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누나 이어 이복형도 상속재산 분배 청구 소송 가세
회장직 물러나 경영권 잃고 대주주 지위까지 날아가나
[일요서울|강길홍 기자]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유산 분쟁이 점입가경이다. 지난해 12월 이 전 회장의 누나인 이재훈씨가 상속 재산을 분배해 달라는 청구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같은달 28일에는 이복형이 소송에 가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이 전 회장이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이후 재판 과정에서 숨겨진 유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유산 분배에서 제외된 이 재산을 나눠달라는 것이다. 소송 결과에 따라 이 전 회장의 지분 구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 때문에 회장직에서 물러나 경영권을 잃은 이 전 회장이 대주주 지위까지 위협받고 있다.
삼성家의 유산분쟁으로 촉발된 재벌가의 형제간 재산 다툼이 태광그룹으로 이어지고 있다. 삼성家의 재판결과가 이달 말로 예정돼 있는 가운데 태광그룹의 유산분쟁은 이제야 시작된 상황이어서 한동안 재계의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28일 이호진(50) 전 태광그룹 회장의 이복형인 이유진(52)씨가 “선대회장의 차명재산 중에서 상속분을 돌려 달라”며 이 전 회장과 그의 모친인 이선애(83) 전 태광그룹 상무를 상대로 주식인도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이씨 측은 “피고들은 선대회장의 상속재산 중 그룹 주요 계열사의 주식과 무기명 채권, 현금 등을 임직원 명의로 빌려 차명으로 상속받고, 이후 다른 상속인들 모르게 실명화·현금화한 사실이 검찰 수사와 공판 과정에서 드러났다”며 “지난해 국세청이 피고들을 세무조사 한 이후 내게도 세금 5억5000여만 원을 내라고 통지함으로써 새로 상속세가 부과된 상속재산이 405억 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이씨 측은 소장에서 태광산업 보통주 5주, 대한화섬 5주, 흥국생명 5주, 태광관광개발·고려저축은행·서한물산 각 1주와 손해배상과 부당이득금으로 1억1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그러나 “앞으로 구체적으로 침해된 상속재산 범위를 기초로 상속지분을 계산해 확장하겠다”고 밝혀 청구 금액은 늘어날 수 있다.
이에 앞서 같은 달 7일에는 이 전 회장의 누나인 이재훈(56)씨가 동생인 이 전 회장을 상대로 주식인도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이씨는 이 전 회장에게 78억6000여만 원과 태광산업 보통주 주식 10주, 대한화섬 10주, 흥국생명 10주, 태광관광개발 1주, 고려저축은행 1주, 서한물산 1주 등을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이씨 역시 “현재 정확한 상속권 침해 규모를 파악할 수 없어 일부 재산에 대해서만 청구했다”고 밝혀 재판과정에서 청구 금액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씨 측은 “선대회장이 사망한 직후 상속재산 외에 막대한 규모의 재산을 단독 소유로 귀속시켜 상속권을 침해했다”며 “이 전 회장이 단독으로 가져간 상속재산의 내역을 확인하는 대로 청구취지를 확장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2010년 태광그룹의 비자금 수사가 이뤄지면서 이 전 회장이 상속재산인 차명주식 등을 실명화, 현금화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 전 회장은 1996년 선대 회장이 사망한 직후 상속 처리된 재산 외에 막대한 규모의 재산을 2003년부터 최근까지 단독 소유로 귀속시켜 내 상속권을 침해했다”고 덧붙였다.
검찰 수사로 드러난 차명재산
이임룡 태광그룹 창업주는 이인애 전 태광그룹 상무와의 사이에서 3남3녀를 뒀다. 이 창업주가 1996년 타계한 이후 장남 故 이식진씨는 태광산업 주식 4만6732주(4.2%)와 대한화섬 6만5708주(4.95%)를 상속받았고, 이 전 회장도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주식을 각각 4.2%와 4.95%씩 물려받았다. 그러난 2010년 검찰이 태광산업 발행주식의 약 32%가 공식 상속재산 목록에서 누락돼 차명계좌로 관리되고 있다는 의혹을 포착해 수사에 나섰다.
이 같은 의혹은 이 전 회장이 태광그룹 계열사들의 자산을 자신과 아들 현준군이 대주주로 있는 비상장 자회사들로 빼돌리는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이 이를 알게 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소액주주들을 대표하는 서울인베스트가 집중적으로 의혹들을 제기했고, 결국 이 전 회장의 혐의가 재판을 통해 사실로 밝혀졌다.
서울고법 형사3부(최규홍 부장판사)는 지난달 20일 1400억 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 전 회장에게 징역 4년6월 및 벌금 10억 원을 선고하고, 같은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상무에게는 징역 4년에 벌금 10억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 중 횡령 200억 원 부분을 유죄로 인정했지만 일부 배임 및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증명이 없거나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무죄 또는 면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기업인이 우리 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면 클수록 범죄에 대해 엄정한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이 ‘범죄 예방’과 ‘투명하고 합리적인 기업 경영의 정착’을 위해 필요하다. 기업인의 경제 발전에 대한 기여, 재산 범죄 피해자에 대한 피해 회복은 양형상 유리한 요소로 고려될 수 있지만 여기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 정도에 맞지 않는 양형에 이르러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이 전 회장과 이 전 상무가 대법원에 상고할 가능성이 높은 점과 이 전 회장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보석 상태인 이 전 회장을 법정구속하지는 않았다. 이 전 상무의 구속집행정지도 다음 달 말까지로 연장했다.
한편 이 전 회장은 2011년 1월 구속 기소된 이후 간암 판정을 받고 같은 해 4월 간 절제 수술을 받으면서 재판부가 보석신청을 받아들여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왔다. 지난해 2월 열린 1심에서 재판부는 이 전 회장에게 징역 4년 6월에 벌금 20억 원을, 이 전 상무에게 징역 4년에 벌금 20억 원을 선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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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홍 기자 sliz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