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진심캠프 60일간의 보고서- ① “단일화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안철수 진심캠프 60일간의 보고서- ① “단일화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 홍준철
  • 입력 2013-01-08 10:51
  • 승인 2013.01.08 10:51
  • 호수 975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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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캠프 첫 출근 ‘정치개혁=정권교체’ 태동
▲ <사진=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안철수 현상은 끝난 것인가. 아니면 안철수의 정치 실험이 끝난 것인가. 18대 대선이 ‘안철수’로 시작해 ‘안철수’로 끝났다는 민주당내 원망섞인 목소리도 여전하다. 필자는 안철수 진심캠프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게 된 계기도 이에 대한 궁금증의 발로였다. 1년 동안 안철수 현상이 지속된 그 비밀을 알고 싶었다. 또한 인간 안철수를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흔쾌히 ‘무보수 자봉’에 지원했다. 10월13일 첫 출근해 18대 대선 바로 전날까지 안 전 후보와 함께했다. 60여일간 짧지 않은 시간을 안철수 캠프에서 보내면서 기쁨보다는 아쉬움이 더 남는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 보고서는 안철수 캠프 분석대응실에 근무하면서 전쟁같은 하루하루를 시간의 흐름을 따라되도록 사실관계를 위주로 객관적으로 담을 예정이다. 필자는 이 보고서가 새정치와 정권교체를 기대했지만 기득권 벽에 부딪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안철수 전 후보와 지지자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길 소망한다.

이력서→평판조사→2회 면접
‘안철수 캠프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9월19일 안철수 후보가 출마선언을 발표하는 날이었다. ‘낡은 정치’를 걷어내고 ‘새정치’를 하겠다는 안 후보의 약속과 함께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겠다’는 모습은 나에게 커다란 감동과 충격으로 다가왔다. 서대문구 구세군 아트홀에 모인 1000여 명의 지지자들은 환호를 보냈고 안 후보는 특유의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동시에 야권 지지층들은 ‘정권교체’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표출했고 ‘박근혜 대세론’이 사라지는 계기가 됐다.

이후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10여년간 몸담았던 기자 생활을 접고 가야했지만 ‘안철수만이 박근혜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는 정치권 선배에게 부탁해 안철수 진심캠프에 이력서를 보냈다. 하지만 답은 금방 오질 않았다. 10월달로 접어들었지만 연락은 없었다. 나에게 기회가 온 것은 김성식 본부장이 안철수 캠프로 영입되면서부터다. 평소 친분을 이어가던 김 본부장이 진심캠프에 들어가면서 추천해 본의아니게 면접도 없이 들어가는 특혜를 누렸다.

통상 안철수 캠프에 들어가기 위해선 이력서를 제출하고 평판 조사를 받은 후 실무 팀장과 법조 팀장 2번의 면접을 거쳐 최종적으로 본부장 사인을 받아야 할 정도로 까다롭다. 정치인 캠프보다는 기업형 캠프라는 말이 나돌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래서 탈락하는 지원자도 속출했다. 10년 넘게 국회 보좌관 일을 하고 국회의원 인맥까지 동원한 한 아는 선배는 면접까지 다봤지만 탈락의 아픔을 겪어야했다.

한형민 당시 공보실장은 ‘힘이 좋네’라며 우스갯소리 농담을 건내기도 했다. 바로 분석대응실로 배치를 받아 10월13일 첫출근을 했다. 분대실장은 김인현 전 한겨레 기자 출신이었다.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었지만 다년간 언론인 생활로 판단력과 상황인식 능력이 좋았다.

팀원은 내일신문 출신 백왕순 팀장, 민주당 산하 연구소인 민주정책연구원 출신 김영필 팀장, 민주노총 출신 김영일 팀장에 한국일보 전 기자 출신 이연호, 그리고 광고회사 출신 김철우씨 등 7명이 다였다. 초기에는 일일현황대응, 조간이슈정리, 메시지 기조 및 대응 논리 개발이 주 업무였다. 3개팀으로 이뤄져 나는 김영필 박사와 함께 조를 이뤄 업무를 해나가야 했다.

바이버에 출입카드까지 일사천리
진심캠프가 있는 종로구 공평동에 위치한 공평빌딩은 이름마저도 안철수 후보 이미지와 비슷해 보였다. 나만의 착각일수 있지만 상식과 진심 그리고 새정치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1층은 아트센터가 있었고 캠프는 총 3개층을 쓰고 있었다. 5층은 민원실과 대변인실, 기자실로 이뤄졌고 6층이 캠프 직원, 12층은 정책 포럼으로 이뤄졌다. 내가 들어갈 당시에는 캠프 인원은 당초  60~70명 선이 아닌 160여명이 포진해 있었다. 이후에는 두배인 320여명까지 늘어나게 된다.

