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빼고 다 해본 이들의 이야기,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
결혼 빼고 다 해본 이들의 이야기,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
  • 유수정 기자
  • 입력 2013-01-14 17:39
  • 승인 2013.01.14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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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 <사진출처 = 연극열전>
[일요서울 | 유수정 기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 두 사람이 뭉쳤다.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애정만만세’에서 당당한 워킹우먼의 모습과 딸의 이혼, 전 남편과의 재회, 유방암 등에 아파한 가녀린 여성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줬던 배종옥. SBS 드라마 ‘피아노’를 통해 선보인 명연기가 10여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는 조재현.

이처럼 ‘배종옥과 조재현의 조합’이라는 타이틀은 개막 전부터 관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이들이 모여 50대 남녀의 애증을 그렸다. 사랑과 이별, 오해 속에 깊어가는 갈등을 표현한 작품에 더블 캐스팅된 정재은과 정웅인이 힘을 실었다.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이다.

▶ 30년간 지속된 고슴도치 사랑

고슴도치는 사랑을 할수록 상대방과 멀어진다. 함께 있고 싶어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따가운 가시가 상대에게 상처를 내기 때문이다. 이에 이들은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소유가 아닌 가슴을 내어주는 사랑을 한다.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 속 남녀 주인공은 이 같은 고슴도치 사랑에 아파하고 있다. 이들은 함께 하려 하다가도 그동안의 숱한 오해로 인해 서로를 멀리한다. 외로움에 사랑을 갈구하다가도 따가운 가시가 서로를 찔러 차마 가까이 할 수 없다.

평생 한 남자만을 사랑하고 원하지만 마음과 달리 늘 그를 밀쳐냈던 여자. 그녀의 친구이자 애인이며 영원한 맞수인 남자. 서로를 모르고 살아온 시간보다 알고 지낸 시간이 더 긴 두 사람.

황혼을 향해 걷고 있는 이들은 대학시절부터 시작된 사랑과 이별을 수차례 반복한 뒤에야 서로의 소중함을 느낀다. 늘 물고 뜯으며 싸우기만 할 것 같던 이들이 진정한 사랑에 대해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사랑의 가치를 깨달았을 땐 이미 어른이 돼 버린 뒤였다. 고슴도치 사랑에 아파하던 이들이 인생의 마침표를 향해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 매주 목요일, 인생을 논하다

저명한 역사학자 교수 정민과 은퇴한 국제 분쟁 전문기자 연옥의 관계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결혼 빼고 다 해본 사이’다. 두 사람은 대학시절 처음 만나 뜨겁게 사랑했으며 가슴 아픈 이별도 경험했다. 황혼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친구이자 연인처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들 사이에는 딸아이도 존재한다. 이쯤 되면 이들의 묘한 관계가 모두 설명되는 듯하다.

그러나 이토록 가까운 사이에도 비밀은 존재했다. 암 말기 판정을 받은 연옥이 은퇴 이유를 묻는 정민에게 “단순히 쉬고 싶어서”라고 둘러댄 것. 아무것도 모르는 정민은 속이 쓰리다는 연옥에게 낙지볶음을 권하는 등 철부지 어른의 모습을 보인다.

늘 정신을 쏙 빼놓곤 돌연 사라지던 정민. 어쩐 일인지 그는 연옥의 은퇴를 기념하며 진지한 만남을 가져볼 것을 제안한다. 매주 목요일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자는 제안에 연옥도 싫지만은 않은 눈치다.

그러나 ‘비겁함’, ‘역사’, ‘죽음’ 등 추상적 주제로부터 시작된 이들의 지적인 대화는 이내 그들 자신의 모습으로 연계돼 서로간의 오해의 골을 분명히 보여줬다.

이처럼 둘만의 특별했던 목요일은 서로가 함께했던 추억을 두 사람이 얼마나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만들었다. 과거의 상황을 서로가 다르게 느끼고 있었단 사실은 이들을 또 다시 깊은 오해의 자락으로 내몰기에 충분했다.

▲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 배종옥, 조재현 <사진출처 = 연극열전>

▶ 혼란에 빠진 두 남녀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은 70년대 프랑스 대표 페미니즘 작가로 꼽히는 마리 카르디날의 장편소설 ‘샤를르와 룰라의 목요일’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원작의 역사학자 샤를르는 역사학 교수 서정민으로, 종군 기자 룰라는 은퇴한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연옥으로 재탄생했다.

샤를르와 룰라, 정민과 연옥. 서로의 관계에 대해 확실한 정립을 거부한 두 커플은 서로 다른 시대·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녀 관계에서 발생하는 숱한 오해와 갈등의 표본을 보여줬다.

이는 남녀 사이의 문제가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발생해 왔다는 점을 확연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어정쩡한 이들의 관계와 표현 방식에서 비롯되는 오해와 갈등은 전 세계인 모두가 공감했다. 갈등의 원인이었던 정민의 무책임과 비겁함, 연옥의 거짓말 역시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부분 중 하나다.

마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대표적인 예로 자리한 듯한 이들은 남녀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숱한 갈등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애매모호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으며 수십 년이라는 시간동안 서로를 오해한 채 지내야만 했다.

▶ 어른들의 성장 동화

자신의 꿈을 좇기 바빠 주변을 생각할 여유를 놓친 연옥과 비겁함이라는 가시로 자신을 포장했던 정민. 결코 변할 것 같지 않던 이들은 성장을 통해 결국 서로를 온전히 바라보는 법을 깨달았다.

개인 주체로서는 성공적인 어른이었던 이들이 50을 훌쩍 뛰어넘은 나이에 지독한 성장통에 아파하고 이를 통해 성장을 거듭해 간 모습은 ‘성장’이 비단 아이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란 것을 확연히 보여준다.

작품은 친구와 연인사이라는 독특한 커플의 에피소드를 통해 남녀의 본질적 차이와 인생에 대해 논했다. 매주 목요일마다 특별한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는 독특한 설정은 친구와 연인 사이를 오가는 인텔리(Intelli) 커플의 로맨틱한 우정과 사랑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또 미숙한 존재에서 성숙한 존재로의 변화를 의미하는 ‘성장’을 어른들의 방식에 맞게 풀이한 작품의 전개는 젊은이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통찰을, 40-50대에게는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매개체로 자리하며 남녀노소를 모두 어우르기도 했다.

이밖에도 주인공의 심리를 대변하는 과거의 정민과 연옥, 그들과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딸 이경과 그녀의 남자친구 덕수 등 입체적 인물 구조가 주는 연극적 재미도 관람 포인트다.

사랑과 이별, 갈등과 화해를 반복하며 완벽한 애증관계로 자리 잡은 이들의 이야기,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은 다음달 11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계속된다.

crystal07@ilyoseoul.co.kr

유수정 기자 crystal0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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