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만 되면 조용 젊은 택시기사만 보면 ‘움찔’
10시만 되면 조용 젊은 택시기사만 보면 ‘움찔’
  • 이수향 
  • 입력 2005-04-09 09:00
  • 승인 2005.04.0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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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다” vs “안전한편”

“최근 잇달아 일어난 범죄로 밤에 돌아다니는 게 불안하다.” 서현역 앞에서 만난 회사원 양모(28)씨의 말이다. 최근 일어난 여승무원 살해사건을 비롯해 분당지역에서 연이어 터진 강력범죄들로 인해 분당 시민들은 무척 불안한 모습이었다. 대학생 서모(23)씨도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가 잇달아 터지니 특별히 조심하게 된다. 내가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 무섭다”고 말했다. 서현역 앞에서 만난 몇몇 시민들은 최근 분당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더욱 민감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언론과 방송에서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불만의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강남에 살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분당으로 이사를 왔다는 장인범(25)씨는 “분당에서 살인사건이 연달아 터져 불안한 것은 사실이지만 ‘제2의 화성’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비록 불미스러운 살인사건이 연달아 발생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당이 범죄의 도시라느니 치안이 엉망이라는 식의 매도는 억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장씨는 “그렇게 따지자면 우리나라에서 범죄도시라는 오명을 쓰지 않을 곳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6년째 분당에서 살아본 결과, 강남에 비해 훨씬 안전하고 살기 좋다”고 강조했다.

택시손님 발길 뚝...

하지만 이번 두건의 강력사건이 터진 후 분당의 분위기는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밤 11시경. 서현역 인근의 택시정류장에는 수십대의 택시가 줄지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손님을 기다리는 빈 택시의 줄은 좀처럼 짧아지지 않았다. 오가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수십분이 지나도 택시를 타는 승객은 극히 드물었다. “원래 이 시간에 손님이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경력이 13년이라는 택시기사 박모(51)씨는 “전과 9범이 택시운전을 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됩니까?” 라고 대뜸 분통을 터뜨렸다.

여 승무원을 살해한 범인이 전과 9범의 택시기사였다는 사실을 빗대어 하는 말이었다. 대로변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또 다른 택시기사(45)도 박씨의 말을 거들었다. 그는 “자꾸 이런 일이 터지니까 손님들이 모든 택시기사를 전과자로 보는 것 아니냐”며 “내 나이만 돼도 불안한 눈초리를 보이는 승객들이 있다. 젊은 기사의 경우는 더 심하다. 노인이 운전하는 차량을 타겠다며 내리는 손님도 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원래 이 지역은 늦은 시각에도 그나마 손님이 있는 곳이었다”는 박씨는 “사건이 터진 후에는 밤 10시만 돼도 손님이 끊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범죄표적 많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중에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서현역 삼성프라자 앞에서 만난 한 50대 주부는 “분당의 분위기가 예전같지 않다”고 귀띔했다. 깨끗하고 살기좋은 신도시 이미지로 각광받았던 분당의 이미지가 많이 퇴색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에 피해를 당한 승무원은 운이 나빴던 경우”라며 “누구나 표적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역 주변에서 술집 전단지를 돌리던 한 남성은 “여기는 인적이 드문 곳이 아니다. 재수없으면 누구나 범행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만 범행이 일어난다는 법은 없다는 것. 그는 “자정이 넘어도 역 주변 벤치에는 중고등학생들이 쪼그려앉아 있거나 우르르 몰려 담배를 피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또 “밤늦은 시각에 술에 취해 역주변을 서성이는 젊은 여성들도 있다”고 전했다. 아무리 치안이 철저한 곳이라 해도 밤늦은 시각에 돌아다니는 자체가 범행의 대상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늦은 시각 유흥가에는 젊은 청년들이 서성거리거나 몰려 돌아다니는데, 잘못 쳐다보기라도 했다가는 해꼬지라도 당하지 않을까 두렵다”고 덧붙였다.

분당 강력사건발생 그 후 …

지난달 31일 오후 9시. 3월 한 달 동안 두 차례나 살인사건이 일어난 분당신도시의 최대 번화가인 서현역 일대를 찾았다. 이 곳의 밤거리는 예전과 변함없이 화려했다. 이미 퇴근시간이 지난 후였지만 이 지역은 오가는 많은 인파들로 붐볐다. 역 인근에 위치한 밤업소들은 본격적인 영업을 개시했고 요란한 형형색색의 전광판이 눈에 확 들어왔다. 거리 곳곳은 온통 화려하게 번쩍거리는 네온사인들로 가득차 있었다. 밤 11시가 넘어서면서 서현역 주변은 더욱 활기를 띠는 모습이었다. 유흥가로 이어지는 거리에는 바쁘게 오가는 사람,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여기저기 몰려있는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치안상태 양호한편 분당은 안전하다”

분당경찰서 형사지원팀 소속 형사는 “최근 잇달아 터진 강력사건을 이유로 분당을 불안한 도시로 매도해서는 안된다”며 “분당의 치안상태는 무척 양호한 편”이라 말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분당의 범죄현황은.▲ 타지역에 비해 낮은 편이다. 강력범죄 발생률도 구시가지에 비해 낮다.

- 강력범죄 발생현황은.▲ 몇 년째 살인사건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작년의 경우 1건 있었을 정도다.

- 최근 분당서 강력범죄가 일어난 원인은.▲ 특별한 원인은 없다. 범죄나 사건사고는 어느 지역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것 아닌가. 분당 근처에서 발생한 사건까지도 분당의 치안문제로 돌리는 것은 억측이다.

- 강남의 부유층들이 분당으로 대거 이동한 것이 원인은 아닌가.▲ 강남에서 온 부유층을 노린 것은 아니다. 분당이 개발된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최근 강남인들이 몰려드는 것도 아닌데, 이번 사건과 연관지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 유동인구가 많은 편인가.▲ 그렇지 않다. 주거단지 아닌가. 따라서 치안상태도 상당히 양호하다.

- 서현역 인근에는 유흥가가 밀집해있는데.▲ 유흥가 주변은 치안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지구대 단속요원들도 계속 순찰하고 있다.

이수향  thelotu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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