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 급증
최근 우리사회에서 새로운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는 일본의 ‘히키코모리’와 비슷한 개념의 사회병리현상이라 할 수 있다. ‘히키코모리’는 ‘틀어박히다’는 뜻의 일본어 ‘히키코모루’의 명사형으로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히키코모리’들은 일본에서는 이미 1970년대부터 출현하기 시작해 수년전부터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어 오고 있다. 일본 후생성은 6개월 이상 방안에만 틀어박혀 외부와의 교류를 끊는 젊은이들을 ‘히키코모리’로 분류하고 있는데, 현재 일본 내 히키코모리들은 최소 일본 인구의 1%에 육박하는 12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제는 히키코모리가 더 이상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2002년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2000년 1월부터 2002년 5월까지 한 정신과의원에서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단을 받은 13~30세 85명 중 무려 36%인 31명이 히키코모리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를 주도한 이시형 박사는 “숨어지내는 성향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현재 우리나라의 히키코모리들은 훨씬 많을 것”이라 단언했다.
방콕족과는 달라…
우리나라에서 히키코모리는 1990년대 중반 무렵부터 ‘방콕족’이라는 용어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방콕족’은 할일없이 집에서 빈둥거리는 사람, 항상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나 취직을 하지 못한 ‘백수’를 우스개 삼아 일컫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히키코모리와 방콕족은 엄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히키코모리는 단순히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 못해 나른한 생활을 하는 부류가 아니다. 그들은 ‘사회 부적응자’로서 본인 스스로 사회와 담을 쌓고 세상과 단절된 채 장기간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에 대한 철저한 보호막의 방편으로 세상에서 스스로를 격리시켜버린 이들은 짧게는 수개월에서 평균 3~4년 동안 은둔하며, 심각한 경우 10년 이상을 은둔하는 경우도 있다.놀라운 사실은 히키코모리가 청소년기에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증세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 히키코모리들의 평균 연령은 26.7세로 나타났다. 즉 히키코모리는 청소년기에 잠깐 스쳐가는 방황이나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라 20대 이상의 성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사회적인 병리현상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히키코모리’ 강씨의 일상
“꼬박 3일 동안 누워서 서른편의 영화를 봤다. 오늘이 며칠인지….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내가 살아있는 것인지조차 분간이 가지 않는다.” 공포 영화 카페 운영자인 강기준(27·가명)씨가 그의 카페에 남긴 글이다. 근 4년째 히키코모리로 살고있다는 강씨에게 이런 생활은 평범한 일상일 뿐이다. 7일 메신저 대화에서 그는 “세상을 아예 잊고 산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그는 두꺼운 커튼이 쳐진 어두컴컴한 방안에 틀어박혀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고는 아예 나오지 않는다. 밥도 주로 식구들이 잠든 새벽에 빵과 과자, 라면 등으로 떼우기 일쑤다. 당연히 가족들과 대화는커녕 얼굴 마주칠 일조차 없다. 그는 4년째 제대로 된 외출을 해본 적이 없다.
외출이라 해봤자 집 근처 편의점에 담배를 사러 나가는 일이지만 그것도 모두가 잠든 늦은 한밤중이나 새벽녘에 이뤄진다. 강씨는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공포영화를 보거나 인터넷에 몰두하며 보내며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하고 있다. 한창 경제활동을 할 나이임에도 그는 직장생활을 해본 적이 전무하다. 사회생활이라고는 고등학교 졸업 후 석달간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전부다. 잔혹한 스플래터와 슬래셔 무비를 보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는 인터넷. 그는 하루 평균 십여편의 공포영화를 보며 시놉시스와 주요 장면을 캡쳐하며 시간을 보낸다. 친구들과의 연락이 끊긴지 오래인 강씨는 휴대전화도 없다.
오직 공포 영화 카페를 운영하며 불특정 익명의 카페 회원들과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나누는 메신저 대화를 즐길 뿐이다. 강씨가 처음부터 히키코모리였던 것은 아니다. 중고등학교때 심각한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다는 그는 그 후유증으로 사람을 대하기가 무척 힘겨웠다고 고백했다. 설상가상으로 군제대 후 취직에 연달아 실패한 후 그는 극심한 우울증과 무기력함에 빠져들었다. 수십차례 원서를 내봤지만 취업의 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고 그는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결국 강씨는 어두컴컴한 방안에 혼자 틀어박혀 지내는 ‘은둔형 폐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과 자살하지 않고 살아있는 자체가 기적”이라는 그는 “신체절단이나 피를 뿌리는 잔혹한 영화를 보다보면 과거에 겪은 수모와 현재 상황을 잊을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해진다”며 “백번이상 본 영화도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부모가 아무리 설득해도 좀처럼 그의 방문은 열릴 줄 모른다. 보다못해 억지로 문을 열면 강씨는 폭언과 동시에 거의 광적으로 분노한다. 그는 “대화를 시도하는 어머니와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다가 밀쳐서 넘어뜨린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나의 퇴행적 행동과 공격적인 성향에 부모도 두 손 든 상태”라고 전했다. 그러나 정작 강씨는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 이렇게 사는 것이 편하다”고 잘라 말했다. 계절이 바뀌는지조차 잊고 지낸다는 그는 오늘도 그만의 세계에 갇힌 채 세상과 단절된 하루를 살고 있다. 그의 히키코모리 생활은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다.
