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2비사] 백백교 살인사건 1
[대한민국 12비사] 백백교 살인사건 1
  • 이수광 작가
  • 입력 2013-01-15 09:41
  • 승인 2013.01.15 09:41
  • 호수 976
  • 2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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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살인마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폭압통치에 시달리던 가난한 민중에게 희망은 사치에 불과한 듯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줄기 희망을 꿈꾸게 해주는 이가 등장했다. 그는 바로 백백교 교주 전용해였다. 신선의 땅에서 불로장생한다는 백백교의 달콤한 교리는 한 줄기 구원이고 희망이었다. 그러나 백백교에 끌려온 사람들은 재산을 빼앗기고 부인과 딸을 교주에게 바쳤다. 교주 전용해의 행태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나라를 잃은 설움을 어떻게 말로 다할 수 있을 것인가?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 역사에서 일제 강점기는 통한의 시간들이었다. 일제 강점기 이전에도 크든 작든 외침을 겪곤 했지만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된 적은 없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폭압통치에 시달리던 가난한 민중에게 희망은 사치에 불과한 듯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줄기 희망을 꿈꾸게 해주는 이가 등장했다. 그는 바로 백백교 교주 전용해였다. 신선의 땅에서 불로장생한다는 백백교의 달콤한 교리는 한 줄기 구원이고 희망이었다. 그러나 백백교에 끌려온 사람들은 재산을 빼앗기고 부인과 딸을 교주에게 바쳤다. 교주 전용해의 행태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예나 지금이나 종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혼의 안식처가 되지만 때때로 인간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기도 한다. 많은 종교들이 ‘인간 구원’이라는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우리를 악의 수렁으로 빠트린다. 수백 명의 생명을 앗아간 백백교 살인사건은 대한민국이 건국되기 이전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교주 전용해가 죽었느냐 살았느냐 하는 의문이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에 그 의문을 풀기가 더 힘들어졌다. 그러나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보면 종교가 본질에서 벗어났을 때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스마트폰과 아이패드를 휴대하고 실시간으로 세상물정을 알 수 있는 오늘날에도 사이비종교에 속아 패가망신한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사이비종교는 상당 부분 백백교를 답습하고 있다. 전용해와 마찬가지로 사이비종교 교주들은 자신이 신의 계시를 받았다거나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며 종말론을 내세운다. 신격화된 교주와 종말론을 내세운 교리는 신자들을 불안에 빠트려 눈 뜬 봉사로 만든다.

그럴듯하게 포장된 사이비종교는 인류가 창조된 이래 끝없이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사이비종교의 뿌리는 인류의 역사만치나 깊다. 고려 시대에 한 사이비 승려는 자신을 살아 있는 부처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발을 씻은 물을 법수라고 속여 신도들에게 팔고, 남편은 밖에서 기도하게 하고 부인을 동굴 안에서 간음했다. 사이비종교는 인간을 오히려 황폐하게 만든다. 사이비종교는 ‘영혼의 구원’이 아닌 ‘부와 음탕한 생활’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에 빠지는 사람들은 대부분 목숨과 재산을 빼앗긴다.

한두 명이 아니라 300명을 죽였다고?

1940년 5월 5일, 경성지방법원의 대법정은 입추의 여지도 없이 방청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각 신문사 기자들이 취재하기 위해 달려왔고 일반인들도 희대의 살인사건 재판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재판정에는 이미 살인자들이 출두해 있었고 검사와 변호사까지 착석해 있었다. 이내 판사가 입장하고 서기의 호령에 따라 기립과 착석이 이루어졌다. 주심판사가 착석하자 검사가 논고(論告)를 펼치기 시작했다.

