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로 주목할 점은 사채업자의 특성상 소송을 제기할 경우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기 때문에 대부분 소송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은 피하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기자의 취재결과 황씨는 수십억원을 거래할 만큼 여유있는 형편이 아닌 듯 했다. 황씨가 세칭 ‘새끼업자’이고 그의 뒤에는 ‘큰 손’ 전주(錢主)가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실제 황씨와 함께 전씨의 철도청에 대한 주식양도채권 30억원을 넘겨받은 또 다른 사채업자 김모(46)씨의 경우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자 “추이를 봐가며 소송을 낼까 생각 중”이라면서 소송제기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소송까지 제기한 황씨의 태도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 이같은 점에 비춰 황씨는 누군가 보이지 않는 ‘큰 손’을 대리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다는 추측을 낳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강남 일대의 큰 손으로 통하는 한 사채업자는 “황씨가 소송을 제기하며 전면에 나선 것을 보면 황씨 뒤에 숨겨진 제 3의 누군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황씨가 전씨에게 건넸다는 돈의 출처도 달러나 엔화 등 검은 돈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본지는 이같은 의문점을 확인하기 위해 황씨 연락처로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그는 응답이 없었다.황씨의 정체와 관련해 오가는 또다른 의문은 전씨가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점에 재단측이 전씨에게 담보를 요구하자 전씨가 시가 900억 상당의 부동산 서류를 제출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전씨의 부동산 제시는 ‘타인명의’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당시 전씨는 자신이 대표로 있던 하이엔드사에 결제로 돌아온 수표를 막지 못해 부도가 날 정도로 무일푼이었다. 때문에 전씨에게 부동산 서류를 건네준 ‘누군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황씨의 ‘재력’으로 볼 때 900억대의 부동산 소유자는 또다른 ‘제3의 전주’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문제는 황씨의 배후에 누군가가 있다면 과연 ‘보이지 않는 인물’이 누구일까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몇가지 추정이 가능하다. 전씨에게 그처럼 큰 거액을 빌려줄 수 있을 정도라면 분명 상당한 재력을 갖춘 인물이지만, 외부에 자신이 노출되면 안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단순 사채업자’는 아닐 것이라는 추측도 오가고 있다. 특히 전씨의 이력상(건축시행업) 평소 거래해온 유력인사일 가능성이 높다.때문에 검찰 주변에서는 황씨와 주변의 연관성, 그리고 전씨와 황씨 사이에 오간 거래내역을 파악하면 이번 사건의 또다른 실체를 파악해내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대월·권광진·허문석·이광재·왕영용 제 갈길 가나?
이번 사건이 불거진 후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의 중심에 위치한 인사들간에 불협화음이 생겨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초 사건이 언론에 처음 보도된 이후 이들 네 사람은 마치 입을 맞춘 듯 서로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사건이 확대되고 검찰로 수사가 이첩되면서 뭔가 단단히 틀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허문석, 전대월, 권광진씨는 당초 “이광재 의원은 무관하다”고 말했다가 나중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바른대로 말하지 않는 모습에 분개했다”며 정면 공격을 해댔다. 왕영용씨도 처음에는 “이 의원은 무관하다”고 감싸다가 나중에는 이 부분은 아예 입도 코도 안떼고 있다.
오히려 처음에는 별로 방어해주지 않던 허문석씨와 전대월씨, 그리고 권광진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결속하는 느낌이다. 권광진씨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전대월씨와는 사건이 터진 후 한번도 전화통화를 하지 않았다”며 그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 그 이유는 사건이 터진 후 이광재 의원이 “사건과 무관”함을 강조하면서 허씨 등을 가급적 자신과 연관없는 쪽으로 몰아 붙였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때문에 앞으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 이들 연루자들 사이에 서로 얼굴 붉히는 일까지 벌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혜숙 softpe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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