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해 감사원은 “지난해 11월 중순 유전사업 비리 의혹이 담긴 투서가 접수돼 관련 부서에서 진위 파악에 나섰다”고 투서접수 사실을 인정하고 “(투서자를 상대로) 내용의 진위 확인 과정을 거친 후 11월 말 우리은행 등 관련 기관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감사원이 공식적으로 철도공사 등 관련 기관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감사에 들어간 것은 A씨의 투서가 접수된 지 3개월 뒤인 올 2월이었다. 때문에 감사원은 3개월 동안 사건을 방치해 왔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청와대는 투서접수 사실에 대해 “민정실 등 청와대 유관루트를 통해 투서접수 경로 및 내역을 확인해 보았지만 러시아 유전사업의혹과 관련된 투서는 없었던 것으로 지금까지 확인됐다”고 부인했다.
문제는 감사원과 청와대(청와대측은 공식적으론 투서접수 사실이 없다는 입장이다)가 이같은 내용의 투서를 접수하고도 사전인지를 부인하고 있는 이유와, 감사원이 투서가 접수된 지 3개월여가 지난 후에야 철도공사에 대한 감사를 본격 착수하게 된 배경이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은 “감사원이 이광재 의원 연루 의혹 등 정치권이 관여된 정황을 포착하고 자체 조사를 중단했다”고 주장해 왔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지난 1일 김만수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이 건과 관련해 청와대에는 투서가 접수되거나 직접 조사에 나선 적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 사업 의혹이 이광재 의원 개입설 및 청와대 사전 인지설 등 권력형 비리의혹으로 번지자 청와대가 직접 나서 ‘근거없는 의혹’의 확산을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대변인은 또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 계약 관련 의혹에 대해 의혹이 없도록 감사원이 신속 정확하게 진상을 밝혀주길 기대한다”며 “이광재 의원에 대해서는 청와대 차원에서 조사를 한 사실이 없으며 감사원이 감사를 진행 중인 만큼 감사 결과를 받아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요서울>의 취재 결과 러시아의 유전사업 의혹이 불거지기 전인 지난해 11월 철도공사 간부 A씨가 유전사업과 관련된 비리 및 문제점 등을 담은 투서를 청와대와 감사원에 각각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투서에는 철도공사가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 및 과정,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의 전망, 문제점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씨의 투서는 청와대 및 감사원의 특별조사국으로 건네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감사원의 경우 투서 내용의 진위여부에 대해 당사자를 상대로 조사를 벌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은 이에 대해 “지난해 11월쯤 철도공사가 추진 중인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의 의혹이 담긴 투서가 접수됐다”며 “당사자를 상대로 확인 절차를 거친 뒤 12월1일 우리은행으로부터 대출관련 자료 일체를 제출받았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사전에 청와대의 조사 요청이나 사전 교감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그런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그러나 감사원이 우리은행에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과 관련된 대출경위 등의 자료를 제출받고도 왜 곧바로 조사에 착수하지 않았느냐는 새로운 의문을 남기고 있다. 감사원은 투서접수일로부터 본격적인 감사에 착수한 지난 2월 중순까지 3개월 가량 사실상 이 사건을 미뤄두고 있었다.
감사원이 이 의원 연루 등 정치권이 관여된 사실을 파악하고 조사를 중단했거나 청와대 및 여권과 사전 교감을 나눈 것이 아니냐는 한나라당의 주장도 이같은 맥락에서 나오고 있다.감사원은 특히 이번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민간 유전 사업자인 쿡에너지 대표 권광진씨로부터 이광재 의원이 사업에 관여돼 있다는 진술을 받고도 이에 대한 추가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이러한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감사원은 이에 대해 “권씨가 직접 듣고 확인한 것이 아니어서 나중에 한 번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감사원과 별도로 청와대가 투서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와 인지하고 있었다면 청와대의 어느 라인까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도 이번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핵심 포인트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보통 공식적인 절차로 투서가 접수되면 종합민원실을 거쳐 민정수석실에 전달되는 경우와 인터넷을 통해 해당 부서에 전달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러한 경로를 통해 투서가 전달될 경우에는 정확한 투서 경로가 확인되지만 간혹 인편(청와대 인맥이나 지인을 통할 경우)을 통해 투서가 접수될 경우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느 경로로 전달됐든 간에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이러한 투서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가 대변인을 동원하면서까지 ‘투서 접수 사실’을 부인한 배경에는 유전개발 의혹이 자칫 청와대로 불똥이 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이 우세하다.
