력을 통해 얻은 ‘재야 대표’ 라는 상징성이 강점이다. 서울신탁은행 선수생활을 시작으로 지난 1980년부터 12년간 대한축구협회에 몸담았다.
그는 지난 1997년(제48대)과 2009년(제51대) 축구협회장 선거 출마했지만 각각 정몽준 명예회장과 조중연 현 회장에게 패배했다. 이후 정몽준 명예회장과 뜻이 엇갈렸고 지난 2004년 한국축구연구소를 설립해 축구계 야권 주자로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용수 세종대 교수, 오완건 전 축구협회 부회장, 박승옥 전 OB축구회 부회장, 박종환 전 국가대표팀 감독, 김호 전 수원 감독, 이장수 전 광저우 감독 등 축구계 원로 및 현역 지도자들이 출마 기자회견에 참석해 힘을 실어주었다.
세 번째 선거에 나선 만큼 대의원들의 파악에 유리한 허승표 회장이 ‘현대가 세습 심판론’을 앞세워 재야 표를 결집할 경우 정 총재와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허승표 회장은 “평소에는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서 선거 시기만 되면 개혁을 외치고 있다”는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치열한 공약전쟁, 합종연횡 각축
선거전이 종반을 향해 달리면서 두 후보의 공약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특히 서로의 공약이 비슷하면서도 확연하게 갈려 더욱 흥미진진한 각축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정몽규 회장은 “새로운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그가 밝힌 5대 비전은 ▲ 한국 축구의 국제 경쟁력 강화 ▲ 축구문화 발전 ▲ 축구 인프라 업그레이드 ▲ 축구인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 축구계의 소통과 화합 강조 등으로 압축됐다.
그는 특히 “제가 협회장을 맡는다면 축구산업 자체를 키우는 것이 가장 큰 일이 될 것”이라며 “기술적인 부분은 저보다 축구인들이 더 잘할 것이다. 축구산업을 키우는 것이 차기 축구협회장이 해야 할 가장 큰 일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하며 장차 3000억 원까지 축구협회 재정을 확충할 뜻을 밝혔다.
더불어 줄곧 지적돼왔던 부족한 경기중계에 대해 “A매치 중심의 경기중계문화에서 K리그, 아마추어리그 등 다양한 리그를 중계하는 문화로 바꾸겠다. 그럼 국민들의 관심이 증대되며 중계권, 스폰서, 광고 등 수익도 확대될 것”이라고 말해 기대감을 높였다.
뿐만 아니라 유소년 및 여자 축구 발전과 관련해서도 “현재 6000만 원 정도인 시·도협회 지원금은 두 배 이상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축구협회의 지원금이 늘어야 유소년 클럽과 여자축구 등이 발전할 수 있다. 풀뿌리 축구가 성장해야 한국 축구도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현대(家) 세습이라는 지적에 대해선 “투표를 통한 선출 방식이 있음에도 세습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현대가 세습이라는 분위기로 축구계가 분열됐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런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일축했다.
이에 반해 축구계의 대표 야권인사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은 “한국 축구계가 앞으로 40년 동안 활용할 기틀을 만들고 후배들에게 이를 물려주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아울러 6대 비전 공약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 월드클래스를 향한 선진 행정 및 국제협력 ▲ 시도협회·연맹 역량강화를 위한 분권화 ▲ 투명하고 건강한 재정 ▲ 함께 누리고 함께 행복한 교육과 복지 ▲ 축구 산업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 및 저변확대 ▲ 스포츠과학을 통한 경기력 강화 등을 내세웠다.
6개 정책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 축구협회에 특별자문회의와 온라인 회장실 신설 ▲ 옴부즈맨 제도 도입 등을 약속했다.
정몽규 총재의 이상적인 공약과는 다르게 내실에 초점을 맞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허승표 회장 선거 캠프의 주 공약 역시 등록 선수 확대다. 현재 3만 6790명인 등록선수를 2016년에는 20만 명까지 늘려 100만 명 시대의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등록 선수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축구 인프라는 물론 저변이 확대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축구계에서도 현실적 공약이라는 이점이 있다는 의견과 함께 아울러 분권화 공약을 내세워 대의원들의 표심을 자극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도 이어졌다.
허 회장은 “정몽준 회장이 정말 대단한 것을 이뤘지만 (정몽규 회장의 출마는) 누가 봐도 세습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며 “나는 정치적 야심도, 명예욕도, 갚아야 할 이해관계도 없다. 오직 축구만 생각하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선거 판세는?
앞으로 투표가 실시되는 28일을 제외하고 일주일 정도의 ‘선거운동 기간’이 남아 있다. 현재 판세의 윤곽은 이미 양강구도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외형적으로는 후보 4명이 참가하지만 정몽규 회장과 허승표 회장의 양자 대결이 뚜렷해지고 있다. ‘2차 투표는 필요 없을 것’이라는 전망 역시 축구인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회장 당선에 필요한 최저 득표수는 ‘총 투표수’ 24표의 과반수인 13표다. 때문에 양강을 구축하고 있는 정몽규 회장과 허승표 회장 모두 1차 투표에서 과반(13표) 이상의 득표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최소 각각 대의원 3명의 추천을 받은 후보가 4명이라는 것은 이미 12명의 표가 사라진 셈이다. 1명의 후보가 과반 이상의 표를 얻으려면 남은 12표 가운데 적어도 10표를 챙겨야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만약 이들의 주장대로 2차 결선 투표로 가게 되면 탈락한 2명의 후보가 캐스팅보트를 쥘 공산이 크다. 투표인단이 24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들 표심의 향배에 따라 선거 결과 자체가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몽규 회장과 허승표 회장의 결선 투표 대결이 유력하게 점쳐지는 동시에 김석한 회장과 윤상현 의원을 포섭하기 위한 각 진영의 합종연횡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밑협상이라던지 연대세력 구축 등 다양한 변수 또한 남아 있다.
하지만 결국 ‘차기 축구대통령’ 자리에 단 한 명이 먼저 오를지, 경쟁자와 힘을 합쳐 오르게 될지는 오는 28일 최종 결정된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