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국 전 문경시장 자서전 13
신현국 전 문경시장 자서전 13
  • 신현국
  • 입력 2013-01-15 10:25
  • 승인 2013.01.15 10:25
  • 호수 976
  • 21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신 : 팀장은 주사(6급), 사무관(5급)을 중심으로 임명하였지요. 기존의 행정체계는 6단계(직원→계장→과장→국장→부시장→시장) 입니다. 6단계를 거치면서 호랑이가 토끼로 바뀌지요. 때론 토끼가 호랑이로 보고됩니다. 거북한 것, 시장이 싫어하는 내용들은 다 잘리고 두루뭉술하게 보고됩니다.

현장의 내용을 생생하게 파악할 수가 없지요. 게다가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T/F팀은 시장과 팀장 간의 직거래 체계입니다. 능률적이고 일을 신속하게 할 수 있지요. 저는 T/F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 L팀장 : 우리나라 최초의 T/F팀은 세종대왕 때라고 시장님이 말씀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 신 : 오늘의 T/F팀과 똑같지는 않지요. 그런데 세종대왕께서 일하시는 스타일은 오늘의 T/F팀과 거의 유사합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께서 직접 구상, 지시하시고, 보고 받으셨습니다. 집현전의 성삼문, 신숙주를 요동의 황찬에게 11번, 12번 보내어 음운(音韻)에 대해 조사하게 하였지요. 언문청(諺文廳)을 신설하여 한글창제를 전담케 하였습니다. 이를테면 성삼문, 신숙주에게 수시로 지시하고 보고를 받았지요. 성삼문과 신숙주가 훈민정음 담당 공동 T/F팀장이었지요.

측우기와 천문과학에 대해서는 장영실로 하여금 전담하게 하였지요. 장영실이 천문과학 담당 T/F팀장인 셈이지요.

 

- L팀장 : 성삼문, 신숙주가 훈민정음 T/F팀 팀장이고, 장영실이 천문과학 T/F팀 팀장이라고 하니 참으로 새롭습니다.

▲ 신 : 저는 직접 제가 일을 해보니 기관장이 조직의 계통을 통해 지시하고 보고받는 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통감하였습니다. 지시하고 보고 받으니 문제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 잘되는 것만 보고하는 것이 조직의 생리입니다. 나쁜 것과 거북한 것은 중간단계에서 다 잘리고 아무 실체 없는 허상만 보고를 받게 되지요.

“시장님, 아무 문제없습니다.” “시장님, 잘 돼 가고 있습니다.”

 

- L팀장 : 박정희 대통령도 T/F팀과 같은 조직을 가동했지요.

▲ 신 :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를 보는 통찰력이 뛰어난 지도자였지요. 그런데 통찰력만 가지고 국가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지요. 통찰력을 토대로 국가를 발전시키는 전략이 필요하고 지도력이 필요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경우 주요 국가적 과제는 당신이 직접 챙기고 확인하고 점검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때로는 직급을 초월하여 부처의 과장급까지 직접 청와대로 불러 추진상황을 점검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포스코의 입지를 선정할 때 경제기획원의 H과장께 사전조사에서부터 실무조사를 다 맡기고 수시로 청와대에 불러 점검했습니다. 대전 대덕과학단지 조성 때는 당시 최형섭 과기처 장관과 헬기를 타고 3차례나 현장 답사를 실시하고 수시로 보고를 받았습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도 마찬가지입니다. 1964년 독일의 아우토반을 보시고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독일방문에서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당시 건설부 A과장을 불러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지시했습니다.

이후 A과장에게 공사현장 점검 등을 직접 보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경부고속도로의 노선까지도 직접 함께 점검하고 메모하셨지요. 지금도 그 때 대통령께서 직접 지시한 메모지가 남아 있습니다. 이 때 노선, 소요사업비까지 다 마련하였으며 박 대통령의 진두지휘 하에 경부고속도로는 총 사업비 429억 원, 19개월 만에 준공되지요. 대통령이 직접 T/F팀을 관장하니 19개월 만에 경부고속도로를 완공시킨 것입니다. 경제기획원 H과장이 포스코 건설 T/F팀장이었고, 최형섭 장관이 대덕단지조성 T/F팀장이었고, 건설부 A과장이 경부고속도로 T/F팀장인 셈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농업부문에도 관심이 많으셨지요. 당시 식량의 자급자족이 시급했고 농업이 주산업이었던 터라 당시 김인환 농촌진흥청장에게 지시하여 쌀의 자급자족을 지시했습니다. 당시 김인환 청장은 13년간을 청장에 머무르면서 대통령과 수시로 통화하고 보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통일벼를 육성해냈고, 쌀의 자급자족을 이루어 냈지요. 김청장이 통일벼 육성 T/F팀장인 셈이지요.