외곽 포럼을 제외하고도 순수하게 근무하는 실·팀만도 18개나 됐다. 각 부서별 행정지원을 담당하는 행정실, 일정관련 의사를 결정하는 일정기획팀, SNS 여론동향 및 콘텐츠 기획 가공하는 미디어기획팀, 후원회 홈페이지 명함 등을 관리하는 홍보팀, 정책공약을 담당하는 정책팀, 정책 포럼을 담당하는 정책기획팀, 2030 세대를 겨냥한 혁신기획팀, 정세분석하는 기획팀, 후보자 및 부인을 보좌하는 비서실, 언론을 담당하는 대변인실과 공보실, 캠프 전체를 총괄하는 상황실, 민원을 담당하는 민원실, 법적 분쟁을 담당하는 법률지원단, 후보자 및 부인 말씀 자료를 생산하는 메시지팀, 외부 인사 영입이 주된 업무인 대외협력팀, 그리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활동한 IT 혁신팀으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정책네트워크 조직인 ‘내일’ 등 있다.

핵심 부서는 상황실, 분석대응실, 비서실, 대변인실, 정책실, 기획팀 등 후보자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그룹과 공약 담당그룹이다. 그중 측근 그룹은 금태섭 상황실장, 조광희 비서실장, 윤태곤 부실장, 한형민 공보실장, 강인철 법률지원단장, 유민영-정연순 대변인, 하승창 대외협력팀장, 김형민 정책팀장, 허영 비서팀장, 김윤재 변호사, 이원재 정책기획팀장, 장하성 교수로 구성돼 있다.

전현직 정치인으로는 박선숙 본부장, 김성식 본부장, 송호창 의원이 참여했지만 송 의원을 제외한 두 인사는 정치권 인사라는 점에서 측근그룹에 밀리는 인상을 줬다. 캠프내 서열 역시 크게 3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법조 및 언론·교수 출신의 측근그룹, 시민단체, 정치권 출신 순으로 후보자와 가까웠다. 선거업무는 3순위인 정치권 그룹이 잘했지만 ‘말빨’은 측근그룹이 셌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수평적 네트워크 조직’이 힘을 발휘하기에는 한계가 존재했다.

한 가지 첫 출근하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출입증, 바이버(미국판 카카오톡), 명함이 일사천리로 처리됐다는 점이다. 오전에 출입증과 바이버를 통한 업무 지시가 이뤄졌고 명함도 다음날 바로 나오는 등 스마트한 오피스 환경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기존 정당후보 캠프에선 볼수 없는 신속한 업무처리와 의사결정구조로서 기업형 캠프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물론 나중에 기업형 캠프의 한계를 노출하기도 했지만 캠프 인원 다수는 신선하다는 반응이었다.

▲ <사진=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조광희 비서실장, “정치공학적 단일화 필패”
첫 출근한 날은 안팎으로 안철수 후보가 수세에 몰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는 ‘박의 남자’로 불리던 김무성 체제로 선대위가 전환되면서 전의에 불타고 있었다. 특히 안 후보가 제기한 ‘무소속 대통령’을 박근혜 캠프에서는 ‘국정경험이 없다’, ‘정치경험이 전무하다’며 아마추어로 몰아세우고 있었다. 또한 여야의 ‘NLL 대화록’ 논란이 국정조사권으로 불똥이 튀면서 한 치 양보 없이 공방을 벌여 안 후보가 주목받을 틈이 없었다.

반면 문 후보측의 단일화 공세는 주도면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문 후보측은 이 당시부터 사회원로, 친문 시민단체 등을 통해 단일화 압박을 하도록 작업중이었다. 실제로 사회 원로와 시민단체가 안-문 단일화 협상 과정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전략은 주효한 셈이다.

이에 안 캠프에선 단일화 압박 프레임과 무소속 대통령 후보라는 공세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주된 관심사였다. 조광희 비서실장은 이에 대해 ‘정치공학적 단일화는 필패’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이었다. 그는 “단일화는 반드시 이뤄져야 하지만 일정기간 문 후보와 선의의 경쟁을 통해 국민들로부터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또한 무소속 대통령 공세에 대해선 “안 후보로 단일화가 되면 야권연대후보 및 국민후보로서 민주당도 도울 수밖에 없다”며 “조급한 단일화 논의는 야권의 확장성을 차단하고 야권 후보를 차례로 격파하기위한 기득권 세력의 전략”이라고 우려감을 표출했다. 사실상 법조인 출신으로선 정확한 진단이었던 셈이다.
우리실 역시 야권 단일화 프레임에 맞서 ‘변화 vs 낡음’, ‘혁신 vs 기득권’으로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는 대응 기조를 마련했다. 특히 기존 캠프의 입장인 ‘선쇄신 후정권교체’ 주장에서 정치 쇄신과 정권교체를 상하 개념이 아닌 수평적 개념으로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또한 ‘무소속 대통령’ ‘무소속 후보’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무소속’이란 단어를 쓰지 말 것을 주문했다. 오히려 정권교체 여론이 당시 63.7%까지 달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안철수 후보의 강점인 ‘박근혜 필승후보’와 ‘야권 후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나아가 새정치에 대한 국민적 열망에 부응하기위해 정치 쇄신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사실상 ‘단일화’와 ‘무소속’ 단어가 캠프내에서 ‘금기어’로 지정되는 순간이었다.

아울러 안철수 후보의 ‘불안한 이미지’를 불식시키기위한 중량감 있는 인재영입 보고서도 올라갔다. 특히 그 대상으로 조순 전 총리, 김성순 전 의원, 김효석 전 의원 등이 실명으로 올라갔지만 ‘시기상조’라는 반응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크게 남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계속>

<정리=홍준철 정치부장>  mariocap@ilyoseoul.co.kr

홍준철 marioca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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