유전사업 불발, 숨가빴던 30일
권력 핵심부 ‘입김’작용 했나
10월 16일에서 11월 중순 사이 유전개발 사업 급제동청와대 인지설 등 드러날 경우 참여정부 도덕성 타격이번 사건이 불거진 배경과 관련해 정가에서는 몇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선 이광재 의원을 주축으로 하는 연세대라인과 안희정씨를 주축으로 하는 고려대라인의 파워게임으로 보고 있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러한 사실을 감추려는 연대라인과 이를 표면화 시키려는 고대라인의 권력 암투 과정에서 외부로 흘러나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또 철도공사가 지난해 10월 중순까지는 문제가 없어 보이던 이 사업을 지난해 11월 중순 갑자기 중단하게 된 배경에는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은 “철도공사가 권력을 업고 일사천리로 진행시키던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이 10월 16일부터 11월 중순 사이에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됐다”며 “의문의 30여일간 무슨 일이 있었느냐가 이번 사건의 열쇠”라고 주장하고 있다. 철도공사가 사할린 유전개발에 손을 댄 것은 2004년 8월. 철도공사가 러시아 정부에서 사할린 유전개발에 대한 허가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돌연 러시아 사업 주최인 페트로사하에 계약 파기를 통보한 11월 15일까지 철도공사는 그야말로 숨가쁜 3개월을 보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권 의원의 주장대로 10월 16일부터 11월 중순까지 철도공사의 30여일간 행적이다. 철도공사는 8월 17일 한국쿠르드오일(KCO)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유전개발 사업에 뛰어들어 9월 3일 페트로사하 주식 97.16%를 620만달러에 매입키로 계약하고 10월 4일 러시아에 계약금을 송금하기까지 일사천리로 사업을 진행시켜 나갔다.
철도공사는 10월 15일 ING뱅크를 통해 러시아측에 ‘잔금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의 확약서를 넘겨줄 때까지만 해도 실제로는 잔금이 준비되지 않았음에도 불구, 별다른 걱정 없이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11월로 들어서면서 우리은행측에 요청한 대출건이 거부당하는 등 순탄했던 유전개발 사업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신광순 철도공사 사장은 11월 8일 황급히 이광재 의원을 찾아갔다. 석유개발 기금을 융자받는데 도움을 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의원은 “철도공사가 그런 사업도 하느냐”며 돌려보냈다고 주장했다. 우연의 일치일지는 몰라도 이때는 이미 철도공사 간부를 통해 청와대와 감사원에 러시아 석유개발 공사와 관련된 비리의혹 투서가 접수된 뒤였다. 철도공사가 추진하던 러시아 석유개발 사업이 난항을 겪게 된 것과 청와대 사전 인지설이 무관하지 않음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청와대 인지설 등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오일게이트와 관련한 실체적 진실은 차치하더라도 이 의원은 물론 참여정부도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일게이트 핵심 인물 권광진 쿡에너지 대표 단독인터뷰
“러 유전사업 권력에 의해 중단됐다”
사할린 유전개발 사업을 최초로 계획했던 권광진 쿡에너지 대표는 <일요서울>과의 여러차례 통화에서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과 관련, “가만 두면 잘 나갈 수 있는 사업이 권력에 의해 중단됐다”고 주장했다. 권씨는 열린 우리당 이광재 의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 사업에 연관돼 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킨 인물로, 러시아 유전개발 비리 의혹이 사정당국에 투서되자 철도공사가 리베이트 등 각종 의혹이 불거질 것을 우려해 무리하게 계약을 파기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음은 권씨와의 전화인터뷰 요지.
- 이 의원이 이번 사건에 연관돼 있다고 주장해 왔는데 사실인가. ▲이 의원과 한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전씨가 이의원 측과 수없이 접촉해 왔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 사채업자가 청와대에 투서하자 철도공사가 리베이트 등 각종 의혹이 불거질 것을 우려해 이번 사업을 무리하게 파기했다고 주장해 왔는데. ▲(사채업자인지는) 밝힐 수 없지만 10월말에서 11월 초 청와대에 투서가 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 그러한 사실을 어떻게 알았나.▲ 감사원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알게 됐다.
- 철도공사에서 사업을 중단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번 사업은 가만두면 엄청난 국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이었지만 권력에 의해 중단됐다. 지금이 5·6공 시절도 아니고….
- 권력이라면 이광재 의원을 지칭하는 말인가. ▲지금으로서는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검찰이 압수수색하고 계좌추적하면 모든 실체가 밝혀질 것이다. 지금 내 전화가 도청 당하고 있다.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얘기를 할 수가 없다.
이혜숙 softpe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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