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력 엘리트 트랜스젠더 “의외로 많다”지난 11일 KBS ‘추적 60분’에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 한 트랜스젠더 L(34)씨와 그의 약혼자 K(36)씨의 얘기가 소개됐다. 약혼자 K씨는 사귄지 5개월만에 사랑하는 여자가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지만, 결국 사랑을 선택했다. 이들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4년간의 열애끝에 올 11월 결혼할 것으로 알려졌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 커플이 고학력 엘리트라는 사실이다. 결혼을 앞두고 약 한달전 강남의 H성형외과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은 L씨는 유학까지 다녀온 후 대기업 대리로 근무한 엘리트로 밝혀졌다. 이는 이태원 등지의 밤무대에서 어려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대부분의 트랜스젠더들과 비교되는 것으로, 고학력 엘리트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증명해보임으로써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드러나지 않을 뿐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중에도 의외로 많은 트랜스젠더가 존재한다”고 입을 모은다. 의사들에 따르면 트랜스젠더는 성전환 수술을 한 이들만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육체적인 성과 달리 성정체성에 따라 사는 사람과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서도 수술은 하지 않는 사람도 포함된다. 실제로 현재 공식집계된 국내 트랜스젠더의 숫자는 4,000여명이지만 정작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은 300명 수준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편견 때문에 성전환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 혹은 성전환을 했으면서도 트랜스젠더임을 밝히지 못하는 경우를 포함하면 실제 트랜스젠더의 숫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있다.
한 성형외과 의사는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절망스러운 성장기를 보내는 과정에서 자살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며 “사회에서 격리된 채 살아가면서도 평범한 남성과의 결혼을 꿈꾸는 트랜스젠더들에게 L씨는 부러움의 대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음지에서 양지로…FTM 증가추세”성전환 수술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동아대학병원 성형외과 김석권(53) 교수는 지난 1986년 첫수술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220여건의 성전환 수술을 해왔다. 국내에서 이뤄진 성전환 수술의 약 80%가 김교수의 손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감안해볼 때 그가 ‘트랜스젠더의 아버지’라 불리는 것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김 교수는 “그동안 음지에 갇혀 지낼 수 밖에 없던 이들이 용기를 내어 성전환 수술을 받으러 오는 경우가 증가했다”며 “이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완화되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단 하루만이라도 여자로 살아보고 싶다’며 쉰살이 넘어서 수술을 하러 오는 사례도 있다는 것. 수술은 MTF(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와 FTM(여성에서 남성으로 전환)으로 구분되는데 MTF수술이 3시간 정도의 시간과 1,200~1,300만원의 비용을 필요로 하는데 비해 FTM 수술은 훨씬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김교수의 말이다.
김교수는 “과거에는 MTF 수술이 주를 이루었지만 최근에는 FTM 수술에 대한 문의가 부쩍 증가했으며, 지금까지 45건의 FTM 수술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누구나 원한다고해서 성전환 수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 교수는 “트랜스젠더는 동성애자나 성도착증 환자와 엄연히 다르다”며 “순간의 잘못된 판단과 성적 호기심으로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정신과적 진단을 포함한 사전 검사가 철저하게 이뤄진 후에야 수술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동아대 김석권 교수 인터뷰
“하리수 잊지못할 환자”지금까지 220명 이상의 트랜스젠더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준 김석권 교수는 “호기심과 편견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이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환자중 기억에 남는 사람은.▲ 아무래도 ‘하리수’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하리수를 수술한 때는.▲ 그가 만 20세 되던 1995년쯤으로 기억한다.
- 당시 상담하러온 하리수는 어땠나. ▲ 그는 수술전에도 일반 남자와는 달랐다. 얼굴이나 몸매 선이 곱고 무척 예뻤다. 그래서 수술하면 ‘최고의 작품’이 나올 것을 확신했다.
- 기본 바탕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그렇다. 기본 외모를 보면 수술 후 얼마나 완벽한 여성으로 변신할지 짐작할 수 있다.
- 하리수와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수술 후 ‘미스코리아’에 나가보라”며 권유하자 그가 무척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 보람을 느낄 때는.▲ 제 2의 인생을 찾아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
- ‘제 2의 하리수’를 꿈꾸는 이들이 있을텐데.▲ 하리수를 부러워하는 이들이 많다. 수술 후 연예인을 희망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태국 원정수술 ‘조심’홈피 통해 노골적 홍보…수술부작용 많아김 교수는 수술 전 정확한 진단과 준비과정 없이 수술을 할 경우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태국에서 수술을 하고 오는 경우도 있는데 부작용과 합병증으로 다시 재수술을 받으러 오는 경우도 상당수”라는 것이 김교수의 말이다. 한 포털 사이트의 카페에서는 태국의 성전환수술을 노골적으로 홍보하는 글까지 게재되어 있다.
그러나 수술에 대한 준비과정이나 수술 가능 조건 등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말그대로 ‘원한다면 누구나 저렴한 가격으로 수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태국에서 5년째 ‘성형 가이드’를 하고 있다는 김진오(27·가명)씨는 “태국은 성전환 수술을 하기에 편리하고 오픈된 환경”이라며 “한국처럼 정신과 진단서같은 서류나 복잡한 검사도 필요없으며 호르몬을 투여한 분이라면 언제든지 수술이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야니병원, 쫄라롱콘시립대학병원 등 구체적인 병원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가슴수술, 커트수술을 합친 패키지 여행상품까지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태국에 거주하고 있는 김씨는 정작 20일 전화통화에서 상당히 말을 아끼는 등 조심스러운 반응이었다. 특히 성전환 수술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신상이나 수술비용, 절차 등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했다.
이수향 thelotu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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