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대로 된 애들 없다
3월 23일 오후 신촌에서 만난 대학생 우현수(26·가명)씨는 동거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동거 사이트에 제대로 된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며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지방에서 올라와 홀로 생활하던 그는 입대하기 전 동거 사이트에서 만난 4살 연하의 A(여)씨와 약 1년 정도 동거한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만난지 불과 보름만에 그녀의 제안에 의해 동거에 들어가게 됐다는 우씨. 그러나 동거생활은 생각처럼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우씨는 “외로운 마음에 덜컥 동거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내 개인 생활을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큰 스트레스였다”고 밝혔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A씨는 우씨가 마치 남편이나 되는 듯 당연스레 용돈을 요구해왔다. 집에서 조달받는 용돈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던 우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집요한 용돈타령에 시달려야 했다”고 고백했다.
우씨는 “그녀의 사정도 딱하고 나름대로 정이 들어 용돈을 주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내 신용카드까지 마음대로 사용하는 등 도가 지나쳤다”며 “100만원이 넘는 명품을 할부로 끊은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우씨는 “더이상 돈을 주지 않겠다고 하자 그녀는 뒤도 안돌아보고 집을 나가버렸다”고 어이없어했다. 그는 “나중에 알고보니 그녀는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남자를 찾을 목적으로 동거 사이트 이곳저곳을 배회하는 ‘꾼’이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과 같은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닐거라는 우씨. 그는 “생전 알지도 못한 그녀를 어떻게 믿고 동거에 들어갔는지 모르겠다”며 “돌이켜보면 미친 짓이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부부나 마찬가지 ‘사실혼’
3년째 동거중인 직장인 임성수(30·가명)씨 커플은 그나마 ‘정상적’인 동거사례로 꼽히는 케이스다. 이들은 법적인 혼인절차만 밟지 않았을 뿐 여느 부부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내년 봄에 결혼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이들이 동거를 하는 이유는 결혼할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 “좀 더 경제적인 기반을 갖춘 후에 제대로 된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싶다”는 임씨는 “나이만 찼다고 무턱대고 결혼식을 올리기는 싫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임씨 커플은 결혼시기만 늦췄을 뿐 양가에서도 이들을 부부로 인정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현재 2년째 동거중인 김혜미(28·가명)씨는 “결혼을 목적으로 동거에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동거 사이트에서는 만남과 동거까지의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고 전했다. 지방에서 대학을 마치고 취직과 함께 상경한 그는 타지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또 많지않은 월급으로 혼자 비싼 오피스텔비를 내며 생활을 꾸리는 것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것이 동거 사이트였다. 김씨는 “처음에는 낯선 사람과 동거에 들어간다는 것이 꺼림칙했지만, 현재 생활에 만족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는 “현재 동거하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전제로 동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즉 현재의 동거는 결혼의 준비단계가 아니라는 것. 그는 “동거를 빌미로 결혼에 연연하기는 싫다”고 말했다. 김씨 커플은 성에 대해서도 상당히 개방적이다. 그들은 여느 부부와 다름없이 성관계를 갖지만 결혼에 대한 얘기는 서로 일절 하지 않는다. 가사분담 및 생활비 분담, 성관계 및 피임, 사생활 보호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동거 계약서까지 작성했다는 그는 “우리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함께 사는 사람이다. 결혼을 배제한 관계라 해서 섹스파트너로 보는 것은 억측이다”라고 강조했다.
이게 동거사이트야 성매매 사이트야?
‘28평. 투룸. 외모, 성격 깔끔한 동거녀구함. 생활비는 추후합의’‘신촌역. 월세 30. 애인처럼 함께 지낼 여성 구함’현재 인터넷상에는 ‘낯선 사람과의 동거’를 알선하는 수십개의 동거 사이트가 활동중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건전한 동거문화의 정착’을 표방하고 있지만 동거 파트너를 구하는 게시판의 실상은 이와 사뭇 다른 느낌이다. “생활비는 제가 전액 부담합니다. 몸만 들어오시면 됩니다. 단 외모되는 분만 가능합니다”, “여유롭고 풍족한 생활 원하는 여성분 구합니다”, “스폰 동거 합니다”와 같이 순수한 목적의 동거라고는 보기 어려운 내용의 글들이 즐비하다. 마치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원조교제나 조건만남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불건전한 동거는 다만 남자의 경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동거 파트너를 찾는 여성들 중에는 노골적으로 ‘경제적인 도움’을 원하는 이들이 상당수다. “26살 여자입니다. 같이 살면서 경제적으로 도와주실분 구합니다”, “월 용돈 100만원 맞춰주실 수 있는 분 원합니다”와 같은 식이다. 또 생활비와 용돈를 위해서는 청소, 빨래 등과 같은 집안일은 물론이고 만족스런 섹스파트너까지 기꺼이 되겠다고 자청하는 여성들의 글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이수향 thelotu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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