# 히키코모리 원인 다양, 질병은 아니지만 치료 받아야 …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더 이상 히키코모리의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그들은 “일찌감치 일본 사회의 병폐로 자리잡은 히키코모리는 더 이상 이웃나라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히키코모리의 급증은 시간문제”라고 경고한다. 사회학자들은 히키코모리의 원인으로 핵가족화로 인한 이웃과의 단절,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한 개인주의화, 급속한 사회변화에 따른 긴장감과 스트레스, 학력 지상주의에 따른 압박감, 졸업후에도 취업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한 부담감, 갑작스런 실직 등 여러 요인을 꼽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들 역시 이러한 사회적 상황과 환경에 따른 개인의 불안한 심리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동남정신과의원의 여인중 박사는 “학력지상주의와 권위적인 가족 관계, 핵가족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인터넷의 보편화, 그리고 지속적인 경제 불황으로 인한 실직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주된 이유로 들면서 “대부분 넉넉한 가정 형편에서 자란 사람들 중에 자기방어를 위해 이 같은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확실한 것은 히키코모리가 사회심리적인 구조로부터 양산되는 복합적인 원인에 근거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남보다 앞서나가려는 강박관념, 마치 전쟁터와 같은 치열한 경쟁사회에 대한 공포가 전도유망한 젊은이들로 하여금 아예 세상의 문을 닫아버리게 만든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여인중 박사는 “히키코모리는 질병은 아니지만 계속 방치할 경우 정신과적 질환으로 발전할 위험이 크므로 심리 치료를 의뢰하거나 꾸준한 상담을 받는 등 신속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심신이 만신창이 폐인되기는 시간문제
히키코모리 생활은 건강에도 치명적이다. 보통 온종일 컴퓨터에 매달리며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는 이들은 세 끼를 라면 등 분식으로 해결하는 ‘주침야활(晝寢夜活)’ ‘삼시면식(三時麵食)’을 하는 공통점이 있다. 의사들은 “히키코모리 생활을 지속하면 폐인되기는 시간문제”라며 “심할 경우 혈전증으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고 경고한다. 장시간 같은 자세로 있으면 다리 정맥에 피가 돌지 않아 굳어버리는데 혈전이 폐로 흘러들어가 호흡곤란과 폐색전증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 혈전증은 장시간 컴퓨터에 몰두하다 갑자기 사망하는 사고의 원인이 되는 위험한 병이다. 또 인스턴트 식품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히키코모리들은 심각한 영양 불균형으로 각종 성인병에 노출될 뿐 아니라 불규칙한 식습관은 과민성대장증후군, 악성 변비 등 만성 소화기질환으로까지 이어진다. 히키코모리들은 정신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진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히키코모리들은 대체로 음울하고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부모에게도 폭언을 수반한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 ‘히키코모리’족에서 ‘캥거루’족으로 이어져, “부모가 무슨 죄?” 가정도 쑥대밭
히키코모리는 단순히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가정상담센터에는 히키코모리로 인해 단란했던 한 가정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사례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34살인 아들이 대학을 졸업한 후 5년째 방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또래들 같으면 직장생활을 하고 가정도 꾸릴 나이인데 언제까지 무작정 기다려줘야할지…”“아들이 몇 년째 저러고 있으니 앞으로 살아갈 희망이 없다” 5년째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고 있다는 A씨의 어머니(62)의 말이다.A씨는 서울의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지만 취업은 아예 시도도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서른 중반의 나이지만 아무런 경제적 능력이 없을뿐더러 독립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 A씨의 어머니는 “수년째 어두운 방안에 틀여박혀 있다보니 180cm의 키에도 불구하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로 60kg도 나가지 않을 것 같다. 인간의 몰골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A씨의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20대 초반에 조울증 증세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는 그의 상태는 대학을 졸업한 직후 급격히 악화됐다. A씨는 급기야 어느날 갑자기 아예 말문을 닫아버리고 자기 방에서 한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A씨의 히키코모리 생활은 현재까지 5년째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히키코모리 A씨는 자연스럽게 ‘캥거루족’으로까지 전락하고 말았다. ‘캥거루족’이란 학교를 졸업한 후 자립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취직을 하지 않거나,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20~30대의 젊은이들을 일컫는 용어다. 부유한 형편에 유난히 똑똑하던 외아들 A씨가 명문대에 진학했을때 부모의 기대는 여느 부모보다 컸을 터. 그러나 A씨의 갑작스런 은둔생활이 장기적으로 이어지자 영문을 알리없는 그의 부모는 “살아도 사는게 아니다”라며 하소연하고 있다.
그녀는 “주변사람들이 속도 모르고 ‘아들은 요즘 무슨 직장다니냐’, ‘결혼은 언제 시킬거냐’는 얘기를 수시로 물어올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며 “이제는 나까지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털어놨다. ‘자식 얘기’ 로 일색인 계모임이나 친목회에는 발길을 끊은지 오래며, 하루종일 집안에 틀여박혀 있는 아들의 모습을 드러내기 싫어 집안에 손님이 오는 것도 막게 된다는 것.A씨의 어머니는 “자립할 새 그녀는 “환갑이 넘은 나이임에도 다 큰 아들 뒷바라지를 하는 것에 정말 지쳤다”며 “다 늙은 부모가 무슨 죄냐”고 반문했다. 그녀는 “A로 인해 우리 가정은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버렸다”며 “잘나가는 아들한테 얹혀서 덕 볼 생각도 없었지만 아들이 저 상태로 우리에게 평생 얹혀살 것을 생각하면 앞이 깜깜하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수향 thelotu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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