“문봉조, 김서진, 이경득, 김군옥, 이한종, 박달준은 백백교 간부인데, 문봉조는 129명, 이경득은 166명, 김서진은 169명, 김군옥은 121명, 이한종은 35명, 박달준은 51명을 직접 살해하거나 살해하는 데 가담했습니다. 이 사건은 천황폐하의 성려(聖慮)에 힘입어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는 2000만 조선 민중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원시 미개인으로 비쳐질 우려가 있을 정도로 잔혹하고 엽기적인 사건입니다. 피고인들은 교주 전용해의 측근으로 그가 음탕하고 포학(暴虐)하기 짝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신성한 종교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마츠모토 검사가 추상같은 목소리로 논고를 펼치자 법정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전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학살극, 총 인원 300명에서 380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백백교 간부들에 대한 논고가 이어지면서 한 사람의 살인 숫자가 100명을 넘어서자 방청석에서는 일제히 경악과 탄성이 흘러나왔다. 발굴된 시체만 전국에서 200구, 관련 피고인이 150여 명에 이르는 단군 이래 최대 최악의 살인사건이었다.

일본 경찰은 백백교 살인사건이 벌어지자 백백교 간부들을 추궁해 수백 명에 이르는 신도들이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들은 시체를 묻었다고 주장하는 곳을 파헤쳐 시체를 발굴하고 부검에 들어갔다. 자국민이었더라면 그렇게 했을까? 일본 경찰은 약 200여 구에 이르는 시체를 부검했으나 부검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자 나머지 시체에 대해서는 부검을 생략했다.

“이들은 닥치는 대로 살인을 하여 인간의 도리가 없었습니다.”
피고석에는 살인집단 백백교의 간부인 벽력사들이 줄줄이 포승줄에 묶여 앉아 있었다.
“교주 전용해는 살인을 지시했을 뿐 아니라 음란한 행동을 일삼아 첩이 10여 명이나 되었고 시녀들까지 두고 있었습니다.”
그때였다. 10여 명의 살인자 중에서 유일한 젊은 여성, 단발머리에 흰 저고리와 검정치마를 입고 있는 여성이, 검사의 준엄한 논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언가에 홀린 듯 기이한 목소리로 주문을 외고 있었다.
“백백백… 적적적… 흑흑흑….”
그녀의 피부는 하얗고 눈매는 서늘했다.

“피고 정삼례는….”
마츠모토 검사가 이름을 호명하자 주문을 외던 정삼례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고 눈을 치떴다. 마츠모토 검사의 눈이 그녀에게 향했다. 그 순간, 그는 얼음 같은 차가운 공포가 뒷덜미를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정삼례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눈의 흰자위가 동공을 하얗게 덮어버리고 있었다. 마츠모토 검사는 그 기묘한 눈에 가슴이 뛰고 소름이 돋았다. 그는 황급히 정삼례의 눈을 외면하고 구형 논고를 계속했다.
“예심에서 살인을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으나 4명을 살해하고 5명의 살인사건에 가담한 정황과 증거가 명백하므로 사형을 구형합니다.”

마츠모토 검사의 구형에 정삼례가 화들짝 놀라서 눈을 치떴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츠모토 검사는 벽력사들을 비롯한 11명의 백백교 간부들에게 줄줄이 사형을 구형했다.
“아니야, 난 아니야!”
속칭 부엉이부대라고 불리는 교주 전용해의 살쾡이 같은 밀정 정삼례는 사형이 구형되자 눈을 치뜨고 발악하듯이 소리를 질렀다.
“정숙!”
판사가 방망이를 두드리면서 주의를 주었다.<다음호에 계속>

   
 

책·소·개
위 내용은 <대한민국 12비사>(이수광 저, 일상과이상 간)의 일부 내용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책 속에 있습니다.

추리작가의 상상력과 역사 저술가의 눈으로 한국 현대사에서 비사(秘史)로 남은 사건들의 진실을 밝히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밝힌다. 이 책에서 살펴본 대한민국의 문제점은 좌익과 우익의 대립, 공직자의 섹스 스캔들, 정경유착, 공작정치, 사이비 종교의 성행, 노동자의 권익 문제와 폭력시위 등이다.

저자 - 이 수 광
대한민국 팩션형 역사서의 대가. 추리소설과 역사서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글쓰기와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대중역사서 영역을 개척해왔다.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바람이여 넋이여>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제14회 삼성문학상 소설 부문, 미스터리클럽 제2회 독자상, 제10회 한국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이수광 작가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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