새마을운동도 마찬가지이지요. 1969년 6월 3일 경북 청도군 신도리 수해복구 현장을 직접 시찰하시고 현장에서 지역민들이 스스로 수해 복구하는 모습을 보시고 새마을 운동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것입니다. 곧바로 내무부 장관에게 새마을사업을 전 국민운동으로 전개하도록 지시하셨답니다. 그리고 청와대 새마을담당 비서관이 생길 때까지 내무부 담당과장을 수시로 불러 확인했답니다.

 

5. 친절운동

 

- L팀장 : 시장님은 취임 후 공무원들에게 첫째도 친절, 둘째도 친절이라며 친절운동을 늘 강조 했습니다.

▲ 신 : 그렇습니다. 친절은 참으로 소중한 덕목입니다. 친절은 지방 행정의 최고의 가치 기준이지요. 지방행정의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친절해야 됩니다. 친절하지 않고는 기업유치도 안됩니다. 친절하지 않고는 관광도 불가능 합니다. 친절하지 않고는 장사도 안 됩니다. 친절하지 않고는 되는 게 없습니다. 저는 모든 일의 기본은 친절이라 확신했습니다.

2005년으로 기억합니다. 어느 일요일 성당의 미사를 마치고 사목회장님과 함께 문경읍 온천 근처의 어느 식당에 들렀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때 시간이 12시반경이었습니다. 식당 홀에는 다른 손님은 없었고 성당에서 함께 간 15명 정도만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때 식당 문이 열리더니 “식사 뭐 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의 답은 “밥 없어요”라고 아주 퉁명스럽게 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조금 뒤 다시 문이 열리더니 그 분들이 다시 와서 식당주인에게 또 물었습니다. “얼마나 기다리면 됩니까.” 그 때 식당 주인의 충격적인 답변이 나왔습니다. “밥 안 해 봤어요? 식당이나 집이나 다 똑같지.” 그러자 그 분들은 문을 닫고 갔습니다.

얼마 뒤 식당 주인이 저희 테이블로 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 때 사목회장님께서 “여보세요. 사장님 왜 같은 말씀이라도 그렇게 하세요.” 더욱 기가 막힌 식당 주인의 답변이었습니다. “제가 뭐 나쁜 말했어요. 밥 없는 것 밥 없다고 했고, 밥하는 시간이야 다 똑같다고 했지요.”

그 날 저는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문경의 부족한 부분이 또 있구나, 그것은 친절문제입니다. 관광을 하겠다고 하는 도시에서 친절 수준이 이 정도라면 끝이구나’라고 생각했지요. 시장이 되면 친절운동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우리 문경은 보수 경상도 지역이라 평소에도 무뚝뚝하지요. 말씨도 반말처럼 들리고 친근감도 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공무원의 친절도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르신들이 민원실에 들어와도 어느 누구 하나 일어서서 인사하는 사람조차 없었지요.

저는 5년6개월 동안 친절운동을 끊임없이 강조하였지요. 전국에서 가장 친절한 문경시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친절은 베풀수록 즐겁습니다. 친절은 주는 쪽도 플러스고 받는 쪽도 플러스입니다. 한마디로 누이 좋고 매부 좋지요. 친절운동은 돈 안 드는 확실한 투자입니다. 아무리 베풀고 베풀어도 베풀수록 나도 기분이 좋고 상대방도 기분이 좋습니다.

제가 시장이 된 후 문경에서는 읍·면·동사무소에서 모든 민원인들에게 무료로 커피를 봉사하고 있지요. 3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참 좋아하십니다. 예산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습니다. 화가 잔뜩 나서 항의하러 동사무소에 왔다가도 동사무소 여직원이 달려 나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대접하는 순간 화가 풀렸다고 어느 어르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L팀장 : 이영우 교육감님께서 시장님의 몸에 밴 친절에 대해 크게 칭찬하셨다면서요.

▲ 신 : 별것 아닌 얘기입니다. 2008년 4월로 기억합니다. 경북도교육감 보궐 선거때 였습니다. 교육감님께서 후보자격으로 저의 사무실을 방문했었지요.

그때 3명의 후보가 입후보를 했는데 3명의 후보가 모두 저의 사무실로 찾아와 지지를 부탁했습니다. 사실 그때 저는 특별히 지지하는 후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3명의 후보 모두에게 저가 평소하는대로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어 모셨습니다.

그리고 가실 때 저의 사무실이 2층인데 1층 현관 앞까지 내려가 정중히 배웅을 했습니다. 저로서는 당연히 할 도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교육감님께서는 후보시절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5년6개월간 시장직에 있으면서 외부손님에 대해서는 늘 1층 현관까지 내려가 배웅을 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 본면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신현국 ilyoseoul@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