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로 3심…유영철 사형 최종 확정
지난 9일 대법원 1부(주심 강신욱 대법관)는 지난 해 여름 연쇄살인 사건으로 온 국민을 전율케 했던 살인마 유영철씨에게 사형을 확정했다. 유씨는 노인과 여성, 정신지체 장애자 등 21명을 살해, 이중 시체 11구는 토막내 암매장하고 3구는 불에 태워 살인, 사체손괴 및 유기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그에 대한 재판은 6개월 만에 ‘사형 확정’으로 마무리됐지만 지난 해 12월 13일 1심 재판에서 받은 ‘사형선고’가 ‘사형확정’이라고 봐야한다.유씨는 1심에서 서울 이문동 살인사건을 제외한 20명에 대한 살인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후 유씨는 항소하지 않아 1심에서 사형이 확정된 것이다.
유씨의 재판이 3심까지 이어지게 된 것은 검찰이 항소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1심과 2심에서 유씨의 혐의 중 이문동 살인사건이 무죄가 되자 검찰은 항소를 했다. 그러나 지난 9일 대법원은 이문동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적절했다고 판시함에 따라 이 사건은 미궁으로 빠지게 됐다.대법원은 “이문동 사건은 핵심증거로는 피고인의 검찰 및 첫 공판 자백이 있지만 이는 피해자의 상처 부위와 일치하지 않고 자백 경위나 동기에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문동 사건이란 작년 2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한 골목길에서 전모(24·여)씨가 흉기에 찔려 살해된 사건이다. 유씨는 경찰에서 이 사건이 자신의 범행이라고 진술했지만 공판과정에서 “경찰의 회유로 허위진술했다”고 번복했다.
사형수들이 떨고 있다
유씨의 사형이 최종 확정됨에 따라 국내 사형대기 기결수는 59명에서 60명으로 늘었다.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사형집행은 김영삼 정부 말기인 지난 1997년 12월 이루어진 23명에 대한 사형집행이다.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현재까지 7년 5개월 동안 사형은 한건도 집행되지 않았다. 현재 유씨를 비롯한 사형수들은 전원 살인범죄자다. 이중 48명은 2명 이상을 살해한 혐의다. 유씨를 포함한 3명은 10명 이상을 살해한 혐의다. 유씨에 대한 재판이 대법원에서 사형확정으로 마무리되자 다른 사형수들이 떨고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유씨가 사형제도 폐지운동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것과 지난 김영삼 정부 시절 23명에 대해 사형집행을 할 때 사형선고를 받은 순서대로 사형이 집행됐다는 점에서 유씨 사형집행 전 기존 기결수들부터 집행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지난해 사형제 폐지론이 불거져 나왔을 때 ‘유영철 사건’이 터져 “극악범은 사형시켜야 한다”는 여론 때문에 ‘사형제 유지론’이 사회적으로 우세한 실정이다. 사형제 폐지에 희망을 걸고 있던 기결수들을 불안하게 만든 것이다. 이 때문에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유씨는 다른 기결수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997년 12월 23명에 대해 사형을 집행할 때 사형선고를 받은 순서대로 사형을 집행했다는 것이 기결수들을 더욱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현재 유씨를 비롯한 사형수 59명은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등 5곳의 구치소에 분산돼있다.형법에 따르면 사형은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법무부장관의 명령으로 집행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이는 꼭 지켜야 하는 강행규정이 아니다. 법무부장관의 명령이 안 떨어지면 10년이 지나도 집행하지 못한다.
지난 1992년 사형이 확정된 원모씨의 경우는 현재 사형수 신분으로 13년을 지내고 있다. 원씨는 부인이 한 종교에 빠져 가정을 등한시한다는 이유로 해당 종교회관에 불을 질러 15명을 사망하게 한 혐의다.유씨가 최종적으로 사형확정을 받음에 따라 “유영철을 빨리 사형시키라”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 때문에 사회적 정서를 감안해 유씨에 대한 사형집행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특히 ‘유영철 사건’으로 인해 ‘문명국가에서 극악범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의 형벌은 사형이다’라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어 극악 범죄를 저지른 다른 기결수들에게 결국 ‘신속한 사형 집행’의 불똥이 튄 것이다.‘사형집행은 사형선고를 받은 순서대로 한다’라는 특별한 규정은 없지만 지난 1997년 23명을 사형집행했을 때처럼 사형선고를 받은 순서대로 집행할 수 있다는 추측이 59명의 기결수들을 떨게 하고 있다. 사형이 최종 확정된 기결수들은 언제, 누가 사형이 집행될지 알 수가 없어 하루하루를 긴장과 공포 속에서 산다고 한다. 이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도 살았구나”라고 말한다는 것.
사형집행은 보안속에서 이루어져…
사형 집행은 극비리에 이루어지며 일요일이나 국경일 등 휴일에는 집행하지 않는다. 사형은 집행 하루 전 혹은 몇 시간 전에 법무부장관의 명의로 된 공문이 교도소에 하달된다. 교도소장은 보안속에서 사형 집행에 참여할 몇 명의 직원들을 선정하고 각자의 임무를 부여한다. 사형장에는 검사, 교도소장, 교도관, 성직자, 의사 등이 입회한다. 사형수의 유언이 끝나면 사형수와 입회인 사이에는 커튼이 내려진다. 그리고 사형수의 얼굴에 흰 천이 씌워지고 목에는 굵은 줄이 걸린다. 이후 사형수는 지하실 공간으로 떨어져 목매달려 질식, 사망하게 된다. 10년 동안 사형집행이 한 건도 없으면 그 나라는 국제사회에서 ‘사형 없는 나라’로 분류된다. 만약 2007년까지 국내에서 사형집행이 없으면 한국도 ‘사형 없는 나라’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유씨 같은 극악범 때문에 사형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유씨와 다른 기결수들에 대한 법무부 결단에 관심이 모아진다.
김정욱 j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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